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인생에 자꾸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 자꾸 바닥으로 주저앉게 하고 발목을 꺾는 웅덩이들.... 포장된 아스팔트 위에서의 안락한 주행을 방해하는 팟홀(pothole)들...
*팟홀 pothole : 팟홀(영어: pothole) 또는 케틀(영어: kettle) 혹은 척홀(영어: chuckhole)은 하천 침식작용에 따른 기반암의 구멍이나, 빗물에 의해 도로 아스팔트 포장에 생기는 구멍을 말한다.
'pothole'이라는 제목으로 이화익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2018년 개인전은 대략 2015년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작들의 동기(動機)는 ‘강박(强迫)과 콤플렉스’라는 불쾌한 증상에 근원을 두는데 이는-피할 수 없게도-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이를 ‘초상(肖像)’ 그리고 ‘군상(群像)’의 두 가지 형태로 풀어보았으며 그 중 초상 시리즈가 강박을 테마로 삼고 있다면 군상 시리즈는 콤플렉스에 좀 더 이야기의 뿌리를 두고 있다.
강박(强迫)의 초상(肖像)
나는 어느 사건 이후 끊임없이 몸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강박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의 위협, 공포, 상상 그리고 이에 따른 강박 증상... 숨을 쉬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
증상이 시작되면 소름이 돋으면서 온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몸의 모든 세포들을 각성시킬 듯이 아래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류가 순식간에 흘러 머리칼을 쭈뼛 서게 한다. 하체의 모든 에너지가 빨려 올라가기에 다리는 풀리기 시작한다. 꼭대기에서 극대화 되는 전압에 의해 머리의 피부는 마치 솜털들이 촉수가 되듯이 공기의 촉감을 느끼게 해준다. 평소에는 느끼기 힘들던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의 존재들...압력을 견디기가 힘들어 귀에서는 ‘삐’하는 경보음이 울린다. 결국 과부하로 두꺼비집이 내려간다. 좀 전까지 발광(發狂)하던 세포는 전기가 ‘뚝’ 끊기며 차갑게 식어간다. 순간 세포와 교감하던 주변의 공기도 같이 얼어붙으며 경화(硬化)된다. 얼어붙는 공기, 공기와 뒤엉켜 경화되는 몸....
회색의 조각들이 들러붙어 있는 회색 톤의 초상 시리즈는 강박으로 일어나는 기분 나쁜 몸의 변화와 그 체험을 그려본 작업이다. 공포에 감각이 곤두서며 살결에 닿는 모든 공기가 느껴지고 임계점(臨界點)에 다다르면 서서히 얼어붙으며 경화되는 느낌, 공기를 굳게 하는 공포의 무게를 그려본다. 강박의 공기를 그려본다.
콤플렉스의 군상(群像)
무심코 드러나는 콤플렉스들이 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메워질 줄 알았던 구멍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반복해서 복구해도 비가 오면 다시 드러나는 팟홀처럼 여전히 비웃으며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면 저절로 극복이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나는 이번 전시에서 회색의 초상화와 더불어 여럿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보다 큰 작업들을 같이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작업들은 성장기의 콤플렉스가 동기(動機)가 되는 자조(自嘲)적인 유희, 블랙 코미디에 그 감성의 바탕을 둔다. 심리적인 나약함이 반영된 인물들, 이들은 살짝 어색하고 빗나가거나 혹은 과도한 포즈와 행동을 통해 다소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그리고 화면의 인물들은 각종 몸짓을 보여주며 명확하지 않은-아마도 본인들도 모를 것 같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아니, 욕망 자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본능적으로 갈구할 뿐이다. 그저 갑갑하기에.... 그저 꿈틀대고 일그러진 몸짓, 접촉하여 욕구를 채우는 걸로 자위(自慰)할 뿐.....나는 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인물들이 배치되는 공간을 좁아보이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안에서 꿈틀대는 경직되고 허무한 움직임, 그 우스꽝스러움에 느끼는 연민과 유희... 부조(浮彫)와 같이 얕은 깊이의 공간에 갇힌 인물들... 부조라는 형식이 가지고 있는 영웅적이고 서사적인 성격도 더해져서 더욱 그 광경이 아이러니하기를 바란다. 결여를 채우지 못한 채 시간에 의해 어른으로 포장되어서 어색하게 자리 잡은 나의 모습과 같이 말이다.
한동안 강박에 의해 시달리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문제일까? 병원도 다니고 검색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작품도 그 답을 찾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답을 찾는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추적해 보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어울릴 듯싶다.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거부하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느껴지는 균열... 마치 메울 수 있으면 메워보라는 듯이 항상 그 자리에서 발목을 잡아채는 구멍... 발목이 삐끗할 정도의 구멍은 간단히 덮거나 조심히 지나가며 감수하겠지만 오싹할 정도의 구덩이가 생기니 한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낼 엄두는 나지 않고 그냥 달리던 차에서 내려서 팟홀을 관찰하며 만져보기로 했다. 내 구멍에 대한 탐사기가 시작되었다.
출처 : 이화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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