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엘리펀트스페이스는 ‘아트다큐멘터리’를 키워드로 일련의 시리즈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첫 번째 프로젝트로 개관1주년 프로그램 «죄의 정원»을 선보인다. «죄의 정원» 프로젝트는 ‘죄를 누가, 무엇으로 분류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동시에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구축한 선과 악의 세계를 현대 사회가 공유하는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며 문화인류학적 상상과 재해석을 모색한다. 본 프로젝트는 죄 혹은 선과 악 자체에 대한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닌, 현재의 시대적 맥락에 결부된 개인 혹은 집단의 관점을 담는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통해 시대가 직면한 위태로운 세계관을 탐구하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찰과 대변화의 징조를 만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전시소개
죄는 ‘분류’행위가 낳은 산물이다. 내가 선 땅과 적의 땅을 가르는 순간, 선과 악이 나누어지고 죄가 탄생한다. 땅은 실재하는 시공간일 수도 있고, 순전히 정신적인 영역일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 분류라는 고유의 능력을 부여받은 우리에게 있어 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세계가 위험하지 않다면, 그리고 일상이 무언가로부터 위협받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분류라는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선과 악, 죄의 분류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바깥의 땅으로 눈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로 신화와 이야기를 퍼뜨린다. 세계관은 신화, 이념, 혹은 종교의 모습으로 이쪽 사람과 저쪽 사람을 분류하며, 고도의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결과적으로 세계 속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안도감을 제공한다. «죄의 정원» 프로젝트는 분류의 관점에서 보는 죄의 근원에서 출발하나, 죄 혹은 선과 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비껴나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죄를 넘어 당시 세계관이 직면한 위태로운 절벽의 끝을 그려냈듯이, 본 전시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찰과 대변화의 징조에 주목한다.
전시구성
«죄의 정원» 전시는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구축한 세계를 동시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예술적 확장가능성을 모색한다. 먼저 아카이브 그룹 프로젝트-레벨나인(Project-Rebel9)은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속 44개 이야기를 해제한 미디어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포스트-아틀라스를 통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시스템과 데우스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상징되는 기계-팔을 선보인다. 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우리가 공유하는 초-미시-세계관 (hyper-microworld)을 만드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식물상점은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속 식물을 관찰한다. 그리고 실제 식물들과 형태적 유사점이 있는 보쉬 그림 속 식물을 비교 관찰해가며 식물들을 구성하였다. 첫 번째 '낙원의 식물'은 뿌리가 있는 식물들이 주를 이룬다. 식물 생장등과 환기시설을 구비하여 식물들이 전시 공간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생명력을 품은 정원-공간을 제안한다. 두 번째 지상 쾌락의 정원의 식물들은 절화와 가지가 잘려진 식물들로 구성된다. 그림 속 정원의 구성과 식물의 형태를 중심으로 공중 정원의 형태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지옥의 식물들은 강한 채도와 식물의 색감의 대비로 가장 화려하게 핀 절화 꽃들로 구성된다. 그 꽃들은 전시의 시작과 끝에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의 지옥 부분에는 한 장의 단조로운 악보가 있는데, 이 악보로 인해 작품 속 지옥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문정민(이상의날개)은 보쉬의 정원을 비물질의 소리로 표현하여 일련의 비시각적 내러티브를 소리-공간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이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소리를 제작하여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끔 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7.1 채널 사운드로 표현되는 그의 소리로 관람객은 눈을 감고도 정원에 와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전시기획: 김선혁, 김정욱
주관: 엘리펀트스페이스
후원: 서울문화재단
전시 연계 프로그램: http://www.elespace.io
출처: 엘리펀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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