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한 곳에 정착하고 살아가기를 꿈꾼다. 정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집’이란 공간은 어느 순간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삶의 피로를 회복하고 균형을 되찾아 주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선 순간 양 손 가득 들고 있던 짐을 하나 둘 내려놓듯 외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모두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더 향상된 삶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꼭 필요한 요소인 집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나 쉽사리 허락되고 주어지는 공간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네모형태의 건물들 속에서 또 다른 다양한 크기의 네모불빛들이 수없이 반짝인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불빛들을 보며 이런 생각들을 해봤을 것이다. ‘수많은 집들 중에 왜 내 집은 없을까?’, ‘과연 저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작가 또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지만 자신을 둘러싼 힘든 현실들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 그를 에워쌌고 애써 그 감정을 외면하려 해보았지만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박스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별다른 설명 없이도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형태를 띤다. 우리는 크고 넓은 집, 따뜻하고 아늑한 집 등과 같이 어떠한 수식어를 가진 집을 꿈꿀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 단어 그대로 집이라는 공간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작가는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반영하듯 집을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지닌 집들을 지어나가기 시작한다. 종이박스는 나무, 시멘트 등에 비해 현저히 내구성이 떨어지는 소재이기에 실재 집을 짓는 재료로는 사용하기 불가능하다. 작가는 관객들이 설치물을 처음 접하는 순간 차가운 인상보다는 ‘집’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아늑함, 편안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 작가의 의도에 맞게 우리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자로 만들어진 약 150채의 집들은 전시장을 따뜻한 기운들로 가득 채워나간다. 설치물들을 관람하던 관객들은 서서히 집 안과 밖을 구분 지어줄 문과 창문들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고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는 작업을 풀어나갈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이번 작품에서 또한 작가와 비슷한 경험 및 감정을 느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불완전한 작업이 하나씩 완성되어 나가기를 바랐으며 이는 문의 부재로 표현되었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문 형태의 스티커를 제시하고 원하는 곳에 붙이는 행위를 유도함으로서 관객 개개인들은 자신이 원하고 꿈꾸던 자신만의 집들을 하나둘 지어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불빛들을 본 뒤부터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부정적인 내면의 감정들을 치유 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술은 작가 본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관객의 참여로 인해 완성되어진다. 작가는 자신의 고민을 쉽게 작품에 녹아 내고자 했다. Home for Me를 경험하고 참여하다 보면 무겁고 암담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를 조금은 가볍고 쉽게 풀어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고민을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관객들에게 꺼내놓기 시작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작가의 마음을 공감하기 시작하며 작가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작품을 통해 내 집 마련의 어려움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지만 한명의 목소리보다는 여러 명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내듯이 관객들의 참여로 인해 현 세태를 풍자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힘이 보태지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으며 휴식과 안식의 둥지와 같은 집이라는 공간을 얻기 위해 묵묵히 자신들의 위치에서 노력해나간다는 점을 몸소 느끼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김정윤/갤러리도스
출처 :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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