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리 시메티 개인전 : fantasMIma

리안갤러리 대구

2019년 11월 11일 ~ 2019년 12월 30일

리안갤러리 대구는 지난 2017년 서울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한차례 소개되어 커다란 호평을 이끌어낸 이탈리아 모노크롬 회화의 거장, 투리 시메티(Turi SIMETI)의 두 번째 개인전 <fantasMIma>를 2019년 11월 11일에서 12월 30일까지 개최한다.시메티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상징적인 조형 요소인 타원형을 이용한 모노크롬 회화로서 2017년에서 2019년까지의 최근작을 위주로 구성한 것이다. 전시 표제인 <fantasMIma>는 환각, 환영, 유령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fantasma’와 손짓 표현을 뜻하는 ‘mima’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이다. 작가는 캔버스 표면 위에 대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비가시적 대상이자 ‘부재’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 타원형 나무 모형을 캔버스 뒷면에 부착하여 팽팽하게 당겨진 표면 위로 타원의 형상이 굴곡을 이루며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이를 통해 2차원적 캔버스 평면의 빈 공간은 3차원적 공간이 되고, 실제 공간의 빛과 그림자와의 상호작용이 용이하게 된다. 이는 마치 무언극에서 보이지 않는 환영적 요소를 손짓 표현을 통해 감각 가능한 생생한 실체로서 가시화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번 전시 표제는 ‘부재의 현존’이라는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시메티의 예술 세계를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1929년 이탈리아 시실리 알카모에서 태어난 시메티는 1958년 로마에서 당시 유럽의 주류 미술이었던 앵포르멜(Informel) 화가로 활동한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와 교류하면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시메티는 앵포르멜의 물리적 특성인 구성적 공간이나 마티에르에 대한 관심보다는 육체의 표현을 통해 정신성을 드러내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이후 1960년대에는 밀라노에서 유럽, 미국 예술계의 거장들과 두루 조우하였는데, 특히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와 함께 ‘제로 아방가르드 그룹(Zero Avant-garde Group)’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시메티의 예술적 전환을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작가는 미니멀한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영점에서 출발한다는 제로 그룹의 모토와 같이 캔버스 표면 자체는 단색으로 처리하는 대신에 캔버스의 평면성의 한계를 넘어 실제 공간의 빛과 그림자를 회화적 언어로 수용할 수 있는 실현 양식을 모색하였다. 이때부터 타원형은 시메티 작품 세계에 있어 상징적 조형 요소가 되었으며, 이러한 그의 탐구는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타원형은 부재의 흔적, 또는 가시적 영역 밖의 존재를 의미한다. 즉 일종의 조각-오브제인 이 타원형은 캔버스의 뒷면에 은폐되어 존재의 가시성은 사라지고 캔버스 정면의 표면 위에는 부재의 물리적 암시로서 작동하는 환영적 실체로서만 드러난다. 반복적인 타원형 모듈을 통한 부재의 흔적은 비가시적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본질을 일깨우고 예민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빨강, 노랑, 파랑 등 강렬한 원색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회화 공간은 우리의 망막이 그 표면의 빈 공간에서 유영하며 이 부재의 흔적이 표출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 흐름을 따르도록 유도한다. 이 긴장감은 빛과 그림자의 작용을 통한 에너지의 파동을 동반하며 한층 강화된다. 빛을 받은 타원형 표면은 캔버스 위를 떠도는 듯이 밝게 빛나고 그 주위는 미묘하게 변화하는 그림자색의 그러데이션을 형성하면서 회화의 단색 표면을 풍부한 뉘앙스의 색면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에서 빛은 부재하는 존재의 출현을 상징하며 그림자는 사라짐을 의미한다. 즉 신은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늘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메티가 작품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부재하는 실체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빛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림자는 빛을 받은 어떤 실질적 물체로부터 파생되고 항상 그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근원의 특성과는 다른 성질로 그 주위에서 나타나는 빛의 배후이자 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시메티의 회화에서 이 그림자는 부재의 지표로서 가장 밝게 빛을 받는 타원형 주위에서 나타나 이 부재의 실존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하며, 비물질적인 부재의 형상을 물질화시킨다. 강렬하게 대비되는 음영 효과는 캔버스 그 자체로는 여전히 비어 있는 회화 공간에 시각적 진동과 울림 효과를 만들어 낸다. 더욱이 어떠한 시간적 지표도 없는 초시간적(atemporal)인 회화 공간에 시간의 현재성을 덧입힌다. 다시 말해서 빛과 그림자는 실제 공간에서 회화 공간으로 유입되고 반영되는 것으로 실제 공간의 다양한 빛의 출처와 조건, 시간에 따라 화면 위에는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는 현재성이 반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메티의 회화에서 부재하는 것은 현재와 결부된 진정한 현존으로서의 부재이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빈 공간은 침묵의 공간으로 여겨지는데, 시메티의 작품에서 이 시각적 고요함은 타원형으로 인해 유발되는 음영 효과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 하나의 시각적인 음악, 즉 침묵의 음악이자 음향화된 공간에 대한 감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부재의 지표로서의 타원형 오브제의 반복적 배열은 캔버스의 빈 공간을 고요한 에너지가 유동하는 역동성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무언극과 같은 침묵의 역동성은 시각적 운율과 리듬을 창조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은 음악 언어와 유사성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즉 타원형 자체가 음표 형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각각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식의 반복적 배열은 음조와 리듬의 다양한 변주와도 같다고 했다. 음악적 논리에서 빈 공간은 곧 침묵을 의미하는데, 이 음의 공백은 다음 음과의 구별을 위한 구두점이 된다. 타원형 요철과 빈 공백의 규칙적 대체는 일정한 박자의 선형적 리듬감을 형성한다. 때로는 캔버스 화면의 중앙에 수직의 일렬로 배치되어 상승과 하락의 느낌을 주거나, 때로는 캔버스의 하단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며 평온한 리듬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외에도 타원형의 방향을 일정한 논리로 변화시키거나 대칭, 중복과 같은 변주를 통해 음조의 다양성과 조화를 이끌어낸다.

