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99
2024년 11월 22일 ~ 2025년 3월 29일
절망의 시대 저항을 노래하기: 잊혀진 서사의 리듬
혁명이 사라진 시대, 절망의 시대에 혁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노동, 여성, 농민, 교육, 통일, 환경, 문화 등 한국 민주화 과정의 모든 흐름을 주도했던 사회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그 이후 어떤 모멘텀도 찾지 못한 채 그 추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아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이 우리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으며, 의회와 정당을 주축으로 발전해온 서구의 민주주의는 최근 극우 정권들이 득세하며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군사독재와 전쟁 폭력은 우리를 더욱 절망의 늪에 빠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것이다,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막연히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인류가, 우리 국민이, 민중이 지금껏 비극과 고난의 역사를 견뎌내며 살아왔기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 도전적인 위기의 시간 또한 겪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까?
이번 기획전시 <혁명의 리듬>은 글로벌 금융자본과 AI 혁명이 인간적 삶의 조건 자체를 송두리째 앗아가려는 지금, 여기에서 혁명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을 시도한다. 16세기 독일 농민혁명, 프랑스혁명, 동학혁명, 4∙19 학생혁명, 5∙18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의 운동을 추진한 그 사회적 열정과 희망이 어떻게 우리한테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왜 혁명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인가? 여기서 ‘반시대적’이라 함은 기존의 지배적 인식체계에 내재하는 관습, 고정관념, 무의식 등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프랑스혁명만 해도 수없이 크고 작은 연속적 사건들을 ‘정치적 변동’이란 단일한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 역사기술의 거대담론으로 규정되었던 것이 아닌가? <혁명의 리듬>에서의 접근 방법은 총체적 역사주의 시각을 벗어나 ‘유일한 사건’으로서 개별적 항쟁 또는 시민봉기를 파악하는 미시적 서사를 다룬다. 동학혁명에서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기존 민족 해방의 거대서사는 ‘민중∙노동∙농민∙분단∙제국∙계급∙통일∙여성’ 등의 문제를 얼마나 추상적 관념으로 고착시켜 왔던가? 따라서 정치적 변동의 주체로서 역사가 내세웠던 ‘혁명가’ ‘열사’ 등 민중을 이끌었던 영웅적 인물 중심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나 들불처럼 번져가던 민중의 정념, 당대의 정동(情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대의 정동은 개인 내면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 혹은 전개인(前個人) 적 신체를 통해 외화된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나를 흔드는 이런 정동이 집단 기억, 공동 기억 속에 발현되고 보존된다. 혁명에 대한 서사 가운데 이런 정동이 화산분출, 지각변동, 천지개벽, 폭풍우, 소용돌이 등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정동이 주관적 마음 현상이 아니라 무한히 변화∙생성하는 자연의 힘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의 강도(强度) 변화는 생명의 리듬을 형성하며 혁명과 같은 세계의 변화가 도래할 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삶의 리듬이 발생된다.
분연히 일어나던 봉기의 정동, 민중의 정서는 지식인들이 기술한 담론 안에서 아니면 그 밖에서 혹은 그 가장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민중의 노래 춤 전설 민담 기도문 주문 부적 그림에서 그러한 정동이 결정화(結晶化)된 형상으로 존재한다. 민중이 꿈꾸고 상상하던 것과 지각된 현실 사이의 괴리를 넘어서는 힘, 한마디로 민중의 살아내는 힘은 우주로부터, 자연의 생명력으로부터 그 형태를 빌어와 형상화된다. 산, 들, 강, 바다, 나무, 바위 동물, 꽃, 잡초, 바람, 구름, 안개, 대기, 비, 달, 별, 해, 우물, 호수, 계곡의 형태로 형상화된다는 것은 언어적 비유나 구상(具象)의 형식으로 표현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정동이 자연의 변화 생성을 통해 드러나는 ‘기운’과 조응하여 민중의 삶을 직조해 왔다. 이렇게 서사와 노래 그리고 그림 속에 형상과 리듬 혹은 색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동의 형상이 민중의 이야기 깊숙한 지층에 화석화된 채 망각되고 있다.
<혁명의 리듬> 전시에 참여하는 6인의 작가들은 이렇게 잊혀진 서사의 리듬을 현재화∙현동화한다. 혁명을 위해 일어서는 뭇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주체는 어느 거인이 아니다. 만약 혁명을 위한 초인이 있다면 그는 변혁의 삶을 살아내는 무수한 이들의 맥박, 혁명의 리듬 그 자체이다.
참여작가: 손기환, 서용선, 옥정호, 이우성, 이끼바위쿠르르 + 제주춤예술원, 허윤희
전시기획: 박만우 (스페이스99 관장)
주최/주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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