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 : 바깥에서 안으로 회귀하는 여인들

아트스페이스휴

2019년 10월 1일 ~ 2019년 10월 10일

바깥으로 안으로 회귀하는 여인들

지역과 사회를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들은 정체성을 강제하는 기호로써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과 여성, 연령과 계층, 직업과 지위 등 다층적으로 발현되는 논의와 현상은 국가와 사회가 암묵적으로 역할과 입장을 종용하기도 하며 이러한 특성을 ‘지역색‘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특히 ‘파주‘는 외곽에 위치한 전쟁과 평화의 상징매개가 되는 정치적 장소(임직각, DMZ, 군사기지)와 터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두 모습(신도시에 안착하는 이주민, 일거리를 찾아 외곽의 공장단지로 파견되는 노동자)에서 다양한 자본과 정치적 태제와 권력이 작동한다. 더불어 분단국가라는 정치적 태제 아래 놓인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기억에서 재현하고 있는 ‘유효한 역사‘에 살고 있다. 파주는 이러한 영토에 대한 내재적 불안이 감지된 지역이고 우리는 이 안에서 국경 안팎을 맴도는 불안의 그림자를 쫓고자 한다.

내재적 불안이 감도는 전쟁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분단선의 경계지점에서 영토, 공간과 장소, 지역과 사회는 어떤 의미를 강제하고 있을까. 파주가 지닌 경계선 안팎을 상상하며 경계이탈자와 아닌 자,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파주는 토착민, 이주민, 환향민, 실향민 등 넓은 맥락을 담고 있는 ‘한국적 난민‘으로 읽힐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적 난민‘은 고향이라는 장소를 박탈당한 혹은 뿌리내린 곳에서 추방된 자를 일컫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용과 장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난亂‘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사회 안에서 탈북자, 새터민,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확장된 범위로 짚어가면서 최초의 ‘장소 없음‘과 장소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자‘ 대한 기원을 찾고자 했다. 특히 “디아스포라 환경“에서 장소 없음과 존재하지 않는 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밝혀보자면 이동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주로 남성 노동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여성들은 급격한 대도시화의 흐름에서 남성의 이동성보다 자유로웠다. 이러한 의미는 국가의 공식영역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었던 가사노동과 섹슈얼리티가 상품 가치, 재생산의 값어치로 매겨졌고 이를 상품으로 판매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시에서 호출하고 있는 ‘조선족 여성‘이 모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노동 이주를 떠난 후 조선족 여성이 없는 그 공간을 탈북 여성이 메꿔주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지점은 국가의 공식역할에서 배제되어왔고 통계와 자료, 기록에서도 잡히지 않는 비체로서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비체 ‘존재하지 않는 자‘로서의 디아스포라의 여성에 주목했고 이들을 내몰았던 국가와 민족이 부르는 ‘고향‘이 어디일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삼백 년 전,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최전선으로 내몰려 죽음을 면치 못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여인들이 살아남아 돌아왔을 때 절개를 잃은 ‘화냥질‘이 돼 버린 상황, 돌아오더라도 가문에 의해 죽음을 면치 못했던 환향녀의 이야기 말이다. 전시 『환향』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고향‘의 장소와 ‘돌아온다/오지 못함‘은 무엇인지, 이 최초의 질문을 ‘환향녀‘ 역사의 길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길목은 사적 경험, 거시적인 화두와 가부장제 체계에서 포섭되지 않는 미시적인 사건들을 발화하는 통로이며, 계보학적인 화냥년의 호명에서 방향을 돌려 장소로부터 출발한다. 혹은 잠깐 머물러 있는 상태, 장소에 있지만,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장소가 없는 안과 밖 경계 이탈성에 주목한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집이 ‘없는‘ 곳에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복잡한 실존의 문제로 엮이게 된다. 안전과 안위로 울타리 쳐진 경계 안에서 서로의 목소리는 평행선으로 울려 퍼지고 결코 닿지 않을 메아리로 울부짖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가, 영토 민족으로의 귀향이 아닌 불안의 얼굴을 환대하는 장소, 제3의 연대 공간을 꿈꿔보지만 복잡한 실존의 문제는 혐오의 얼굴로 재현되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는 ‘다문화-다양성‘의 이름으로 포섭되어 개별사적 차이를 은폐하고 채색되어진 전체의 이야기를 경계하고 울타리 안팎을 허무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대지의 기원으로써 환향녀(바깥에서 안으로 회귀하는 여인들)가 되고자 한다. (* 참고문헌 「말과 활 11호」 탈북자 사유하기, 김성경)

기획: 강정아
참여작가: 남하나, 정혜진, 조 말, 히스테리안
협력: 강병우, 김민주
디자인: 오래오 스튜디오
후원: 경기문화재단, 아트스페이스 휴, 한국출판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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