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오브젝트 Panorama Object

d/p

2020년 7월 7일 ~ 2020년 8월 8일

환경 위기와 대감염의 시기를 겪으며, 지구 행성 자체를 일종의 자율적인 행위 주체로서 주목하고 인정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즉, 시선의 '줌 아웃'을 통해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조망하도록 이끌고, 인류와 동등한 협상력을 지닌 객체로써 지구를 바라봄으로써, 인간이 벌인 생태 파괴를 제어하고 확장된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도록 한다. 그러나 지구 생태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를 추상화해 인간 실존태의 바깥에서 보는 이 관점은 지구 속 인 간사회와 현실 자본주의, 그리고 정치 도구나 경제 모순 구조에 의해 생성되는 생태 결핍과 파괴 근원들을 설명하고 밝히는 '줌 인'에는 취약하다

《파노라마 오브젝트》는 인류 절멸의 거대 서사가 전경화되는 대신 구체적으로 고통받는 존재들 이 우리의 시야에서 저 멀리 사라지는 추상 오류를 피하고자 '줌 인'이나 '줌 아웃'이 아니라 ' 파노라마'적 보기를 제안한다. 파노라마적 보기는 시야각을 연속적으로 접합시키고 조절하면서 필연적으로 다른 각도에 머물던 풍경을 이접적으로 종합한다. 별도로 재단되던 풍경은 하나로 연결되며, 개체들은 원근법적 위계에서 흐트러지고, 동시에 엉뚱하게 맞닿으며 서로 간의 생경 한 긴장을 연출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보기는 남성 중심적인 원근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개체(오브젝트)를 펼침으로써 그 관계를 새롭게 경험하기를 요청하고자 함이다.

조은지는 다른 생명이 남기고 간 몸의 일부로 세계를 감각하며 인간과 타 생명종 사이의 감각 경계를 자극한다. 차재민은 눈, 바라봄, 시선에 대한 사실과 픽션을 교차하는 영상 작품에서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보는 행위에 내재된 욕망을 질문한다. 차미혜는 끝없는 공회전, 착지 없는 하강,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 무중력의 공간 등을 연상하는 영상과 소리를 통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환경에 무력하게 놓인 (비인간) 존재들의 맥박, 호흡, 신음 등의 감각들을 상상해 본다. 이수진은 "말이 안 되는 말/이해할 수 없는 말"과 "인간(성)"을 연결함으로써, 우리가 말로서 사물을 존재케 했던 지난날의 지식에 의문을 가한다. 박윤지는 시선의 변화가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모색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이 어떻게 주인 공으로 남지 않으면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지 질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결국, 이 전 시에 초대된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은 파노라마적 예술 언어를 통해 우리 인간의 감각을 다른 생명, 사물과 맞닿아 긴장하게 되는 접촉면으로 데려갈 것이다.



조은지, 〈변신_돈지악보〉, 2011.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조은지의 <변신_돈지악보>는 작가가 쓴 텍스트와 돈지(돼지기름)로 벽에 그린 악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백남준 아트센터, 2011)에서 처음 제작된 후, 이번 전시에서 2020년 버전으로 재제작되면서 퍼포먼스 <한숨>(퍼포머: 옥수수)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2011년 당시 제작했던 작업에서는 당시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대량으로 매장된 경기도 파주 지역으로부터 온 진흙이 일부 사용되었었다. 이 작품은 전시장 한쪽 벽면 전체를 종이로 도배한 뒤, 그 위에 돈지를 이용하여 드로잉이자 악보를 제작하고, 소리꾼은 이 악보를 보며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연주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여러 겹의 접촉들이 발생한다. 먼저 벽에 풀로 종이를 접촉하는 것, 그 접촉면에 돼지의 몸의 일부였던 돈지를 바르는 행위, 마지막으로 돈지로 제작된 악보를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는 퍼포머의 탄식이자 숨결이 닿는 것이다. 벽에 도배된 종이는 그 물질적 특성으로 서서히 색의 변화가 일어나고, 동시에 돈지와의 접 촉면에 두 물질의 접속이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주변으로 기름이 번지다가 사라지거나 흔적으로 남는다. 이 작품에서 발생하는 여러 겹의 접촉과 접속은 소리꾼의 입으로 긴 탄식과 같은 한숨이 되어 크게 한 번 내쉬어진다. 이때 한숨은 긴 탄식이자 다음의 숨을 잇는 큰 숨이다.



