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완, 임수범, Takanosuke Yasui: micro-atopos

THEO

2024년 6월 22일 ~ 2024년 7월 26일

신성 형상과 변이/이행의 세계

세계의 내부에는 인간의 언어나 지각에 의해 조형되지 않고 존재하는 장소가 편재한다. 그곳에는 말해진 바 없는 존재들과 본 적 없는 세계가 서식하고 있다. 일테면 그곳으로 넘어가는 창(Takanosuke Yasui)을 열어두거나, 엄연히 존재하지만 전체의 윤곽을 포착할 수 없어 형상화하지 못한 존재를 가시화(임수범) 하거나, 희미하게 열린 틈 사이 강렬한 피와 근육들이 혼종적으로 결합된 세계(하승완)가 출몰하는 장소가 그러하다. 그 장소는 현존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장소, 아-토포스다. 전시 <마이크로-아토포스>는 이런 비장소들을 가시적, 초미시적 영역으로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다분히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포착해낸 이미지는 현존과 부재 사이를 넘나들며 이제까지 호명되거나 묘사된 바 없는 공간을 캔버스로 옮겨옴과 동시에 현실적 토포스(장소)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범람한다.

그렇다면 타카노스케 야스이는 어떻게 현실의 영역에서 아토포스로 진입하는 창을 구축하는 것일까? 분명 그의 이미지는 구체적인 지명을 지시하는 제목과 맞물려 사생의 형태에 기반한다. 그러나 그가 포착해낸 장소성은 단순히 되풀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회반죽과 점판암(slate) 같은 소재들을 화판으로 사용하여 만들어낸 깨어지고, 일그러진 비정형성 위에 놓여진다. 이런 방법을 통해, 설령 그가 구체적 장소성에 빗댄 특정한 풍경 이미지를 묘사한다 할지라도 해당 이미지는 사실적 풍경과는 분리된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창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두 점의 <I stop to look at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land.>(2024) 시리즈는 그가 이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대지(혹은 장소)’와 ‘회화’ 사이의 역학관계를 연결 지으려 했고, 그러한 고려들이 <emptiness>(2024)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된다.

임수범의 작업은 인간의 눈과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그 얼마나 ‘거대함’ 혹은 ‘작음’을 한정된 캔버스 안에 묘사해야 하는 역설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며 변형 캔버스와 캔버스 사이의 비공간성을 전제해 전시장의 내부에 무한한 세계를 마련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는데, 더 나아가 이번 신작에서는 대자연계의 형상이 정령화 된 ‘신성神聖’이 등장하고 있다. 관찰자의 시선을 대리하여 캔버스의 바깥을 지시하는 그의 시선은 구획된 세계 너머로 끊임없이 확장되는 아토포스를 구축해나간다. 그렇게 그려지는 무한히 확장되는 풍경(장소)은 마치 초미세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 피부의 표면이 먼 우주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것은 무한히 거시적이며 동시에 미시적인 것으로, 그러면서도 생명체가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나가며 열매를 맺어가는 순환적 질서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하승완의 괴물 이미지: 인간의 얼굴을 한 용, 다종다양한 생명체의 머리가 달린 뱀(히드라), 소의 뿔을 단 인간(미노타우로스), 그 이외에도 기이하게 늘여지고 동물화된 신체를 가진 생명체, 말 그대로 괴물怪物의 이미지는 인간의 원초적 금기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인간과 짐승 사이의 이종교배 혹은 근친상간으로 인해 탄생한 기형의 신체를 연상케 하며 그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비도덕적이고 금언된 무언가이다. 우리 인간들은 앞서 인류가 저질렀던 금기의 산물을 마치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가 그의 자식을 라비린스 깊은 곳에 가두어 죄의 흔적을 숨기려 했듯이 저 깊은 미로 안에 숨겨두었다. 그렇기에 그가 들춰낸 괴물의 모습은 대안적 질서이거나 기존의 체제에 반향하는 아방가르드적 이미지일 수 없다. 그는 혼종들의 얼굴과 피부, 심지어는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포착함으로 기존의 말하기를 거부하고 범 인류적 금기, 순수 인간의 금지된 영역: 종간 교배의 이미지를 통해 보다 원초적 차원에서의 전복을 시도한다.

글/기획: 최하얀

참여작가: 하승완, 임수범, Takanosuke Yasui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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