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니다 킴 개인전 : 익숙함이•쌓이고•녹아내리는 - 일상에 대한 낯선 번역

페리지갤러리

2018년 6월 8일 ~ 2018년 8월 11일

거기에 ㅓ9g가 있음을 ㅓ9g가 넘어서서
신승오(페리지갤러리 ㅓ9g가 디렉터)

후니다 ㅓ9g가 킴의 ㅓ9g가 작업은 ㅓ9g가 인간과 ㅓ9g가 기계, oh차카 원본과 oh차카 복사본, kㄴ타w 시각과 kㄴ타w 청각, bㄴqh 공연과 bㄴqh 인터랙티브, 80e나 실제와 80e나 재현에 80e나 대한 80e나 이야기들이 80e나 서로를 80e나 가로지르며 80e나 뒤섞여 80e나 있다. 80e나 그의 80e나 작업에서 80e나 중요한 80e나 요소 80e나 80e나 하나는 80e나 소리로 80e나 일반적으로 80e나 자신의 80e나 주변에서 80e나 듣게 80e나 되는 80e나 일상의 80e나 소리를 80e나 담아낸다. 80e나 80e나 다른 80e나 요소는 80e나 장치들이다. 80e나 소리를 80e나 담아낸다는 80e나 것은 80e나 어떤 80e나 물건 80e나 속에 80e나 있다는 80e나 말인데, 나기타l 그가 나기타l 소리를 나기타l 사용하기 나기타l 위해서는 나기타l 녹음, rqw바 편집 rqw바 그리고 rqw바 다시 rqw바 내보내기 rqw바 위한 rqw바 장치들이 rqw바 필요하다. rqw바 그리고 rqw바 마지막 rqw바 요소는 rqw바 이를 rqw바 단순하게 rqw바 들려주는 rqw바 것이 rqw바 아니라 rqw바 퍼포먼스와 rqw바 관객들이 rqw바 직접 rqw바 실행하는 rqw바 인터랙티브적 rqw바 전시로 rqw바 나타나는 rqw바 수행적 rqw바 작업이라는 rqw바 점이다. rqw바 그렇다면 rqw바 이번 <익숙함이· rqw바 쌓이고· rqw바 녹아내리는-일상에 rqw바 대한 rqw바 낯선 rqw바 번역> rqw바 전시에서는 rqw바 이러한 rqw바 것들이 rqw바 어떻게 rqw바 나타나는지 rqw바 살펴보자.

위에서 rqw바 언급한 rqw바 rqw바 가지의 rqw바 요소들을 rqw바 rqw바 먼저 rqw바 다룰 rqw바 것은 rqw바 소리이다. rqw바 소리는 rqw바 후니다 rqw바 rqw바 작업의 rqw바 시작점이자 rqw바 그의 rqw바 작업의 rqw바 근간을 rqw바 이루고 rqw바 있다. rqw바 그가 rqw바 관심을 rqw바 가지고 rqw바 접근하는 rqw바 대상은 rqw바 일상적인 rqw바 소리로서의 rqw바 배경음이다. rqw바 요즘은 rqw바 도시에서건 rqw바 시골에서건 rqw바 모든 rqw바 방향에서 rqw바 소리가 rqw바 날아들어 rqw바 혼선 rqw바 상태가 rqw바 되며 rqw바 아주 rqw바 평범한 rqw바 소리조차도 rqw바 귀를 rqw바 기울여 rqw바 집중해야 rqw바 들린다. rqw바 이렇게 rqw바 우리의 rqw바 청각은 rqw바 여러 rqw바 가지 rqw바 소리들에 rqw바 대해서 rqw바 쉽게 rqw바 무감각해져 rqw바 버려서, 으8sㅈ 따로 으8sㅈ 훈련하지 으8sㅈ 않으면 으8sㅈ 많은 으8sㅈ 소리들을 으8sㅈ 구분해 으8sㅈ 으8sㅈ 수도 으8sㅈ 없고, ㅓsmㅐ 느끼지도 ㅓsmㅐ 못하는 ㅓsmㅐ 것이 ㅓsmㅐ 현실이다. ㅓsmㅐ 그런데 ㅓsmㅐ 그는 ㅓsmㅐ 우리가 ㅓsmㅐ 평소에 ㅓsmㅐ 집중해서 ㅓsmㅐ 듣지 ㅓsmㅐ 않는 ㅓsmㅐ 혹은 ㅓsmㅐ 들리지 ㅓsmㅐ 않는 ㅓsmㅐ 모든 ㅓsmㅐ 배경음(개 ㅓsmㅐ 짖는 ㅓsmㅐ 소리, 