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블룸 In Bloom

하이트컬렉션

2021년 5월 22일 ~ 2021년 7월 25일

《인 블룸》전은 말 그대로 꽃그림을 모았다. 우리 모두가 아는 꽃을 그린 그림, 꽃이 있는 그림, 꽃을 연상시키는 그림을 모았다. 또한 개화를 기다리는 순간처럼 설레거나, 만개한 꽃들처럼 강렬함으로 압도하거나, 또는 정점을 지나 시들기 직전의 꽃처럼 야시시 하거나, 아예 꽃들이 지워져 버린 그림을 모은 전시이기도 하다. 꽃그림은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또는 추상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모든 그림으로써 존재한다. 이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각기 다른 주제나 회화에 대한 관점을 통해서도 전시될 수 있는 그림들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꽃그림이라고 하는 간결한 이유로 한 자리에 모아졌다.

꽃들이 가득한 화원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꽃들을 단번에 분간하지 못한다. 두 눈이 익숙해지기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전시 역시 눈앞에 다소 과하게 펼쳐지는 꽃그림들 앞에서 잠시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는 관람객을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화원에서 개별적인 꽃들에 눈이 익기 시작할 때 비로소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꽃그림이 가득한 이 전시 역시 관람객이 전시장을 배회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체적인 시선으로 그림이 보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림 속 꽃을 식별하려는 의지를 보일 수도 있고, 계절이나 시간을 가늠해보려 할 수도 있고, 꽃이 아닌 다른 것에 더 시선이 머물 수도 있다. 또는 꽃그림과 작가를 연결 지어 생각해보다가 꽃이라는 대상이 촉발시키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그들이 그리거나 노래한 꽃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예컨대 고흐의 해바라기나 조지아 오키프의 칼라, 또는 릴케의 장미를. (*전시제목은 꽃과 상관없는 노래이지만 너바나의 노래제목에서 따왔다.)

꽃은 시간이다. 이 전시는 장미의 계절에 시작하여 접시꽃이 만발하는 여름에 끝이 난다. 산책길에 본 이팝나무 꽃의 그림으로 시작하여 덥고 습한 미얀마의 뜰에 핀 봉숭아로 마무리된다. 루쉰의 글 중에는 ‘조화석습(朝花夕拾)’, 즉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정도로 풀이되는 글이 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일에 서둘러 대응하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고 사유하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침에 피어서 저녁에 땅에 떨어지는 꽃이라니. 꽃의 시간은 짧다.

그림 역시 시간이다. 우리가 꽃을 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꽃과 보낸 시간, 꽃으로 말미암은 기억과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림으로 삶을 사는 화가들조차 그림을 모른다고 한다. 그림은 꽃보다는 좀더 골치 아픈, 화가에게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애증이고, 우리는 어깨 너머로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작가 및 작품 소개 

김병기(b.1916)는 평양 출생으로 1933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나 1934년부터는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입소해 추상과 초현실주의 등 서구 모더니즘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문학수 등과 가까이 지내며 교유하였다. 귀국후 이들 작가들과의 교유 및 후진 양성에도 힘썼고, 비평가로도 활동하여 1965년 제 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한국 커미셔너로서 한국인 최초 국제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이후 미국 록펠러 재단 연구기금으로 미국 미술계를 탐방한 후, 도미하여 미국에서 생활 및 창작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의 화풍은 1950년대 앵포르멜 화풍에서 서예적인 조형미를 발견한 후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었고, 1970년대부터는 구상성을 띈 화풍을 구축하여 추상과 구상을 오가면서 동시에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필치가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는 1990년을 전후로 제작된 세 점의 정물화를 선보인다. 창문을 매개로 하여 꽃과 정물이 놓인 이 작품들은 수직과 수평이 기본을 이루고 사선이 지나가며 면을 분할하고 공간을 만드는 김병기 그림의 조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회화가 자연과 형상의 절충이 아니라 사이(in-between)에 놓여 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회화라고 하였다. 김병기의 필치를 ‘촉지적 선묘’라고 칭한 미술사학자 정은영도 그의 회화를 단순히 형상과 비형상, 구상과 추상의 사이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정신이 서로 얽히고 더듬으며 교차하고 관통하는 그 감각의 과정을 회화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사이의 실현’이며, 완전히 메꾸어질 수 없는 ‘간극의 표현’으로 평한 바 있다(정은영, 「그림의 길, 사람의 길: 김병기의 촉지적 선묘에 대한 고찰」, 『김병기: 감각의 분할』, 국립현대미술관, 2014).

