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레 작가는 캔버스를 통해 회화적 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 왔습니다. 여기서의 ‘가능성’은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해결될 수 있는 공간, 심리적인 한계나 장애가 없는 공간을 말합니다.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거나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한계나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거나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회화를 통해 꾸준히 제기합니다. 이러한 주제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겨레 작가는 선천적 시각장애로 인해 대상을 즉각적으로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늘 어려움이 있어왔습니다. 시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또는 그것을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불편하거나 어렵거나 모순적인 상황을 기민하게 인식해 그걸 개선하거나 우회하거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리적인 한계 상황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적 갈등이나 심리적 방황 같은 다양한 차원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섞이는 모양» 전에서 이겨레 작가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실제 장소나 실제 상황을 도입해 좀 더 직접적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세상에서 미술과 미술가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전시장 벽 삼면을 차지한 대형 회화작품은 마치 높은 하늘에서 땅 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점의 작업들입니다. 이러한 시점과 캔버스의 물리적인 크기는 평소에 가지지 못했던 질문과 생각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참여작가: 이겨레
출처: 이촌화랑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