이와 같이 시메티의 캔버스 공간은 실제 공간의 빛과 그림자와 직접적으로 상호 관련을 맺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 경험에 내재된 청각적 요소를 통해 공감각적 경험을 유발하는데, 여기에는 촉감각적 자극도 포함되는 것 같다. 일정하고 매끈한 표면 위로 마치 몸짓과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흔적을 남기는 타원형은 그 굴곡을 어루만지고 싶은 촉각 충동을 자극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시각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은 상호 침투적이라고 한 바와 같이 관객은 캔버스 표면 위에서 음영의 작용과 함께 입체감을 이루는 타원형 주위로 유동하는 에너지의 발산을 손의 감각을 통해 접촉하고 싶은 심리적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촉각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을 해소하는 매우 직접적인 감각 경험이지만 시메티의 작품에서 관객은 시각 경험 속에 내재된 간접적 방식을 통해 비접촉으로서의 접촉을 하며, 어떤 면에서는 실제 공간에서 캔버스 위로 반영되는 빛과 그림자는 회화와 관객, 회화 공간과 실제 공간을 이어 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객의 다채로운 감각 경험은 부재하는 대상의 실체와 대면하는 관조적, 정신적 접촉이다.

지안루카 란지(Gianluca Ranzi)가 주목한 바와 같이 시메티의 미니멀한 모노크롬 회화의 관조적 특성은 빈 공간, 음양오행과 같이 주역에서 볼 수 있는 동양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파랑, 빨강, 노랑, 흰색, 검정과 같은 원색은 동양의 우주론적 철학인 주역에서 제시하는 5행(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5향(동, 서, 중, 남, 북) 등과 연결되어 있다. 즉 이원론적으로 대립되는 음과 양의 상호 보완적인 힘의 작용으로 우주 삼라만상의 발생과 변화, 소멸이 일어나고 5행은 우주의 영속적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또한 동양 사상에서 빈 공간은 단순한 무의 세계가 아니라 비가시적인 요소인 기가 생동하는 공간, 즉 비가시적 존재들의 역동성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관객은 캔버스 공간 위의 부재한 존재들의 환영적 실체와 교감하면서 우주의 근원적 공간, 혹은 4차원의 정신적 영역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시메티의 회화는 이와 같이 일반적인 감각 능력으로는 인지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가시적 영역 밖에서 조용히 활성화되고 있는 부재하는 요소들의 생동하는 실체를 평온한 관조와 침묵의 대화를 통해 지각 가능한 감각적 실체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내재적 실체는 현실에서 여전히 부재하지만 시메티의 작품에서는 ‘부재하는 채로 현존’하고 있다.

보도자료 글 : 전시 디렉터 성신영

출처: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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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Turi SIM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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