김선우(b.1988)는 도도새를 모티프로 한 회화를 제작해왔다. 남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 살았던 도도새는 풍족한 환경에서 서식하면서 날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날 수 없는 새가 되었고 결국 멸종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선우는 이러한 도도새의 운명에 빗대어 현대인의 삶을 사유하는 회화 연작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봄이라는 계절을 통해 느끼게 되는 무언가에 대한 시작의 기분을 표현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업에 한창이었던 이번 봄, 작가는 봄이라는 계절을 여정을 시작하거나 긴 여정에 앞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좋은 시기라고 보았다. 그는 작업노트를 통해, 우리가 삶이라는 긴 여정 위에 이미 올라 있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추위를 뚫고 꽃이 피는 몽우리를 지켜보며, 걸어온 길을 복기하고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보기를 말했다. 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보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지난한 여정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김홍주(b.1945)의 회화는 수많은 붓질로 형성된 소우주라고 일컬어진다. 미세한 세필의 묘사와 이것으로 구축되는 전체의 커다란 볼륨 사이에 스케일의 대비가 존재하여, 가장 세밀하고 정교한 구조가 가장 단순한 형태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섬세하게 구축된 세필과 커다란 볼륨의 대비를 보여준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한 화면에 담은 것과 같은 그의 작품은 모두 <무제>라는 제목이 붙기에 출품작들은 반드시 꽃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한없이 반복한 붓질은 어느 순간 하나의 커다란 추상적 얼룩을 완성시키지만, 미시적 관점에서는 꽃잎의 표면처럼 섬세한 피부로, 그 속의 우주에 대한 은유로 보아도 될 것이다. 

노은님(b.1946)은 1970년에 독일로 이주하여 함부르크미술대학(HFBK)을 졸업하고 20여년 간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HF)(현: 함부르크응용과학대학(HAW))교수로 재임하였다. 현재도 함부르크에 거주하며 활동한다. 일견 소박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작업을 보여온 작가는 우리 주변의 자연을 동양적 감성으로 해석하고 표현하였다. “자연은 조용한 화가이자 조각가”라고 말한 바 있는 작가는 물고기, 새, 하늘, 꽃, 사람 등을 단순화된 점, 선의 형태요소와 강렬한 원색의 색채로 표현하여, 밝고 힘찬 생명의 에너지와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느낌의 작업을 펼친다. 

문성식(b.1980)은 인간사의 희노애락, 삶과 죽음, 성과 속을 세밀한 필치의 회화에 담는다. 그의 회화는 삶의 여러 장소와 순간들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아이러니를 여러 겹의 레이어와 반복된 터치, 그리고 세밀한 필치로 그려나간 작업들이다. 근작은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선명하면서도 건조한 회화나 조선시대 화조도의 영향이 감지되기도 하는데, 문성식은 자신만의 기법을 구축하기 위해서 종이죽, 과슈, 아크릴 계열의 물감과 미디엄으로 마티에르를 만들면서 채색과 드로잉을 반복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그냥 삶>(2018-2019), <끌림>(2017), 그리고 <장미와 나>라는 공통 제목을 가진 신작 세 점을 선보인다. 작품들 속에서 흐드러지게 핀 장미는 선홍빛 또는 핏빛으로 배경의 하늘색이나 초록의 이파리와 보색대비를 이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장미 넝쿨을 바라보는 인물이나 장미를 향해 뻗는 손의 주인은 작가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고향집 정원의 꽃을 정성스레 가꾸던 작가의 부모일 수도 있고, 짧고 강렬하게 생명을 다하고 가는 꽃의 찰나를 붙들고자 하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박형지(b.1977)의 <무제>(2014)는 그림의 폐기 과정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상념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창작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지난하지만 망친 그림을 폐기하는 일은 순간적이고 단순하다. 작가는 이를 역으로 생각하여 ‘그림을 시간과 공을 들여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꽃이라는 소재를 선택해 나무 패널 위에 템페라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미얀마의 어느 가정집 뜰에 45일 가량 그림을 세워두고 햇빛과 비, 그리고 달팽이와 벌레의 공격을 받아 바래고 씻기고 낡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림이 사라지는 동안 그림 앞에 뿌려둔 봉숭아 씨가 발아하여 자라서 마침내 봉숭아꽃이 만개하게 되는 과정이 함께 기록되었다.

박형진(b.1986)은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리되, 도시 외곽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게 된 변화나 움직임이 있는 풍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일년의 숲>(2019-2020)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작가가 입주해 있던 양주의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변화를 모눈종이에 기록한 작업이다. 모눈종이 한장마다 작가의 눈으로 본 한달의 자연이 담겼다. <개나리 동산>(2021)은 올봄 작가가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본 서울 응봉산 근린공원의 개나리의 변화를 봄이 끝날 무렵까지 기록한 작업이다.

