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드러내는 경계는 너무 익숙해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깊숙이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규칙과 틀에 대한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적절할 때까지》는 두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찍은 5채널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들이 어떤 글을 읽어가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연기를 완성해 나가는 3채널 영상이다.
<적절할 때까지Ⅰ>에서 화면 속 작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어딘가를 하염없이 걷고 있어서 마치 목적지가 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어떤 이유로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일까?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오각형의 집 모양을 서울이라는 경계 안에 가장 넓게 그려 넣는다. 그다음 막대기 하나를 들고 5개의 꼭짓점에 도착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작업 속에서 그는 직선의 길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실제로 골목을 헤매고, 끊임없이 우회하기도 하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자신이 설정한 꼭짓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미 직선으로 걷는 목표는 시작부터 실패를 전제로 한 계획이므로, 목표에서 중요한 지점은 직선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의 계획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그는 자신의 길과 이미 주어진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포개어 놓는 실제적인 행위를 통해 여러 규칙과 경계로 이루어진 도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고자 한다.
<적절할 때까지Ⅱ>는 지금까지 그가 활동하면서 받았던 여러 글 중에서 특정한 단락을 발췌하여, 배우들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작업은 배우들이 글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어떤 하나의 캐릭터로써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대본 연습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영상 속에서는 실제 등장하지 않는 ‘이원호의 작업’, 작품에 대한 필자들의 글을 들려주는 ‘배우의 대사’, ‘배우들이 연기하는 어떤 인물의 모습’이라는 세 가지의 경계가 겹쳐져서 나타난다. 배우에 의해 가상의 인물이 구체화되어 나타나지만, 결론적으로는 배우가 적절하다고 판단이 되어 연기를 중단하면 끝이 나면서 모두 서로 분리되어 현실의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경계가 포개지는 상황은 배우의 연기로만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이 해석해 나가는 각자의 기준과 방식이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은 사회와 우리 그리고 우리와 우리 사이에 밀착되어 있는 어떤 형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경계들이 끊임없이 포개어 나갈 때 우리 개인들이 주체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적절할 때까지Ⅰ>에서 들려오는 끈질기면서도 숨 가쁜 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로 점철된 지난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보편적 사고로써의 사상과 체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 안에 안주해서 전혀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완벽하게 전복시키고 부정하는 방법을 통해 특정한 경계를 지워버리는 것 모두 문제라 말한다. 결국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뒤집어서 새롭게 만드는 혁명이 아니라 결론이 나지 않는 끊임없는 봉기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가는 한 개인이 자신만의 생각을 통해 ‘적절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경계를 포개어 놓는 수행적 과정들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면서 무심하게 우리에게 성찰해 나아가야 할 과제를 던져준다. /글 신승오(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작가 소개
이원호 작가(b.1972)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자본주의의 금전적인 가치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며 그 실체를 전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빈혈이 지나는 통로》 (낙원 417, 서울, 2017), 《The weight of the vacuum》 (Yumiko Chiba Associate, 도쿄, 일본, 2017), 《Between looking and seeing》(Brigitte march gallery, 슈투트가르트, 독일, 2014)외 다수가 있으며 《제주 비엔날레 “투어리즘”》(제주 도립미술관, 제주, 2017), 《홈리스의 도시》(아르코미술관, 서울, 2016), 《ARTISTFILE 2015: 동행》(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출처: 페리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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