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개인전 : 빗물 화석 Rain Fossil

리안갤러리 대구

2020년 3월 19일 ~ 2020년 6월 10일

2018년 리안갤러리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국내외 미술 관계자들과 평단의 호평을 이끈 재불 조각가 윤희의 두 번째 개인전 <빗물 화석>(Rain-Fossil)이 리안갤러리 대구의 2020년 첫 전시로 3월 19일부터 5월 9일까지 관객과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현재 국내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가가 열정을 다해 완성한 최신 조각 작품 11점과 7점의 회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윤희는 원추, 원형 등의 주형에 고온에서 용해시킨 청동, 황동, 알루미늄 등의 금속 용액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던지도록 하여 그 용액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거나 겹겹이 쌓이고 엉겨 물질 그 자체가 스스로 작품의 최종적 형태를 이루도록 하는 독특한 수행 방식과 예술적 문법을 이룩한 작가이다. 지난 서울 전시는 이렇게 금속 물질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작가의 ‘의도성’과 그의 손을 떠나 우연적 형태로의 귀결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작가의 상반적 태도의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았다면, 이번 전시는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작가가 다루는 금속 재료의 물질 자체에 내재된 다양한 특성이 어떻게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지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이는 전시 표제인 <빗물 화석>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같은 뜻의 불어 제목인 《pluie-fossile》(플뤼 포실) 연작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는 무기물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극단의 성질을 가진 무형의 비물질인 빗물과 다양한 형태성과 단단한 물질성을 지닌 화석의 특성을 동시에 시각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전시부터 이번 전시에 이르기까지 윤희 작품의 일관된 특성은 ‘모순’의 문제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순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먼저 윤희 작가의 물질에 대한 탐구를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조각 작품에 있어 윤희 작가의 주재료는 청동, 알루미늄, 구리와 같은 금속재료지만 이는 1984년경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물질과 재료에 대한 실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때 작가는 프랑스 파리 인근의 세브르 도자기 공장 (manufacture nationale de Sèvres)에서 깨진 사기 조각으로 다양한 시도를 시작했고, 이는 곧 재료 자체가 온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질을 드러내는 금속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게 한다. 폐공장이나 제철소 등의 산업 현장에서 수집한 갖가지 종류의 금속으로 거대한 블록 형태의 작품을 만들거나 납, 주석 등을 직접 용해하여 바닥에 튀도록 하는 등의 다양한 실현 방법론과 형태성에 대한 실험을 병행했다. 고온과 무게 등 다루기 힘든 재료의 특성상 금속 주물공장의 전문 작업자와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작가는 좀 더 용이한 작업 방식을 고민하면서 용해된 금속을 일정 주형에 던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신작 《pluie-fossile》 연작은 2003년 처음 착안했으나 2017년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에서 실현된 것으로 완만한 원형의 주형을 천장에 고정한 후 금속 용해물을 던져 빗물처럼 떨어지며 응고되게 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윤희 작가는 《pluie-fossile》을 통해 용해되거나 응고되는 금속 자체의 근본적 성질을 이용하여 모순된 물질의 다층적 양면성을 시각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게 한다. 용해시킨 알루미늄을 반복적으로 천장에 던지는 행위를 통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액체의 유동성과 그러한 흐름이 서서히 응고되며 화석과 같이 단단한 고체 덩어리로 변모하는 순간이 생생하게 고착화된다. 즉 윤희의 작품에서 액체와 고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금속의 물질성은 시각적으로 역동성과 고정성의 동시적 공존을 가능하게 하며, 더 나아가 무름과 단단함, 부드러움과 거친 표면의 질감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연작은 짝을 이루는 다른 연작인 《giclé》(튀긴, 튄)와 함께 해석 가능하다. 즉 이 연작은 《pluie-fossile》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품으로 천장의 주형에 용액을 던질 때, 바로 아래의 바닥에 놓인 주형에 금속 용액이 빗물처럼 떨어지며 튀긴 자국이 응고된 것이다. 이 두 연작은 상승과 하강의 운동성을 교란하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pluie-fossile》은 금속 용액을 천장을 향해 던지지만 이내 바닥으로 하락하며, 《giclé》에서 금속 액체는 바닥에 부딪히며 미약하게나마 상승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pluie-fossile》을 바닥에 설치하고, 《giclé》는 벽에 설치함으로써 상승/하강의 의미는 전도되거나 수직이 아닌 수평적 의미로 전환된다.