차재민, 〈엘리의 눈〉, 2020. 두 채널 FHD 비디오 설치, 11분, 컬러/사운드, 카디스트 커미션

차재민 <엘리의 눈>은 에세이를 바탕으로 파운드 푸티지와 촬영한 장면이 섞여 있는 영상이다. 엘리는 개발 중인 AI 심리상담사의 이름이자, 영상에 등장하는 개의 이름이다. 개와 AI 아바타는 인간의 하위 주체로서 동질성을 가진다. 이 영상은 치료 목적으로 고안된 기술들이 인간의 투시 욕망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를 살펴보기 위해 엑스레이, 벽 투시, AI 심리 상담 기술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또한, 눈, 바라봄, 시선에 대한 사실과 픽션을 교차한다. 의료 목적의 스캔과 이미지는 신체 건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한편으로 심리와 정신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이미지에 버금가는 속도로 발전 하고 있다. 이 영상은 미래의 사회와 기술이 각기 다른 개인의 정신적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인간의 심리가 사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차미혜, 〈더 멀리 더 작은〉, 2020.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차미혜의 <더 멀리 더 작은>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환경에 무력하게 놓인 존재들의 탈주와 모험을 상상하며 제작한 영상이다. 누군가의 시각적 즐거움이나 감각적 유희를 위해 자본의 논리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여정은 '바깥의 바깥'으로 계속 이어지고, 예상치 못한 장면들에 부딪히며 그들에게는 질문이 쌓여간다.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까. 작업은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통해 이러한 개체들의 상태와 생각, 의지와 행로에 시선을 줌으로써 그들의 감각을 소환해보고자 한다. 사운드 제작은 영상에 등장하거나 관련된 오브제들의 직접적인 마찰이나, 전동 모터와의 진동을 통한 소리의 채집과 필드 레코딩을 통해 진행되었다. 영상 속 화자들이 하나의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이동할 때의 감정과 감각은 이러한 소리의 조합과 변형, 연동 등을 통해 드러난다.



<글로솔랄리아>, 2020, 거울에 텍스트, 가변크기, 그레그 속기법: 마녀의 웃음소리



<글로솔랄리아>, 2020, 거울에 텍스트, 가변크기, 루이스 캐럴: 재버워키

이수진의 <글로솔랄리아>.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거나 자신이 듣지 못하는 말을 듣는 "타인"들을 두려워했다. 이 "타인"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자, 악마, 혹은 정신이상 자로 불렸으며 그들의 몸에는 고문, 격리 또는 치료가 가해졌다. "글로솔랄리아(glossolalia)"는 '방언'으로 번역되는데, 종교적인 의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포괄적으 로 지칭하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글로솔랄리아>에서 "말이 안 되는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과 "인간(성)"을 연결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언어가 과연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가? 어떤 언어가 “인간의," 인간적"인 언어인가? <글로솔랄리아>는 텍스트가 인쇄된 일곱 개의 거울로 이루어져 있고 빛이 이 거울에 반사되어 텍스트의 그림자를 만드는데, 나는 이 그림자를 텍스트의 "글로솔랄리아화," 즉 일종의 번역으로 보았다. 각각의 거울에는 따로 제목이 주어지는데, 잔 다르크, 앙토냉 아르토, 루이스 캐럴 등 거울 위의 텍스트의, 혹은 언급되는 발화자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박윤지, 〈sightseeing〉, 2020. 단채널 영상 설치, 혼합매체, 44x44x22.5cm <to the moon>, 2009. 디지털 6mm, 칼라, 2분 53초

박윤지 〈to the moon〉(2009)은 싱글채널비디오 작업으로 영상 속 개체들의 선형적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장면의 심도 변화를 통해 개체와 전체의 관계에 대한 이미지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개체이자 전체인 개인의 시선에 비유하며 시선의 변화가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모색한다. 이러한 작업의 맥락을 반영한 설치작업 〈sightseeing〉(2020)은 싱글채널비디오를 위한 설치로서 1인용 시네마의 기능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물리적 공간에서 이 설치로 인해 발생하는 시공간적 조건과 이를 둘러 싼 환경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는 고정된 프레임과 설치의 물리적 조건으로 인한 시공간적 경계를 통해, 하나의 유한한 시선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이것이 물리적으로 속한 환경으로부터 발생 가능한 무수한 이미지들을 비추는 시도로서 존재한다.


