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풀
2017년 4월 27일 ~ 2017년 5월 21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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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페이스 풀은 조은지 개인전 <열, 풍>을 4월 27일(목)~5월 21일(일)까지 진행합니다. 조은지는 그 동안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발발한 학살과 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라고 불린, 캄보디아 대학살 사건의 생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이는 전시장에서 드로잉,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등으로 구현됩니다. 작가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이야기의 배경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열, 풍>에서 열熱과 풍風은 인간의 생명과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이 두 요소를 바탕으로, 작가는 절박하게 삶을 수행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살아냄’을 그리는 아슬아슬한 풍경
김미정(아트 스페이스 풀 큐레이터)
조은지의 개인전 «열, 풍»은 작가의 초기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복날의 개들을 위로하기 위한 ‹개 농장 콘서트›(2004), 개발과 자본의 논리 하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지역들을 이야기하는 ‹밴드금성일식과 지율스님의 만남›(2004) 등,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타의에 의해 사라져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같이 목소리를 내주었던 지난 작품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의 의미와 역할이 더 커졌음에도 작가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하는 것을 지양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발발한 학살과 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라고 불린, 캄보디아 대학살 사건의 생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영상으로 기록한다. 이는 전시장에서 영상, 드로잉,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등으로 구현된다.
2채널 영상 ‹수행하는 사람들›(2017)의 인터뷰이들은 작가의 질문에 따라 과거의 기억들을 꺼낸다. 누군가는 과거를 어느 정도 극복해낸 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통스럽지만, 살아내야‘만’ 했던 순간들이 발화된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의 그 생생한 인터뷰들과 사연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표정, 손짓, 혹은 눈물 등을 비출 뿐이다.
그들은 죽음을 맞닥뜨린 동시에 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움직였던 이들이다. 낙하하지 않기 위해 올라가야만 했던 이들이다. 그 기억이 발화되는 순간에 공감하고 감정을 담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겪지 않는다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모르는 풍경이다.
움직임의 무게
죽는다는 것-잠자는 것-그뿐인가?
육신이 상속받은 피의 기억과
수천가지의 타고난 고통을 한 번의 귀찮은 칼질로 끝낼 뿐이라면,
그것은 칼이 열망하는
소박한 절망일 뿐이지 않은가.
‹햄릿›의 대사를 응용한 내레이션은 인터뷰이들의 삶을 압축하는 시처럼 다가온다. 이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마임이스트들의 움직임은 인터뷰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신체와 거기에 얽힌 고통을 이야기하는 내레이션은 날 것 같은 마임의 움직임과 밀접하게 맞닿는다.
작가는 언어로 발화되는 기억보다 신체의 움직임으로 새겨진 기억을 더 신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기억이 제 3자의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때문에 작가는 신체의 기억을 마임이스트들의 움직임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마임이스트들에게 인터뷰를 보여주고 즉흥적 연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과정과 결과에 개입하지 않으며,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여 마임이스트들에게 전달하고, 해석을 맡긴다. 때문에 마임이스트들이 그 인터뷰를 보고 어떤 감정으로, 무엇을 표현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부 동작과 표정을 통해 생존자들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장 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죽음 밖에 없었던 이들의 절박한 역사와 마임의 역동적인 움직임 사이에 묘한 간극이 발생한다. 생존의 절박함이 즉흥안무의 화려한 움직임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생하고 열정적인 몸짓과 생존자들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은 분명 대비된다. 게다가 마임은 즉흥적이고 순간적이지만, 생존자들의 기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마임은 충실하게 인터뷰이들의 감정을 해석하고 재현하며, 그 과정에 참여하지만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부재한 표현/재현의 결과로서의 마임은 의문을 만든다. 결국 마임의 역할은 신체를 통한 기억의 확장이라기 보다 오히려 그것의 재현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격정과 윤리의 판단 사이를 오가는 상황을 조성해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또 평가할 것인지를 작가가 역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생존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살아낸다’는 의미가 가진 무게의 절실함뿐일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잠자는 것이 아니다.
숲의 그림자
복도형 전시장에 설치된 삼각형 형태의 벽을 지나면, ‹낙하하는 부활에 관한 감정적인 케이스2›(2017)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으로, 자연의 평화로운 소리가 울리는 방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대상화된 신체와 그에 대한 응시를 보여주었다면 ‹낙하하는 부활에 관한 감정적인 케이스2›에서는 관객의 공감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반대편에는 숲의 풍경을 담은 영상 ‹낙하하는 부활에 관한 감정적인 케이스1›(2017)이 재생되고 있다. 모니터가 뒤집어져 있어 정확하게 그 이미지를 인지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이 곳은 당시 학살이 자행되던 인도네시아의 숲으로, 피의 기억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무거운 작품들을 지난 한 켠에는 작가가 4.16 참사를 마주하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무기력함을 그려낸 드로잉들이 있다. 드로잉이라는 이 반복적인 행위는 자신의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작가가 ‘수행’한 흔적들이다. 삶을 상징하는 열과 바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을 작가의 몸짓을 상상해본다. 무언가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행위에 ‹수행하는 사람들›에 등장한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이 드로잉 앞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삶으로 걸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들의 신체를 비로소 상상하게 된다. 물론 작가의 수행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소극적이고 감상적이다. 그러나 ‘살아냄’이 누구에게도 녹록치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때문에 이 드로잉은 작가가 생각하는 ‘살아냄’의 태도를 가장 솔직하게 담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이야기의 배경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역사적 배경이 무거운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들었던 바람 소리가 피의 그림자가 되고, 마임이 발생시키는 열감에 도취한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게 되는 순간을 만날 때, 삶의 단편적인 순간들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고요한 숲의 그림자 안에서, 열과 바람의 무게가 자꾸만 무거워진다.
오프닝: 2017년 4월 27일(목) 오후6시
그래픽 디자인: 강경탁 Gyeongtak Kang (a-g-k.kr)
공간 디자인: 신익균 Shin Ikkyun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아트스페이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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