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아 개인전 : 소란스러운 적막

OCI미술관

2018년 9월 6일 ~ 2018년 10월 13일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그저 ‘고민 상담’이라 칭하기엔, 정답고 자상한 위로가 조심스럽고, 어느새 당사자들의 냉소와 자조로 귀결되곤 하는 무거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심각함 속에서도 조금 얼굴을 펴고 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9월 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열리는 조민아 작가의 개인전 《소란스러운 적막》. OCI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18 OCI YOUNG CREATIVES의 여섯 선정 작가 가운데 하나인 조민아의 이번 개인전은 희망 없는 세대의 고충을, 그만의 독특한 화면 구성과 유머러스한 표현, 선명하며 동시에 푸근한 색채 구사를 통해 부담 없이 접근하는 세대 간, 계층 간 만남의 장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무기력의 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있다. ‘사토리[사토루(悟る:깨닫다)에서 유래] 세대’는 의욕도 도전도 어떤 관심도 내보이지 않고  욕망 없이 살아가는, 득도한 듯한 세대를 말한다. 이에 상응해 한국에선 경쟁하듯 경쟁을  포기해 가는 ‘N포 세대’가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집, 인간관계, 희망, 건강, 외모,  꿈, 삶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이다. 조민아의 작업에서는 늘 변두리에서 눈치만 보던 이N포 세대가 주인공이다. 해당 세대와 연배를 같이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또 당사자의 하나로서, 또래 친구들을 바로 곁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극히 현실 지향적이고 고발적인 작업으로 다가온다.

떼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성별도 신원도 불분명한 똑같은 얼굴에 맨발이다. 심고, 이고, 당기고, 나르고 그저 무언가 노동에 여념이 없다. 단순노동밖에 기회가 오질 않지만, 그 기회라도 잡지 않으면 그나마 도태되리란 불안감이 그들을 지배한다. 줄지어 짜 놓은, 정체 모를 반죽처럼 구분없는 이들은 얼굴마저 매한가지로 무표정하다. 무표정은 가장 무미건조하면서 또한 가장 풍부한 의미를 담은 표정이기도 하다. 희노애락을 만끽할 겨를도 없는 편평하기 그지없는 삶을 대변하기도 하고, 애써 억누르는 포커페이스이기도, 표출할 어떤 용기도 없는 도망자의 심경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시늉 속에 인생역전을 꿈꾸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일 수도 있다.

조민아의 이번 개인전에서는 보다 다양한 크기의 작업, 다양한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중앙 메인벽을 채운 약 300호 크기(150M×2ea)의 <무료한 때(Bored at the time)>은 그림의 무게추가 되는 빨래(혹은 염색)를 하고있는 듯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황이 풍경처럼 둘러싼 화면을 선보인다. 개별 상황들은 내용을 확신할 수 없음에도 심각함과 익살스러움이 잘 뒤섞여, 보는 이로 하여금 무슨 상황일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도록 부추긴다. 특히 눈에 띄는 마늘 모양의 반죽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색상과 모양으로 그 맛을 절로 궁금하게 만든다. 이는 다른 작업에도 연이어 등장하며 이번 전시를 꿰뚫어 묶는 실의 역할도 수행한다.

본 전시 공간 중앙에는 약 8미터에 육박하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림 더미 같기도, 만화책 프레임이 연상되기도 하는 시끌벅적한 화면은 꼭꼭 숨어 있는 요소를 찾아 내는 재미, 디테일을 만끽하는 재미로 가득하다. 주변으로는 손바닥만한 자그마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눈빛이 살아 넘실대는 비둘기들<목표물(Target)>을 마주하고 있자면 손바닥에 덩그러니 올려진 반죽 한 덩이<작은 마음(Little Heart)>를 순순히 내어 줘야 할 것만 같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무거운 면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에도, 관점과 화법과 표현을 경쾌하게 가져가면서 전반적인 균형감을 맞추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채도를 살린 색상 구사와 다양한 재료의 활용으로, 동양화 베이스의 작업으로는 전반적으로 선명하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원색에 가까운 색상도 마치 다색 판화를 찍듯 슬몃 슬몃 엿보이게끔 겹쳐 올리는 독특한 색조 처리도 돋보인다. 덕분에 전시장은 ‘삶까지 포기한 세대’의 이야기라기엔 뜻밖에도 활기가 있다. 의뭉스럽고 유머가 섞인 상황 연출도 이 활기를 한 몫 거들고 있다.

남녀노소를 특정할 수 없는 그림 속 군중의 고단함을 생각하면 ‘N포 세대’가 맞닥뜨린 암담한 현실은, 비단 젊은이에 국한된 일, 다른 세대를 피해 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세태를 반영하고 공통의 고민을 다루는 21세기 한반도 풍속화라 볼 수도 있겠다.

조민아(1986~)는 성신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15년 첫 개인전《Jungle Story》를 비롯하여 4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활동 중이며, 야심차게 준비한 《소란스러운 적막》을 OCI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출처: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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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조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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