유선태(b.1958)는 초현실주의를 연상케 하는 유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삶의 순간에 만난 모든 인상적인 것을 그린다고 말하는데, 일상의 소재를 재해석하여 2차원의 회화와 3차원의 입체를 오가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제목을 <말과 글>로 시작하는데 이는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저서 『말(Les Mot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글을 짓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유선태는 캔버스 표면에 말과 글이라는 단어를 희미하게 써서 그림 표면을 덮었다. 또한 그림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전거를 탄 인물은 자유롭게 여행하고자 하는 그의 자화상과도 같다.

이수경(b.1963)의 <전생역행그림> 시리즈(2014-)는 작가가 최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마주한 장면들을 그려낸 작업이다. 장미가 펼쳐져 있는 공간, 다양한 삶과 인물, 생물체들과의 조우를 보여준다. 무의식과 회화의 조합이라 볼 수 있는 이 작업들은 작가가 오롯이 스스로를 향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진행될 수 있었다. 함께 전시되는 <매일 드로잉> 시리즈는 지난 십여 년간 작가가 꾸준히 지속해온 작업들이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만다라처럼 증식되는 이미지들을 일기처럼 기록해왔다.

이재헌(b.1976)은 캔버스 위에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형상, 인물, 꽃밭 그리고 회화에 대한 사유를 펼쳐왔다. 특히 꽃밭 시리즈는 작가에게 위로가 되어준 자연(꽃)에 본인의 모습을 대입시켜 작업하였다. 캔버스 위에서 부드럽게 굽이치는 붓질은 강렬한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와 결합하여 형상을 뛰어 넘는 생명의 치열한 본질을 가늠케 만든다. 이는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질문과 닮아 있기도 하다.

이지연(b.1992)은 스스로를 풀과 나무가 나 있는 길을 따라 눈으로 만져보고 더듬어 보는 일을 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눈으로 만지고 더듬은 감각은 캔버스 위에서 붓과 물감을 통해 또 다른 감각으로 전환된다. 이번 전시에 보이는 작업들은 그의 산책로 시리즈와 부케 시리즈 중에서 선택된 작업들이다. 산책로 작업이 자연에 대한 경험을 펼쳐 놓은 작업이라면, 부케 작업은 부케를 만들 듯 작가가 주관적으로 자연을 취사 선택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의 과정은 자연에 대한 사색보다는 회화에 대한 고민이 더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뿔 형태로 돌려 모아진 부케의 하단 형상이 특히 그 과정을 짐작케 한다.

이혜인(b.1981)은 작가 활동 초기부터 야외사생의 방법으로 회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머문 장소, 시간뿐만 아니라 그 순간의 경험과 생각을 그림 속에 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중에는 작가의 작업실 근처 들판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울퉁불퉁한 땅의 굴곡과 흙이 묻은 작업들이 있다. 땅을 엎고 하늘을 향해 누워 있던 그림은 관념의 자연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꽃 정물이 한 켠에 그려진 젊은 시절의 모친을 담은 <Mom_looking inside>와 이를 추상적인 형태로 변환한 <Mom_looking outside>는 한 쌍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그러나 <Mom_looking inside>가 작가의 기억과 감정을 내용으로 한다면 산발한 붓터치와 선, 마스킹 테이프가 두드러지는 <Mom_looking outside>는 작품의 내용보다는 회화에 본질에 대한 작가의 또 다른 고민을 보여준다.

콰야(b.1991)는 즉흥적인 터치로 일상의 순간을 기록해왔다. 그의 그림은 밤(夜)과 고요(quiet)에서 따온 ‘콰야(Qwaya)’라는 이름처럼 일정 부분은 밤의 시간이 주는 센티멘탈함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작가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어떤 순간과 그 감정이 꽃을 매개로 하여 재구성된 것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포착한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 스케치를 남기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자신을 이야기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대신, 그림을 보는 이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기를 희망한다.

허수영(b.1984)의 회화는 시간을 쌓는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하나의 화면으로 중첩시키곤 한다. 그는 “붓질은 흔적이고 이것이 형태를 갖추면 어떤 대상이 되고, 그 대상이 공간을 만들면 재현이 되고, 자신은 그 연속된 재현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이 표현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흔적처럼 되어 버리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는 그리는 행위는 지속함으로써 어떤 규정된 상태를 벗어나려고 함을 작업의 중요한 지점으로 삼고 있다.

참여작가: 김병기, 김선우, 김홍주, 노은님, 문성식, 박형지, 박형진, 유선태, 이수경, 이재헌, 이지연, 이혜인, 콰야, 허수영
주최: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하이트진로주식회사

관람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26777

출처: 하이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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