원추형의 주형에 알루미늄과 청동, 황동 용액을 각각 던져 작업한 《en spirale》(나선의) 연작에서도 모순적인 조형적 특성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주문대로 작업자가 금속 용액을 던지는 힘과 방향, 속도와 양, 횟수에 따라 금속의 겹이 형성되며 서로 결합되거나 분리된다. 각각의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수차례 겹겹이 던져진 형태들의 역동성과 시간의 유동성은 응고되는 물질성의 고정된 형태 안에서 내재적 성질로 고착화된다. 또한 단단함과 굳건함, 남성성을 상기시키는 금속 물질은 정반대의 이미지인 연약하고 부드러운 만개한 꽃잎처럼 보인다. 알루미늄, 청동, 황동으로 된 작품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모두 다른 작업자를 통해 실현된 작품이기 때문에 비록 동일한 작업 방식과 프로세스를 통해 완성되었지만 각 재료의 물질적 특성과 색상에 더해 우연적으로 형성되는 문양에 있어서 작업자 고유의 개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즉 각각의 재료의 물질적 특성과 함께 작업자의 개인성이 드러나며, 이 또한 그것을 의도한 작가의 창조성의 일부분이다. 결국 윤희 작품 속에서 자아와 타자, 능동과 수동은 구분 불가능해지고 작품 형태의 우연성은 작가의 의도성으로 수용된다. 각각의 개별 작품은 비록 역동성을 내재하고 있으나 하나의 고정된 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들을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세우거나 눕히는 설치 방식을 통해 서로 상관관계에 놓이게 하며 이를 통해 전시 공간 전체를 역동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따라서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개별적 조각 작품인 동시에 빈 공간에서 유기적 작용을 통해 채움과 비움의 조화를 충족하는 설치작품이 되기도 하다.

윤희의 조각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모순적 조형성은 자신이 개발한 검은색 천연 안료를 사용한 회화 작업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조각과 동일한 제목의 《en spirale》은 조각과 달리 수동적인 작업자 없이 오롯이 작가 자신이 직접 전용 도구를 이용해 물감을 던져 완성한 것이다. 자신이 대략적으로 형태를 의도하지만 최종적 형태는 안료의 농도와 그것을 던지는 순간적인 힘의 세기, 직관적인 방향 선회와 같은 여러 요소들의 작용에 따라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흰색 화면 위에 고정된 원형의 모티프는 원심력의 역동성과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때로는 산란하듯 빠르게 흩어지거나 때로는 서로 엉기며 응집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각각의 원형의 운동성은 화면 밖의 실제 공간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실제 공간에서 화면 위로 유입되는 듯이 인식될 수도 있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개별 회화 작품은 서로의 유기적 연관성을 통해 운동성의 흐름과 변주, 전환에 대한 지각 경험으로 유도한다. 《projeté triptyque》(분출된 세폭화)에서도 역시 면과 선, 응집과 방사와 같은 다양한 조형적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튄’, ‘나선형의’, ‘분출된’과 같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동사나 명사가 아닌 형용사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동사나 명사가 어떤 행위나 상태의 확정성을 환기시키는 반면 형용사에는 보다 더 열린 가능성과 다양한 변용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다채롭게 수식하고 형용 가능한 시선으로 경험하기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도자료 글 : 전시 디렉터 성신영

출처: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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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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