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통해 바라본 자아와 세계에 대한 성찰
마음 속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지만 여러 가지의 감정과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고 사라지고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어떤 상상을 하거나 기억을 더듬어가며 생각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불현듯 떠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른 느낌이나 감정도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도 왠지 모르는 편안함도 어디서 온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경희 작가의 작업은 이 알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세계 속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 같다. 그의 작업에는 일상에서 본 듯한 사물 혹은 동식물이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은 서로 뭉쳐지거나 흩어지면서 그 형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모호한 것들도 있다. 이 이미지들은 마음 속 어느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르듯이 정착되어 있지 않고 바람불어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텅 비워져 있는 공간을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는 그의 이번 전시를 연기(縁起)를 주제로 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시각을 전면적으로 주제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그가 세계를 보는 확고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縁起)라 함은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원인이나 조건과 같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착되고 고정된 세계는 없으며 개인에게 있어서의 주체나 자아 역시 상대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경희 작가에게 있어서 마음의 세계라는 것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듯 공(空)의 세계 속에 떠도는 편린들처럼 관계 속에서 형성된 부유하는 이미지들이며 펼쳐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를 그의 작품 명제에서 사용한 것처럼 카르마(業報)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무작위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구성하는 어떤 의미들과 연관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띄게 드러나는 지폐, 동전, 하이힐, 반지, 건축물 등의 사물 이미지들은 인간의 욕망을 지시하는 듯이 읽혀지지만 이는 단순히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생성된 원인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표현한 이미지들은 독립된 이미지의 완결성이 드러나기 보다는 이미지는 서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거나 관계하고 있고, 특정한 형태나 의미가 읽혀지게 될 즈음에는 어느새 다시 다른 형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식물이나 동물들의 이미지 역시 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구조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조직이자 구성 성분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의 하나로 보인다.
특히 ‘카르마-용’이라는 작업은 이러한 맥락이 잘 나타나 있다. 용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날줄과 씨줄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철망이다. 교차된 지점들은 저마다의 인연들로 구성된 만남의 지점들이다. 이 철망과 연결되거나 관계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 연결망에 사용되는 랜선이다. 수 많은 인연들이 마주치는 장소인 것이다. 그 표피 위에는 욕망의 상징물들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들은 ‘카르마-용’의 표피 안으로부터 그 위쪽으로 부유하듯 떠올라 있다. 용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용이라고 부르게 되지만 물론 여기에 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용의 표피가 만들어낸 형상은 실제의 용이 아니라 날줄과 씨줄이 관계하면서 드러낸 시각적 오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욕망을 드러내는 보이는 듯 떠올라 보이는 여러 사물들 역시 고정된 실체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작가가 지칭한 것처럼 카르마(業報)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작가가 바라보게 된 마음의 세계는 아마도 이렇게 인연과 같은 관계가 만들어낸 현상일뿐, 없는 것과 다름없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세계와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본다. 욕망의 이미지들은 연기의 법칙을 따라 알 수 없는 곳들로부터 떠올라 부유하지만 여기에 집착할 수 없는 허위이자 가상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고정된 세계가 없다는 자각은 자기 부정의 수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경희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은 그러므로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니고 내가 내가 아니라는 모순성을 체득하는 과정이자 자기 성찰의 과정이 되고 있으며 마음과 세상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본디 다르지 않은 세계임을 확인하고 체험하는 과정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나의신화, wood engraving, collage, 85x66cm, 2016

카르마-가면, Installation Objet, Cable, Mixture, 가변설치, 2016

카르마-용, Installation Objet, Cable, Mixture, 180cm, 2016

카르마-만남, Installation Objet, Cable, Mixture, 180cm, 가변설치, 2016
출처 -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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