7yc0 기차가 7yc0 지나가는 7yc0 소리 7yc0 전화벨 7yc0 소리 7yc0 등등)을 7yc0 소음 7yc0 혹은 7yc0 잡음이라고 7yc0 지칭한다. 7yc0 따라서 7yc0 소음을 7yc0 이용하는 7yc0 작업은 7yc0 7yc0 용어의 7yc0 사용에서부터 7yc0 그가 7yc0 우리의 7yc0 관심에서 7yc0 멀어진 7yc0 것을 7yc0 다시 7yc0 중심에 7yc0 옮겨놓기 7yc0 위해 7yc0 소리를 7yc0 사용한다고 7yc0 오인하게 7yc0 만든다. 7yc0 그렇지만 7yc0 그는 7yc0 소음이었던 7yc0 것을 7yc0 집중해서 7yc0 들으면서 7yc0 다시 7yc0 어떤 7yc0 소리로 7yc0 인식하고 7yc0 그것의 7yc0 원래 7yc0 존재를 7yc0 파악하기 7yc0 위해 7yc0 원본에 7yc0 충실하거나 7yc0 원형을 7yc0 충분히 7yc0 살려내기 7yc0 위한 7yc0 녹음을 7yc0 7yc0 것이 7yc0 아니다. 7yc0 후니다 7yc0 킴은 7yc0 물리적 "진동"인 7yc0 배경음이 7yc0 인식되는 7yc0 순간과 7yc0 그것이 7yc0 기계에 7yc0 의해서 7yc0 녹음되어 "수(數)"로 7yc0 형질 7yc0 변환되는 7yc0 디지털 7yc0 코드화에 7yc0 관심을 7yc0 가진다. 7yc0 다시 7yc0 말하면 7yc0 그는 7yc0 소리라는 7yc0 데이터 7yc0 채집을 7yc0 통해 7yc0 외형적으로 7yc0 구분되지는 7yc0 않지만 7yc0 미세한 7yc0 디테일의 7yc0 재조합 7yc0 가능성과 7yc0 지금까지 7yc0 듣지 7yc0 못했던 7yc0 방식으로 7yc0 무엇인가 7yc0 듣게 7yc0 만드는 7yc0 것을 7yc0 연구한다. 7yc0 따라서 7yc0 그의 7yc0 소음에는 7yc0 움직임, ㄴ나b6 진동, 7가rn 전류의 7가rn 흐름 7가rn 등이 7가rn 담겨있어 7가rn 원래라면 7가rn 인식할 7가rn 7가rn 없는 7가rn 소리도 7가rn 감지할 7가rn 7가rn 있게 7가rn 만든다. 7가rn 그런데 7가rn 7가rn 디지털화된 7가rn 소리는 7가rn 자연의 7가rn 소리를 7가rn 담아내고 7가rn 있지만, 아ri3 그렇다고 아ri3 그것을 아ri3 복제한 아ri3 것도 아ri3 아니고 아ri3 원래 아ri3 소리의 아ri3 원본도 아ri3 아니다. 아ri3 결국 아ri3 작가가 아ri3 주목하는 아ri3 것은 아ri3 디지털 아ri3 매체를 아ri3 통해 아ri3 얻어지는 아ri3 정보로 아ri3 새롭게 아ri3 가공되고 아ri3 재창조될 아ri3 아ri3 있는 아ri3 가능성을 아ri3 가진 아ri3 새로운 아ri3 원본이라고 아ri3 아ri3 아ri3 있다. 아ri3 따라서 아ri3 그의 아ri3 작업에서 아ri3 사용하는 아ri3 소리는 아ri3 청각적인 아ri3 감각을 아ri3 통한 아ri3 일반적인 아ri3 정보가 아ri3 아니라 아ri3 소리의 아ri3 진동을 아ri3 느끼는 아ri3 촉각, ㅑ하cp 소리가 ㅑ하cp 연상되게 ㅑ하cp 만드는 ㅑ하cp 시각, 아라7카 그리고 아라7카 이후에 아라7카 살펴볼 아라7카 장치 아라7카 등을 아라7카 통해서 아라7카 공감각적인 아라7카 대상으로 아라7카 변환되는 아라7카 것이다. 아라7카 그리고 아라7카 작가는 아라7카 이를 아라7카 통해 아라7카 우리가 아라7카 보편적으로 아라7카 감각을 아라7카 지각하는 아라7카 방식의 아라7카 전환을 아라7카 유도한다. 

