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성 개인전 : The Breath of Life

세움아트스페이스

2018년 5월 11일 ~ 2018년 5월 24일

세움 아트스페이스에서 이혜성작가의 [The Breath of Life] 개인전이 5월 11일(금)부터 5월 24일(목)까지 열립니다. 이혜성 작가는 식물의 퇴화과정을 지켜보며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반영해 삶과 죽음의 형태를 자연의 생성과 소멸과정 안에서 보여줍니다. 시간의 선형성과 순환성에 따른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임을 강조하는 듯 수많은 컬러와 역동적인 형태로 극적 화면을 연출합니다. 멈춰있는 시간, 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된 순간에 주목한 [The Breath of Life] 를 통해 정지된 생명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시서문

죽음 혹은 멈춤에서 발견되는 생명에 대한 감각

인간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한계 내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생명체로서 생에 대한 본능과 달리 늘 죽음이라는 한계를 상정하고 살아가게 되며 본질적으로 생명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 전시를 진행하는 이혜성 작가는 지속적으로 생명에 대한 관심 속에서 회화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오히려 드라이플라워(Dry flower)이다. 이 드라이플라워는 엄밀히 말해 생화가 아닌 죽은 꽃이다. 생명을 상징한다기 보다는 죽음을 상징하는 소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역설적인 소재에 주목하여 작업하게 된 것일까?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이 드라이플라워는 생명이 있는 식물의 특징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더 자랄 수 없고 점점 말라가는 가운데 수축되는 것 외에는 성장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스스로는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일 수 없다. 그야말로 죽어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식물이나 인간의 삶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늘 죽음과 소멸로 향하고 있지만 이는 여러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상태변화를 거친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죽음 혹은 소멸이라는 상태는 그것의 전제인 삶의 다양한 여러 순간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시간을 초월하여 바라본다면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느 한가지 일에 몰두하다가 한나절 혹은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가끔은 마치 한두 시간밖에 지난 것 같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감각적 인식의 오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물리적 사실과 인식적 오류 사이를 쉽게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식하는 이 세계는 결국 인간의 의식이 구성한 세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혜성 작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고 말한다. 작가는 머리카락과 같은 얇은 세필로 마른 꽃과 풀잎을 화폭에 가득 채우는 작업을 했었기에 하루 종일을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시간을 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작가가 특별히 경험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흘러간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 시간이 마치 한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작가가 수많은 붓질을 하는 동안의 그 몰입한 시간들은 작가에게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순간으로 느껴졌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그 당시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혹은 이것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 과정에서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작업에만 심취하게 되었을 때 시간은 멈춰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작가 스스로는 그 작업하는 순간들이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필촉이 오고 간 흔적들이 남아 결과적으로 커다란 회화 작품을 만들게 되지만 그 반복 과정은 일종의 종교적 수행에 가까운 것이기에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경험으로 작가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평상시 무의식적으로 호흡할 때 느끼지 못했던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이 작업을 하는 가운데 호흡을 의식하게 되면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살아 움직이고 있고 호흡하고 있음을 오히려 멈춰있는 순간 그리고 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된 순간에 더 명료하게 각성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작업에서의 체험적 경험은 그가 관심을 갖고 집중해왔던 ‘생명’이라는 것의 개념에 영향을 주게 되었던 것 같다. 드라이플라워처럼 죽어있는 것같이 보이는 대상에 오히려 생명의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정물대에 올려진 마른 꽃다발을 정물화(Still life)라는 뜻 그대로 멈춰진 사물로 인식하는 가운데 그리기 시작했던 작업 초기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게 된다. 죽어있고 멈춰 있는 것으로 보이는 꽃잎들을 시간을 초월하여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 죽음은 곧 생명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기 작품 이후의 작업의 경우 확장된 정물이자 자연 만물이 살아 숨쉬고 있는 거대한 풍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 죽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곳으로부터 작가 스스로 호흡을 느끼고 생명을 느끼게 되면서 그의 회화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후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드라이플라워에서 풀은 무채색에 가깝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수없이 많은 색과 톤의 변화와 분할된 터치들이 숨어들어가 살아 숨쉬는 숲과 대지를 품은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작업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말라버린 꽃잎과 풀들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이처럼 수없이 많은 미묘한 변화가 들어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변화들에는 작은 새싹으로부터 시작하여 물과 햇빛 그리고 영양분을 받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 즉 식물이 살아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있었던 일련의 모든 생명의 움직임들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마른 풀들처럼 보일 수 있는 수축된 표피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히 회화적 변주일 뿐만 아니라 작업 가운데 그려진 생명이 지나온 시간들과 그리고 작업을 했던 시간들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흔적들 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드라이플라워로 화면을 가득 채운 이혜성 작가의 작업은 그것이 회화이기에 그리고 그가 그려낸 대상이 죽어있는 것이기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빠르게 날아가는 물체를 찍은 사진의 경우 그 피사체가 어디로부터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혹은 얼마나 강한 움직임인지를 함축하고 있듯이, 작가의 멈춰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드라이플라워 작업에서 보이는 수 많은 움직임의 흔적들과 미묘한 변화들로부터 그 속에 정지된 순간 이전의 시간과 생명력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숨죽이며 집중하여 죽음을 그려내는 것과 같은 작업을 해 왔다. 그런데 그의 적막해 보이는 회화 공간에는 마치 숨겨놓은 것처럼 오히려 생명의 움직임, 생명의 호흡소리가 담겨 있다. 그것은 무심코 그냥 지나치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멈춰 서서 숨죽이고 시간 너머로 깊숙이 들어가 감각하기 시작한다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생명 그리고 살아있음은 죽음과 멈춤의 지점에서 더 명료하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출처: 세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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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이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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