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 개인전: RE:RE

아트스페이스128

2022년 5월 4일 ~ 2022년 5월 11일

예술에 관한 일반화 된 관념들이 몇 가지 있다. ‘항상 새로운 충격을 주어야 한다’라거나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들... 이러한 생각들은 예술을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예술에 요구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알게 해준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구를 받는 예술이란 녀석은 대체 무엇일까? 예술에 관한 일반적인 관념은 흔하디 흔하게 자리잡혀 있다지만, 정작 예술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공백으로 남겨져 있기 마련이다. 예술 자체를 규정하는 데에는 언제나 어떤 곤란함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곤경은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가라 하더라도 쉽게 외면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바로 그 예술을 규정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을 곤경으로 여기기보단 외려 창작의 원천으로 삼곤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예술의 반-규정성이라 할 법한 특징을 미적 자율성의 알리바이로 여기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예술에 관한 요구들은 예술을 규정하기 위한 단서가 되진 못한다. 아니, 외려 그와 같은 생각들은 예술이라는 것이 애초에 규정될 수 없는 어떤 것, 끊임없이 정의되는 것을 벗어나는 반-규정으로서의 무언가라는 점을 시사할 따름이다. 그리고는 이러한 주장들까지도 이어지곤 한다. ‘예술의 의미는 쉽사리 규정될 수 없다’라거나 ‘예술은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둥의 이야기들... 이 또한 오늘날 ‘새로움’이나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 만큼이나 예술에 관한 상투적인 관념이 되었다.

황규민 작가의 전시 <RE:RE>는 앞서 언급한 예술(가)의 곤란함이 주된 바탕이 되어 있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그가 예의 곤란함을 진짜로 곤란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흔히 예술가들이 이같은 곤란함, 예술의 반-규정성을 미적 자율성의 알리바이가 여기며, 창작의 원천으로 전화되기 마련인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그런 예술가들의 평균적인 태조와는 정반대로 아니, 어쩌면 지극히 마땅하게도 ‘예술을 규정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예술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구는 듯 보인다. 특히나 그가 이 전시를 만들게 된 계기로서 밝히는 이야기들은 거의 비명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 예술에 대한, 그리고 창작에 대해 느꼈던 불능감과 무기력을 실토하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금 이곳에 보이는 것처럼 일련의 창작을 행한 끝에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시 <RE:RE>는 그가 호소한 창작에 대한 불능감과 무기력을 어떻게든 상대한 끝에 만들어낸 어떤 방증이자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그와 같은 불능감이 1차적으로는 지극히 사적인 증상으로 현상하지만, 또한 동시에 지극히 공적인 문제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내려 한다.

작가는 <RE:RE>의 작업물들을 만들어내게 된 계기를 꾀나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야기는 우선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져있었으며 더이상 창작을 할 수 없었던 상태에 달해있었다’고... 그런 와중 그는 우연히 어떤 오픈 스튜디오를 방문하였다가 한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가 단순히 개인적인 의욕이나 동기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작가 또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겪었던 증상은 오늘날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공통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공적인 증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가 더이상 창작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과 달리 그 작가는 줄곧 작품을 생산해왔음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생각을 하나 하게 된다. 그 작가의 작업을 자신이 다시 한번 반복해보자고. 그의 과거 작업이 지금 자신과 같은 공통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면, 더욱이 그 고민이 여전히 유효한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이 상대했던 문제가 여전히 유효함에도 불구,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새로운 작업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어떤 관성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그는 그 작가의 작업을 자기 나름대로 반복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오늘날 예술에서 관습화된 새로움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일련의 곤경을 여타의 예술가들처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거부하고자는 의지를 보인다.

“아름다움은 이제 새로움과 거의 자웅동체인 듯하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옷의 만남,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적인 가치일까... 그러나 새로움이 가득하고 이러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가치들은 점점 더 퇴색되었다. 인간에게로의 기여를 검토할 여유를 주지 않는 거대한 경쟁구조. 이러한 지금까지의 역사속 과정에서 미라는 관념으로부터 선한 것은 거세되어 소멸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인간적인 규모를 회복해야 하며 따라서 미술은 이제 다시 선한 것을 아름다움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사유하여야 하고 여유로운 사고를 사회의 치유와 복원에 쏟아야 한다. 우리들은 다른방향의 이상사회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리혁종. 근대박물관 No.3 <the NEW>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3.12.11.)


포스터 디자인: 황규민
글: 안준형
조력자: 리혁종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정수진 개인전: 부도위도
정수진 개인전: 부도위도

2025년 11월 11일 ~ 2026년 1월 10일

인세인 박: 아방가르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인세인 박: 아방가르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2025년 10월 16일 ~ 2025년 12월 6일

김창열 Kim Tschang-Yeul
김창열 Kim Tschang-Yeul

2025년 8월 22일 ~ 2025년 12월 21일

2025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 전시 본업: 청년 생존기
2025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 전시 본업: 청년 생존기

2025년 11월 13일 ~ 2025년 1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