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석 개인전 : Homemade

플레이스막2

2018년 10월 10일 ~ 2018년 10월 30일

이토록 반짝이는

누군가 주워온 돌 하나가 어느 집 장식장에 대충 얹혀있다가 어느 날 집안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그때까지 그 돌은 십 년 넘는 집안의 공기와 가족들의 음성을 흡수하고 전파하고 공명했고, 그래서 누구 못지 않게 집안의 역사를 간직한 존재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이 공간과 가족의 역사를 간직하게 될수록 존재 가치는 희뿌옇게 바래졌다. 그래서 다시 발견되기까지 그것은 어느 순간인가부터는 있어도 있는 줄 모르는, 있거나 말거나 한 것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실 구석에 놓인 대개의 수석 이야기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몰입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까지 들여다 본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의미포화의 순간이다. 어머니, 라는 글자가 동그라미와 사각형, 직선의 조합으로 보이거나 돌의 표면이 특정할 수 없는 색과 형태로 분해되어 보이는 순간 어머니라는 단어와 돌은 평범한 의미를 잃게 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 받는다. 최윤석의 작업은 대개 그런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일상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감흥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존재를 들여다보고 거기에 있을지 모를 심오함이나 아주 잠깐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것.

그는 작가노트에서 스스로를 유사-아키비스트라 칭하는데, 이 단어만큼 작가 최윤석의 시발점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촬영과 반복되는 메모는 그의 일상, 정확히는 일상 속의 낯섦을 포획하는 도구다. 2015년 첫 개인전 서문에서 안소연은 그를 ‘탁월한 수집가’라 칭했고,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의 모든 작업이 수집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것이 음성이든 체모든 먼지든 아니면 분위기든 최윤석은 수집하고 포획하여 나열하고 재배열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홈메이드>라는 전시 제목은 이번 전시와 작가 최윤석의 정체성이 어느 지점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단어다. 먼저 그의 작업실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는 대개 집 안에 있는 방 한 칸을 작업실 삼아 작업활동을 한다. 문자 그대로 집 안에서 만드는 작품들이다. 다른 작가들과 외부 작업실을 운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집 안으로 일을 끌고 들어와 지금까지 집 안에서 작업한다. 집에서 만들었다는 의미와 더불어 이 작품들이 어디서 그리고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답 역시 전시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그의 작업이 일상에서 발견한 생경함에서 시작된다고 언급했는데, 이번에는 그 생경함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실 구석에 놓인’ 그 수석에서 발견했다. 오래 전부터 집안에 있었고 그래서 가족 모두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수석은 어느 강가에서 가늠할 수 없을 긴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의 집 안에 들어와 다른 공기로 호흡한다. 보통 수석을 관리할 때는 콜드크림이나 바디로션 따위를 표면에 발라주는데 이제 그의 집안에 있는 수석은 관리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최윤석은 일상적인 물건이나 이미지에 의미부여를 하고 스스로를 이입하여 잊혀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공유하고, 대변한다. 스티로폼과 극세사 이불로 수석의 모양과 표면을 재현한 작품<Rock 시리즈>는 그만큼의 크기와 양감으로 작가의 의지와 바람을 내보인다.

작년에 집에 들인 고양이 ‘꽁치’는 우습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이 보통 ‘고등어’라고 부르는 줄무늬 고양이다. 대체로 집 안에서 숨어 지내듯 살고 있는 꽁치는 하루의 대부분을 자거나 안방 근처에 앉아있다. <Cat A>은 이불 위의 먼지와 체모를 모아 벽지와 영상으로 제작한 <Bed Scene>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하지만 영상 한 가운데 앉아있는 고양이의 이미지는 암갈색과 청회색의 줄무늬를 두른 ‘꽁치’가 방구석에 웅크리고 마치 수석처럼 앉아있는 형태의 재현이다. 수석과 고양이라는 두 존재는 형태의 유사함과 더불어 없는 듯 있는 존재감을 집 안에 채운다.

<Mew Dew>는 그런 ‘꽁치’를 부르는 최윤석만의 발화를 거리에서 채집한 글꼴로 이미지화 한 작품이다. 통일성도 의미도 없고 정확히 대상을 지칭하지도 않는 여러 종류의 발화다. 이 발화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공기 중에 흩뿌려져 ‘휙’ 사라질 운명이지만 오직 그의 집 안에서는 분명한 의미와 대상을 갖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의미 없고, 의미 있는 말들이 집안 곳곳에 맺혀있다. 아마도 받침대에서 꺼내 길거리에 내놓는다면 그냥 돌이 되고 말 수석의 운명을 닮은 말들이다.

온통 집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형태와 의미가 집 밖을 나와 전시장 안에 놓여있다. 수석을 닮은 오브제부터 수석처럼 생긴 얼굴과 수석처럼 집안 곳곳에 맺히거나 스며든 의미 없는 말들이 전시장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는 깊은 연민의 대상이거나 소중한 대상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고 스스로를 대입할 수 있는 순간의 발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가장 평범한 곳에서 예술의 숨은 꼬리를 찾아 밟아 온 이의 전시다. 일상의 사사로움이 깊은 눈과 조심스러운 손길을 만나 반짝, 빛을 내보인다.

함성언(갤러리 버튼)

출처: 플레이스막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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