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노 아야 개인전 : Let’s make the universe a better place

페로탕 삼청

2020년 9월 18일 ~ 2020년 10월 23일

소녀, 소녀를 만나다: 타카노 아야,
《Let’s make the universe a better place》를 앞두고
글: 추성아, 독립큐레이터


페로탕 서울은 타카노 아야(タカノ綾, Aya Takano/b.1976)를 가을에 선보인다. 드로잉 16점과 캔버스 10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Let’s make the universe a better place》(서울, 2020)는 타카노의 기존 작업 세계와는 사뭇 다른 주제와 태도를 보여준다.

타카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유사 대상을 창조하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상 속 세계 안에서 공상과학 혹은 신화적으로 묘(妙)한 화면을 구현해왔다. 주류와 서브 컬처를 포함하는 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동시대 일본 회화의 흐름에 서 있는 그는 고전 문학, 신화, 전설 등에서 차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우리는 타카노의 회화를 일본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꿔 놓았던 기획전《슈퍼플랫(SUPERFLAT)》 (도쿄/나고야, 2000)으로 장착된 일본 미술의 평면성과 만화의 편입으로 한정 짓기보다, 에도시대의 화풍에서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지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즈음 일본화의 화풍들은 추상에서 구상으로 단순히 회귀하지 않고 일러스트적인 표현을 이용한 고전 회화의 모티프들을 가져왔는데, 타카노 아야의 작업은 18세기 에도시대의 풍속화인 독특한 구도의 우키요에 (浮世絵, ukiyo-e)나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Ito Jakuchu)의 회화에서 보이는 평면적이고 ‘데포르메(deformer)’된 동물들이 캐릭터로서 다루어지는 계보까지 올라가볼수있다.

타카노 아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자연의 모티브와 신화에 나올 법한 동물을 소재로 가져와 지상에 묶여 있는 세속적인 이야기의 가능성들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존립하는 독특한 세계관으로 만들어 왔다. 타카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검은 부분으로 가득 찬 거대한 눈의 소녀는 성정체성이 다소 모호하다.그의 작업에서 소녀, 소년,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 혹은 요정일 수 있는 중성의 캐릭터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작업의 형식적 특성상 만화 캐릭터로 읽혀지는 대상은 작가 자신 혹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과 미러링(mirroring)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화상과 같은 초상화와 복수의 군상으로 등장하는데,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채로운 요소들은 미시적인 서사의 자서전적 측면일 수도 있고, 주술적이면서 보편적인 서사에 관한 초 현실적인 세계관을 내포하기도 한다. 시공간의 층위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은 듯 각각의 좌표들이 화면에 펼쳐진 것처럼, 이야기의 파편들로 구성된 도시-생태주의와 허구의 신화적 세계관은 이번 전시 《Let’s make the universe a better place》를 통해, 다수의 개인이 안고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삶에 대한 시선으로 이동한다.

서울에서 보여주게 될 신작들은 작가가 방문했던 한국 여학교들과 억압된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저항, 그리고 순수한 행복을 향한 이상으로 구축한 작가만의 유토피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타카노는 엄격한 규칙과 순응으로 생겨나는 동질적 사상이나 믿음 아래, 오랜 교복 문화에 속한 여학생들을 작가 자신의 신원으로 동일시해 본다. 특히, 작가가 추구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이상은 북미 원주민 신화와 동양 철학을 두고 비교 신화학에 대해 연구했던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John Campbell, 1904-1987) 이 언급했던 “최상의 행복의 발견하는 것이 곧 자신을 향한 자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에 착안한다. 타카노는 “설령 누군가에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해도 개개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면, 자연스레 여러 개인이 모인 인류 전체가 더나은 곳으로 회복될 것 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스템이 보편의 행복을 이끌지 않는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러므로 최근 일본 현대미술에서 전체보다 개인, 역사보다 현재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 했던 것과 유사하게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목소리에 관한 작가 특유의 시선을 만화적인 한 프레임으로 기호화한다.

그는 한때 상점의 간판들이나 주택의 건축 양식 등 일본 도시의 포스트모던한 구조들을 직관적으로 퍼즐 조각들을 맞추듯이 공간의 관계와 물리적 구조물들을 적극적으로 가져왔다면, 신작들의 배경은 부분 확대를 한 것처럼 풍경보다 인물에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한국 여학교의 청소년과 오늘날에 보편적인 여성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여학교들로만 구성된 작은 체제 안에 사회적 역할을 찾아가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청소년기의 특수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은 2020년을 살아가는 어른과 크게 달라졌을까? 이 둘의 공통점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것이며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와 더불어, 사적인 영역부터 공적 영역에 ‘젠더’가 강력한 체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한 때 사회생활을 했던 여성, 결혼 생활에서 자식의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지극히 일반적인 삶이 어린 시절, 학창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소수와 주변으로 점철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괄 한다. 타카노가 바라본 이들의 자아는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여성에 대한 개인-가족-사 회의 구성원의 무형의 폭력적 시선이 지금의 여학교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며, 사회에서 “여성 혐오”라는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충돌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할 것이다.

타카노의 신작은 개인의 행복과 정체성, 독립적인 존재에 대한 작은 신화와 유토피아의 세계를 피로감과 무력감의 시선이 아닌, 여학교에서 발현되는 정체성의 가능성들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여성의 소외에 대한 강요 등의 부정적인 면모보다 ‘나’를 구성하고 정체성이 다듬어지는 개인의 사소한 경험들을 드러낸다. 작업에 등장 하는 소녀들은 규정된 여성다움 혹은 성 역할의 정체감을 학습하는 시기에 존재하는 양성성이 갖고 있는 모호한 지점이 캐릭터의 스타일로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은 제도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는 규범에 의해 끊어지는 개인적인 관계들과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가정에서 유폐되는 한 사람이 아닌, 우정, 욕망, 일탈, 평등이라는 관계에 얽힌 익살스럽고 순수한 개인에 관한 단편적인 서사 속에 구현된다. 이번 신작에 대한 변화는 타카노의 회화에 중심을 차지했던 신화적, 지리적 관심에서 잠시 비껴가 정서적, 관계적 관점과 동시에, 기존 작업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포털의 중간지점에 대한 이야기들의 단편들로 이어진다. 자연-인간, 자아-타인이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게끔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연결시키는 작가의 의지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규정된 개별 정체성 너머에 생태, 나아가, 인류의 동등한 구조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으로 귀결된다.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하여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예약은 방문 전 seoul@perrotin.com 으로 이메일 부탁드립니다.

출처: 페로탕 서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아야 타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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