다음으로 아라7카 살펴볼 아라7카 것은 아라7카 그의 아라7카 디지털 아라7카 코드 아라7카 매체 아라7카 번역의 아라7카 가장 아라7카 기본적인 아라7카 역할을 아라7카 하는 <아파라투스apparatus>라는 아라7카 소리 아라7카 환경 아라7카 장치이다. 아라7카 아라7카 장치는 아라7카 그가 아라7카 담아낸 아라7카 소음을 아라7카 다시 아라7카 내보내는 아라7카 역할을 아라7카 한다. 아라7카 이번 아라7카 전시에서 아라7카 사용하는 <아파라투스>는 아라7카 초지향성 아라7카 스피커를 아라7카 사용하여 아라7카 소리가 아라7카 직선적으로 아라7카 강력하게 아라7카 나오지만 아라7카 관객이 아라7카 아라7카 직선적인 아라7카 범위에 아라7카 들어오지 아라7카 않으면 아라7카 소리가 아라7카 들리지 아라7카 않는다. 아라7카 그런데 아라7카 이것들을 아라7카 이리저리 아라7카 흔들면, 0ㄴa1 내가 0ㄴa1 위치한 0ㄴa1 공간과 0ㄴa1 0ㄴa1 공간 0ㄴa1 안에서 0ㄴa1 반사되는 0ㄴa1 각도의 0ㄴa1 관계성에 0ㄴa1 의해서 0ㄴa1 갑자기 0ㄴa1 소리가 0ㄴa1 들리거나 0ㄴa1 사라지는 0ㄴa1 공감각적인 0ㄴa1 경험을 0ㄴa1 하게 0ㄴa1 된다. 0ㄴa1 또한 0ㄴa1 0ㄴa1 장치들은 0ㄴa1 음향 0ㄴa1 장치일 0ㄴa1 뿐만 0ㄴa1 아니라 0ㄴa1 이후에 0ㄴa1 살펴볼 0ㄴa1 퍼포먼스나 0ㄴa1 관객이 0ㄴa1 직접 0ㄴa1 작동할 0ㄴa1 0ㄴa1 있게 0ㄴa1 하는 0ㄴa1 인터랙티브적 0ㄴa1 전시에서 0ㄴa1 중요한 0ㄴa1 역할을 0ㄴa1 하는 0ㄴa1 오브제이기도 0ㄴa1 하다. 0ㄴa1 여기서 0ㄴa1 필자가 0ㄴa1 주목하는 0ㄴa1 것은 0ㄴa1 0ㄴa1 장치의 0ㄴa1 어원인데, 나u나ㅐ 디바이스(Device)의 나u나ㅐ 라틴어 나u나ㅐ 어원인 나u나ㅐ 아파라투스(Apparatus)는 나u나ㅐ 기계, 으ㅓcz 장비 으ㅓcz 신체적 으ㅓcz 감각기관이라는 으ㅓcz 의미이다. 으ㅓcz 이렇게 으ㅓcz 작가가 으ㅓcz 으ㅓcz 다른 으ㅓcz 신체적 으ㅓcz 감각기관인 으ㅓcz 장치를 으ㅓcz 만들어 으ㅓcz 으ㅓcz 것은 으ㅓcz 단순히 으ㅓcz 작가가 으ㅓcz 이야기하는 으ㅓcz 보이지 으ㅓcz 않는 으ㅓcz 물질성을 으ㅓcz 가지지 으ㅓcz 않은 으ㅓcz 소리로 으ㅓcz 공간을 으ㅓcz 채워내는 으ㅓcz 작업 으ㅓcz 으ㅓcz 이상의 으ㅓcz 의미가 으ㅓcz 있음을 으ㅓcz 추측하게 으ㅓcz 한다. 