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원 개인전

이길이구 갤러리

2019년 11월 6일 ~ 2019년 11월 20일

황성원 - 세상의 빛에 반응하는 신체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사진은 주어진 대상에 렌즈를 갖다대는 일이다. 피사체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 주어진 객체/대상에 주체의 눈을 맞추는 일이다.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오브제를 관찰하고 응시하는 일인데 이는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음을 의식하는 주체의 시선, 그리고 이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사유의 작동을 전제하는 일이다. 서구의 전통적인 재현회화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세계를 관찰하고 응시하는 시선에서 나온다. 카메라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반드시 같은 맥락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카메라 렌즈는 부득불 주어진 대상을 가늠하는 시선의 거리에서 가능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의식하지 않고는 찍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상 없는 사진은 가능하지 않고 그것을 응시하는 주체의 시선을 빼고는 사진을 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황성원의 이 사진은 조금 다른 결에서 흔들린다. 작가는 가능한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는 상태, 의식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셔터를 눌렀다. 캐논400D 단렌즈로  작업했는데, 카메라를 양손으로 들고 렌즈를 위로 향하게 한 후 걸어 다니면서 촬영한 것들이고 집안에서 바깥 풍경을 무의식적으로 잡아챈 듯한 이미지들이다. 작가가 렌즈에 시선을 밀착시켜 특정 대상을 응시하면서 찍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소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태 속에서 무작위로 걸려드는 것을 촬영한 셈이다. 외부세계를 온전히 지시하거나 응시할 수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포착되는 얼굴, 풍경이다.   

실내에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과 집근처의 가로수 길과 아파트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아파트가 보이는 풍경은 새벽시간에, 그리고 나머지는 주로 해질녘에 작업했다. 환한 대낮의 시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어둠을 간직하고 있고 어디선가 빛이 스며드는 시간대를 포착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에 의하면 그 시간대가 사진에 빛이 나타나는가 하면 형태의 흔들림 또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정 시간에 따른 온도의 차이는 다른 색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세계를 빛과 색채, 온도로 떠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실내와 집 주변에서 시간을 보낸다. 방안에서 외부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거나 아득해지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얼핏 특정 풍경의 한 자락을 잡는다. 실내에 누워서 바라보는 건너편 아파트나 하늘, 그리고 집 주변의 가로수 길과 공원을 거닐면서 접한 주변 세계가 설핏 파고든다. 방에서 눈을 뜨면 우선적으로 보이는 게 하늘이고 그 하늘은 결코 동일할 수 없어서 매일 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하늘을 나날이 기록하듯 담았다. 자신의 하루, 매 시간을 수집, 기록하고 있는 장면이자 살아있음을 방증하는 삶의 채록에 해당하는 사진이다. 

자신이 생활하는 한정되고 특정한 공간에서, 그 제한된 반경 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작가는 천천히 그 세계 안으로, 몸을 밀고 나간다. 여기서 작가는 천천히 카메라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주변 풍경이 우연히, 예측할 수 없이 들어오는 조건을 만들기도 한다. 이 세계는 자신의 몸으로 만나고 경험하는 곳인데 육체적 고통/통증으로 인해 그 세계를 온전히 감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는 ‘강직성 척추염’이란 희귀성 난치병을 잃고 있어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온몸에 통증이 있어서  앉고 서는 게 힘이 들고 복합적으로 체온조절이 잘 되지 않는 신체적 조건은 불가피하게 그런 상황에 따른 작업을 고려하게 해주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작가는 제한된 공간에서 접하는 특정 대상을 반복해서 담아내는 한편 통증에 따른 몸의 상태가 체험하는 상을 보여준다.     

의식적으로 바라보거나 특정 목적을 갖고 대상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몸으로 의식 없이 파고 드는 풍경의 단면, 혹은 내 의식과 감각으로는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것은 잠시 통증을 잊게 해주는 일이다. 아울러 시선으로 대상을 겨냥하지 않고 주변 풍경에 순응하는 일이다. 세계의 빛에 몸을 적시는 것이고 그 안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은 특정 색채로 물이 들었고 빛의 파동, 심한 왜곡과 격렬한 움직임이 추상적인 무늬, 선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명확한 윤곽선이나 선명함을 대신해 애매함, 흔들림, 모호함을 안긴다. 이렇게 이미지를 포착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이른바 존재를 ‘유령의 속성을 갖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흔들어 피사체를 촬영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피사체가 걸려들지 쉽게 알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몸의 이동, 움직임과 함께 한 카메라 렌즈 속으로 주변 풍경이 미끄러진다. 자신의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미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일종의 이미지 지우기, ‘이미지에 빗금을 치는 행위’일 수 있다. 정확성, 명료함, 선명함, 자명함, 진리, 재현 등에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표면적 질서를 흔들거나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상을 응시하던 눈, 피사체에 정확히 가닿은 카메라 렌즈가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상이 불현듯 치고 들어온다. 현실계의 견고함과 정확성, 굳건함을 죄다 녹이고 굴절시키고 허물어지게 하는 이 사진은 오로지 색채, 흔들림, 빛, 무수한 선들의 궤적으로 가득한 추상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진이 빛과 색, 선으로 환원되고 표면에는 뭉개지고 얼룩진 흔적이 만든 물성의 맛이 흥건하다. 아마도 작가는 온전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회화적 감성으로 충만한 사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사진 도구를 통해 회화와도 같은 사진을 우연히 산출하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 대상과 비대상, 있음과 없음, 빛과 어둠,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이 이미지는 외부세계의 지표(인덱스)지만 결국 자신의 몸 상태, 감각으로 바라보고 포착한 세계에 대한 초상인 셈이다. 그 세계와 자신의 몸이 일체가 되고 홀연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흔들리는 것이다. 시간 속에서 반복을 거듭하는 세계와 그 세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지속 자체일 뿐인 주체가 거기 들어와 있다. 그 주체가 바라보는 세계, 몸의 바깥에 자리한 세계를 통증 속에서 포착하는 한 개별 신체의 반응이 사진 안으로 수렴되고 있다. 

출처: 이길이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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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황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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