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첫 번째 이야기 - 윤이도: 무심히도 무성히

갤러리 메일란

2023년 4월 5일 ~ 2023년 5월 3일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첫 번째 이야기: 무심히도 무성히
작가 : 윤이도

나의 작업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대면하게 된 인물들과의 대화, 사건, 사물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의 다양한 논리 로 인해 추억 속에만 남겨진 채 사라지게 된 장소들에 얽힌 사사로운 이야기들이다. 나는 이를 수집하고 탐구하는 것으로 한 장소에 쌓아 올려졌던 중층적인 감정, 장소의 상실로 인해 와해된 관계, 그리고 이를 야기한 사회 문제 등을 추적하고 발화해보고자 한다.

이 모든 작업이 시작된 장소는 외할머니의 오래된 집이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가족들과 직접 유품들을 수습했던 나는 남겨져 있던 삶의 흔적들이 지워질수록 커져만 갔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집에 새겨진 할머니와의 삶과 그 연대기를 수행적인 태도로 기록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토대로 <긴긴밤 빈눈으로 고이>, <오래된 집은 이윽고 밤을 맞이하기로 했다> 등의 드로잉 시리즈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긴긴밤 빈눈으로 고이>는 49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된 작업이다. 나는 고독사로 작고하신 외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며 벌어졌던 사건들, 즉 한 인물의 죽음이 야기한 상황들과 이를 둘러싼 깊은 감정 등을 집요하고도 노동집약적인 드로잉들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건전지가 달아 멈춰진 시계, 할머니의 부고를 알렸던 동네의 사이렌 스피커, 유품을 정리하는 사이 전기가 끊겨 곤란해하던 차에 이웃집에서 빌려주셨던 간이 조명 등을 그려나가며 그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상실감과 이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이를 극복해가는 그 기나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려 했다. 

뒤이어 <오래된 집은 이윽고 밤을 맞이하기로 했다>에선 이 오래된 집이라는 장소 그 자체에 주목해보았다. 이 집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재개발이 진행되며 사라진 장소이다.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이어온 이 오래된 집에 대한 기억과 감정의 역사를 가족들과 함께 되짚어가며 과거라는 어두운 뒤안길로 사라진 장소와 이에 깊이 스며들었던 삶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시간 동안 은연중에 쌓아 올린 세대 간의 벽을 허물며, 집을 곧 터전이자 뿌리로 이해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집과 동일시했던 할머니의 세대를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할머니의 집만이 아닌 도심 속 여러 장소를 둘러싼 연구를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40년도 넘은 동네의 공용 텃밭을 지켜왔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현재에는 그 의미가 흐릿해진 이웃공동체라는 개념을 재고해보려 한 <나의 땅, 우리의 뜰>, 재개발을 목전에 둔 보광동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 지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시각화하려 한 <둥근 곳과 너른 빛에 안녕을>, 만석동에 위치한 오래된 건축물들의 단편과 내러티브를 담아내고자 하는 <단편집> 등이 있다. 

이처럼 나는 점차 획일화되어가는 현대도시 풍경 뒤편으로 사라질 장소들을 탐구해가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장소성에 대한 시야를 넓혀가고자 한다. 그리고 장소를 둘러싼 소문, 그곳에 살았던 한 사람의 인생, 공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이야기 등 지도엔 담아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추적하며 이 장소와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 이면의 갈등구조, 사회적 감수성 등을 성실한 태도로 기록해가고자 한다. 

내가 작업 과정에서 노동집약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이 작업의 원동력이 긴긴 시간 축적해온 애정과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적인 감정과 이야기들을 흑백의 치밀한 이미지로 풀어나가며 우리의 추억 속에만 남겨지게 된 사람들과 장소들을 추모하고 애도해가고자 한다. 더불어 나는 급격한 도시개발 등 동시대의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사안들로 인해 우리가 상실한 것들을 재고해보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공간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경계’를 드러내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한다.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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