윤길중 개인전 : 큰법당

사진위주 류가헌

2018년 5월 8일 ~ 2018년 5월 27일

하늘을 빼고 구름을 지웠다. 멀리 고찰을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들과 가까운 나무들을 없앴다. 주변의 그림자까지를 지우자, 이윽고 날렵한 용머리와 천년 풍상을 흐트러짐 없이 견뎌 온 전각의 선들이 드러났다. 섬세하게 양각된 단청들의 형태와 색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덤벙주초 위의 배흘림기둥, 기둥에 걸린 주련들, 그 사이 낱낱의 문창살마다에서 거북, 두루미, 개구리가 튀고 연꽃과 모란이 피었다. 처마 밑에는 이름을 새긴 현판이 부처 이마의 영안처럼 정 가운데에 또렷이 찍혔다. 이 땅 절집들이 가장 큰 부처인 본존불을 모시는 곳, 오롯한 ‘큰법당’의 얼굴이다.   

큰 법당은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 불린다. 그 이름에는 ‘큰 힘이 있어서 법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제일 중심이 되는 전당이니, 여러 사찰 공간 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이고 멋을 부리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특히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초석부터 지붕까지 자연미를 살려서 지은 큰 법당들은 선조들의 미감과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분방한 형식미의 십층 석탑을 앞세우고 단정히 선 대곡사의 큰 법당부터 면석마다 연판을 정교하게 조각한 석조기단을 나래처럼 펼친 통도사 큰 법당까지, 전국에 천여 개에 달하는 전통사찰이 있지만 그 가운데 똑같은 모습의 절집과 대웅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목조양식이라 서양의 석조양식에 비해 보존이 어려운데다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고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한 건물들을 해체 수리하면서 원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곳들도 있다.

사진가 윤길중이 이 땅 전통사찰들의 ‘큰법당’을 작업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시점에서 그 건물들의 초상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마음을 품은 것이다. 낙산사와 내장사 등 아름다운 고찰들이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마음이 밭아지기도 했다. 

이미 <석인>으로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아우르며 작업과정의 치열한 밀도를 보여 준 바 있는 그다. <석인>이 무엇인가. 당시를 살았던 선조들의 얼굴에서 형상을 빈 석상들을 기록하는 일은 곧 선조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라 여김 한 뜻과 미학적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3년 여간 전국에 산재한 사대부들의 무덤 700여 곳을 다니며 1500기에 달하는 석상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 윤길중의 <석인> 시리즈다. 그 모든 얼굴을 한 장에 모은 사진 ‘천인상’은 놀라움 자체였다.  

<큰법당> 역시 마찬가지다. 미리 역사를 공부하고 원형이 잘 유지된 사찰들을 선정한 시간들을 제외하고도, 물리적 시간만 4년 여가 걸렸다. 다닌 사찰 수가 강화도에서 저 아래 제주까지 260여개를 넘는다. 인적이 없어야 하므로 인파가 몰리는 때를 피해서 추운 겨울이나 궂은 날, 처마 밑에 그림자가 지지 않는 특정한 시간대만을 골라서 가야 했다. 그렇게 피해서 가도 현수막이나 연등이 장해가 되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으니, 오고간 횟수는 기록한 사찰의 수를 훨씬 상회한다.   

촬영한 이후에는, 초상사진을 찍을 때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단순한 배경 앞에 세우는 그대로 큰 법당을 주변 풍광과 격리시켰다. 건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주변부를 포토샵으로 지운 것이다. 원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배경을 지우고 형태 그대로 윤곽선을 오려내는 과정은 기술 너머의 일이었다. 처마 끝 풍경에 매달린 작은 물고기 하나의 윤곽선도 왜곡이 없어야 했으니, 법당 앞에 백일홍 나무가 서 있는 위봉사 큰 법당은 윤곽을 오리는 데만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그처럼 지난한 여정을 거쳐, 기존의 절집 사진들과는 완연히 다른 윤길중만의 ‘큰법당’이 지어졌다. 사진가 윤길중이 사진이라는 매체로, 즉 오로지 그 자신의 심미안과 사진기술의 공법으로 축조한 우리 땅의 ‘큰 법당’들이다. 

기록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아카이브이면서 그 자체로 미학적인 이 사진들 중 108장을 선정해 윤길중 사진집 <큰법당>으로 묶었다.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류가헌의 36번째 사진책전시지원전이, 5월 8일부터 전시1관에서 열린다.


작업노트

큰법당의 초상

우리나라 천년고찰은 대부분 솔향기 가득한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절의 중심에 있는 건물이 큰법당인데, 법당 안에 모시는 부처에 따라 대웅전, 극락전, 대적광전, 대명광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삼국시대에 많은 절들이 건립되어 고려시대에 중흥기를 맞이하지만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쟁과 화재로 불타버려, 건립 당시의 원형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목조양식이라 서양의 석조양식에 비해 보존이 어려운 탓도 크다. 화재가 아니더라도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한 건물들을 해체 수리하면서 원형을 조금씩 잃어가기도 한다. 내가 현시점에서 그 건물들의 초상을 기록해 두려 한 이유다. 

단순한 배경 앞에 세워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초상사진의 기법을 빌어, 큰법당을 주변 풍광과 격리시켜 건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주변부를 지웠다.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 수만 해도 전국에 3,000여개가 넘어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절집을 고르는데 많은 자료검색이 필요했다. 최북단 고성 건봉사에서 제주 관음사까지 260여개 사찰을 찾아다니는 일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으나,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내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법당 건물의 초상을 잘 담아내기 위해 처마 밑에 그림자가 지지 않는 시간대를 맞춘다거나, 유명사찰은 인파가 몰리는 시기를 피해서 찾아가는 등 세심한 안배가 필요했다. 연등과 건물 이마에 걸어둔 현수막은 더 잦은 발걸음을 요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산중에 있는 절집 가는 길은 마음을 씻어주는 여정이라, 작업의 덤이라 여기며 기쁘게 다녔다. 

다듬지 않은 덤벙주초의 표면을 따라 그랭이질을 해 밑 부분을 파내 세운 기둥,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나무로 짜 맞춘 공포나 용머리문양, 기왓장으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내는 팔작지붕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은 눈의 호사였다. 거북, 개구리, 두루미, 연꽃, 모란꽃 등 다양한 문양을 조각해 넣은 문짝을 들여다보며 그 수려함에 취하지 않거나 규칙적인 빗살무늬로 조각한 문짝을 바라보며 어찌 그 단아함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초석부터 지붕까지 자연미를 살려 한껏 멋을 부린 큰법당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있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이라 해도 나무람이 없을 듯하다. / 윤길중


출처 : 사진위주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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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윤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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