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것
안성은(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공기로 지은 땅(Land formed by art)》은 4년 만에 열린 오랜만의 이경민 개인전이다. 그간 작가의 행보를 지켜봤거나, 특히 지난해 《풍경-조각-모음》(안양시립 삼덕도서관, 2023)에서 열린 소품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반가운 풍경일 수 있겠다. 일상의 구체적인 대상을 옮겨올 때와는 다르게 분위기의 층위에서 감지되는 것들이 좀 더 촘촘히 화면으로 엮였다. 얇은 종이 위에 칸칸이, 혹은 겹을 지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것처럼 펼쳐졌던 무수한 이미지들이 눈앞을 스치듯 지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얇은 한지에 스민 물감의 번짐이, 요동치며 면을 가르는 굵고 얕은 선들이, 제각각 가득 차 오르기도 하고 비어 있는 상태로 캔버스를 메웠다. 전시장에서는 ‘구름의 가장자리에서(<Stroke the edge of the cloud> 시리즈, 2024)’부터, 고요가 출렁이고(<Stillness in motion> 시리즈, 2024), 살랑이는 빛과 공기를 잡아둔 듯한 장면(<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2024))을 지나 그 순간의 공기를 큰 면에 담은 <Imitating the air>(2024) 시리즈를 만나게 된다. 눈과 발이 닿는 곳마다 순간을 깨우는 장면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가볍고 산뜻하다. 햇살이 오래 머문 자리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움이 손끝으로 옮겨오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이곳에 소개된 그림들은 묵직하게 내려앉은 새벽안개보다 ‘솔 –‘ 정도의 톤에 어울리는 걸음을 부르는 공기에 가깝다. 이 공기는 주변을 감지하는 일을 포함해, 멈추지 않고 생동하는 지금을 소환한다. 구체적인 사건과 장소, 순간을 언급하지 않아도 깊게 침잠한 과거를 소환하는 것과 달리, 물결치는 수면 위의 일이 끊임없이 감지되는 듯한 그림들이다. ‘어느 때에도, 그럼에도’, 라는 말에 괄호를 쳐가며 ‘삶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라는 문장을 그의 작업과 함께 자주 떠올렸다.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 중, 목성이나 토성은 질량 대부분이 기체로 되어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가득 찬 별을 생각하며 뿌연 구름 같은 그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가 기울거나 희미하더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작은 것들이 한데 모여 뭉쳐져 단단한 땅이 되었기 때문(작가 노트, 2024)”이다. 내겐 그의 작업이 그렇다. 채 말로 다할 수 없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감지되는 ‘오늘’과도 같은 것. 그리고 내디딘 걸음이 어디에 멈춰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내가 디딘 땅을 더듬어보는 마음이 앞으로도 이와 같길 바라며, 그의 여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참여작가: 이경민
기획: 이경민, 안성은
운영: 김하림
그래픽: 김민주
인터뷰: 이다영
출처: 성북구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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