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 채색

갤러리이든

2023년 1월 18일 ~ 2023년 2월 11일

현대 미술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재료들로 이따금씩 작가의 일부를 엿보게 될 때가 있다. 폐기물을 잘라 붙이거나 여러 물질을 합성하여 새로운 물성의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는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각자의 재료 선택은 작가의 작품 세계 혹은 작가 자신이 담긴 작업의 물리적 시작점인 셈이다. 그러나 같은 재료를 공유하는 작가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다른 지점으로 안착해 각자의 위치에서 우주를 만들어 성실히 궤도를 돈다. 전통 재료가 가진 특수성을 기저로 삼아 동일함 속에서 발견하는 다름과, 다름들 속에서 깨닫는 동일한 지점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본 전시 <장지, 채색> 전은 장지에 채색화로 작업하는 김효진, 배윤재, 최지현 세 작가에 대해 조망한다.

생명체에 주목하여 작업하는 작가 김효진은 특히 세밀하고도 거리낌없는 표현방식이 돋보이는 <난기류> 와 <질풍지경초 엄상식정목>, 두가지 시리즈의 작품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연 스스로의 생존과 보존방식에 대해 음미하게 한다. 관람객은 동의없이 자연을 누리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기 이전에 작품속의 생명체를 마주하는 동일한 생명체이자 지구라는 터전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본인들의 삶의 방식을 자연 개체에 투영하여 의인화한다. 그제야 바람에 흩날리던 들풀들은 시련에 맞서 싸우거나 꿋꿋이 견뎌내는, 온 몸으로 각각의 상황을 맞아내는 인간과 다를 것 없는 하나의 <생명체> 로서 관람객에게 인식된다. 

다양한 ‘것’ 들 중에서 특히 ‘동그랗고 부드러운 형태’ 에 집중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배윤재 작가는 전통 재료와 본인 작업의 특성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더욱 효과적이고 깊은 시각적 충족을 자아낸다. 그녀는 외부 환경에서 작업 대상을 물색함과 동시에 자신 내면을 관찰하여 그 두 가지가 일치하는 어떤 지점을 작품으로 풀어내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며 탄생한 ‘동그랗고 부드러운 형태’ 들은 작가 배윤재만의 추상으로 화판에 정립되어 전시된다. 이 과정에서 장지에 겹겹이 쌓인 채색들은 가늘게 나누어진 작가 자신으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작가 최지현은 몰골법과 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선을 제외한 부분들을 먼저 채색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조각’ 이라고 표현하는데, 무수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나 형태를 나타내다 끝내는 작품으로 완성되는 꼴을 삶의 그것과 닮았다 말하는 그녀의 문장에서 우리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단번에 알 수 있게 된다. 

모인 조각들이 이룬 그녀의 세계에 거창한 유토피아는 없다. 어쩌면 당신 일수도, 나 일수도 있을 모습의 동물, 식물, 곤충들이 뚝딱뚝딱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뿐. 하지만 누가 감히 그 세계를 평범함이라는 이유로 얕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번 장지, 채색 전으로 소개된 세 작가를 통해 관람객이 주체적으로 작업세계의 유사성과 개별성을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선입견처럼 심겨진 전통적인 재료의 한계성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들의 작업이 던져줄 여러 문장들이 다만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참여작가: 김효진, 배윤재, 최지현

출처: 갤러리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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