기획자 소개

윤민화는 학부에서 불문학과 미술사학을, 석사과정에서 예술학을 공부했다. 2012년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워크샵에 참여하여 《다시-쓰기 Translate into Mother Tongue》을 공동 기획하였고, 2014년부터는 황학 동에 위치한 전시공간 '케이크갤러리'를 운영하며 김영은, 박아람, 이호인, 차미혜, 이수경, 이수진, 조현아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글을 썼다. 그 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에 학예사로 재직하면서 《W쇼ᅳ그래 픽 디자이너 리스트》를 공동 기획하였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의 큐레이터로 일했다. 2019년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연구자로 입주하면서 〈귀높이-소리와 미술관〉을 기획한 바 있으며, 제7회 아마도전시 기획상 수상 전시 《어스바운드 Earthbound》를 기획했다.


참여작가 소개

조은지는 자신과 타자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면서, 영역이나 정신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실험을 한다. 최근 변성 의식적 상태에서 타자화된 자연 즉 동물, 흙 등과 신체적 의식적 접점을 찾고, 의식과 자아를 확장 하고 재역사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은 《두 지구 사이에서 춤추기》(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0) 《열, 풍》(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7), 단체전은 《불멸사랑》(일민미술관, 서울, 2019), 《생태감 각》(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9) 《보이스리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8), 《APAP 5》(안양, 2016), 《플라스틱 신화》(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6), 《Frame & Frequency》(Plecto- Galería. 메데인, 콜롬비 아, 2014), 《Museum as Hub_Walking Drifting Dragging》(뉴뮤지엄, 뉴욕, 미국, 2013), 《Play Tim e》(문화역서울284, 서울, 2012), 《"Dtang, the Mud Said."》(뒤셀도르프 페스티벌, 뒤셀도르프, 독일, 2012), 《tempus fugit》(Künstlerverein Malkasten, 뒤셀도르프, 독일, 2012), 《제7회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광주, 2008) 등이 있다.

차재민은 서울에서 거주 및 활동하고 있으며 영상, 퍼포먼스, 설치 작업을 한다. 합성 이미지 보다는 촬영 한 영상을 사용하며, 시각예술과 다큐멘터리의 가능성과 무력함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현장 조사와 인터 뷰를 통해 개인들의 현실에 접근하고, 그 개인들의 삶 안에 사회가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에 주목한다. 《히스테릭스》(두산갤러리, 서울, 2014), 《데이 포 나이트》(신도문화공간, 서울, 2015), 《사랑폭탄》(삼육빌 딩, 서울, 2018), 《마음1,2,3의 문제해결》(카디스트, 샌프란시스코, 2020)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산현대미술관, 필름앳링컨센터,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베를린 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전주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그룹전과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차미혜는 서로 다른 세계의 다양한 개체들이 비정형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에 주목한다. 단단해 보이는 기준과 경계들이 모호해지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연약한 것들이나 미약해 보이는 개체들을 조명한다. 학습된 언어로 발화되지 않는 목소리, 통제나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의지나 생명력 등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으로 형상화한다. 개인전 《비스듬》(공간 형, 2017), 《가득, 빈, 유영》(케이크 갤러리, 2015)을 비롯하여, 《동물성루프》(공-원, 2019), 《두 동반자의 비밀-동시대의 한국과 프랑스》(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 2018), 《Remembering or Floating》(Atelier Nord ANX gallery, Norway, 2017)등 다수의 그룹전, 영상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수진은 텍스트, 영상, 퍼포먼스를 사용하여 자신의 작업에서 "언어 공간"을 다룬다. 이 공간은 쉽게 규정되지 않고 복합적이며, 제한적이면서도 포괄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진다. 작가는 "말한다"는 신체적 행동과 번역(언어의 번역뿐만 아니라 구어에서 문어로, 또는 그 반대로의 번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언어와 정체성, 언어의 선택, 언어의 소유권 등의 주제를 다루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Voicing the Sound》(A.I.R.Gallery, 2013), 《말 사이의 거리》(케이크 갤러리, 2016), 《Language Is Treacherous 언어는 배신하지 않는다》(우민아트센터, 2019)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Millay Colony for the Arts, Blue Mountain Center, I-Park, Zarya AIR, Artkommunalka와 같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박윤지는 영상 및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사용하여 빛과 시간, 삶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2018년 아카이브 봄에서 첫 번째 개인전 《white nights》, 2019년 공간 사일삼에서 두 번째 개인전 《tomorrow》를 열었다.


기획: 윤민화
참여작가: 박윤지, 이수진, 조은지, 차미혜, 차재민
기획 보조: 손경민
그래픽 디자인: 모조산업
주최: d/p www.dslashp.org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후원: 우리들의낙원상가,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고마운 분: 변상환

출처: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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