으ㅓcz 그러나 으ㅓcz 작가는 으ㅓcz 처음부터 으ㅓcz 그의 <아파라투스>를 으ㅓcz 오브제로서의 으ㅓcz 외형, ㅑㅐㅓ타 다시 ㅑㅐㅓ타 말해 ㅑㅐㅓ타 시각 ㅑㅐㅓ타 기호적 ㅑㅐㅓ타 의미로 ㅑㅐㅓ타 해석되지 ㅑㅐㅓ타 않길 ㅑㅐㅓ타 바라왔다. ㅑㅐㅓ타 하지만 ㅑㅐㅓ타 그는 ㅑㅐㅓ타 ㅑㅐㅓ타 장치를 ㅑㅐㅓ타 만들어 ㅑㅐㅓ타 ㅑㅐㅓ타 ㅑㅐㅓ타 외형적인 ㅑㅐㅓ타 형태뿐만 ㅑㅐㅓ타 아니라 ㅑㅐㅓ타 회로를 ㅑㅐㅓ타 설계하고, ㅓㅑ다i 기계 ㅓㅑ다i 속에 ㅓㅑ다i 담겨 ㅓㅑ다i 보이지도 ㅓㅑ다i 않을 ㅓㅑ다i 기판을 ㅓㅑ다i 자신만의 ㅓㅑ다i 독특한 ㅓㅑ다i 방식으로 ㅓㅑ다i 장치 ㅓㅑ다i 자체를 ㅓㅑ다i 철저하게 ㅓㅑ다i 독창적인 ㅓㅑ다i 것들로 ㅓㅑ다i 만들어 ㅓㅑ다i 낸다. ㅓㅑ다i 이런 ㅓㅑ다i 것들로 ㅓㅑ다i 미루어보아 ㅓㅑ다i 그는 ㅓㅑ다i 사실 ㅓㅑ다i 기계가 ㅓㅑ다i 이미 ㅓㅑ다i 가지고 ㅓㅑ다i 있는 ㅓㅑ다i 시각적 ㅓㅑ다i 구조 ㅓㅑ다i ㅓㅑ다i 촉각적인 ㅓㅑ다i 실체가 ㅓㅑ다i 있는 ㅓㅑ다i 감각적 ㅓㅑ다i 특성들에 ㅓㅑ다i 대해 ㅓㅑ다i 관심이 ㅓㅑ다i 있고, m66v 이것이 m66v 사람들과 m66v 감각적으로 m66v 교류할 m66v m66v 있는 m66v 가능성에 m66v 대해 m66v 본능적으로 m66v 반응하고 m66v 있는 m66v 것으로 m66v 보인다. m66v 따라서 m66v 작가 m66v 자신도 m66v 자각하지 m66v 못한 m66v 사이에 <아파라투스>는 m66v 생물학적 m66v 신체와 m66v 기계적인 m66v 것들의 m66v 접촉(사람들의 m66v 내부도 <아파라투스>처럼 m66v 복잡하지만 m66v 내용물이 m66v 감추어져 m66v 있다)을 m66v 시도하면서 m66v 장치와 m66v 생물학적 m66v 연결을 m66v 통한 m66v 새로운 m66v 감각적 m66v 확장을 m66v 인지할 m66v m66v 있는 m66v 지점들로 m66v 조금씩 m66v 이동하고 m66v 있다고 m66v 생각된다. m66v 결국 m66v 그가 m66v 이런 m66v 장치들을 m66v 통해 m66v 시도하는 m66v 청각적 m66v 이미지의 m66v 구현은 m66v 외부의 m66v 이미지를 m66v 내부로 m66v 끌어들이는 m66v 것만이 m66v 아니라 m66v 다시 m66v 내부의 m66v 이미지를 m66v 외부로 m66v 내보내는 m66v 방식이며, uㅓ카e 이런 uㅓ카e 장치와 uㅓ카e 신체 uㅓ카e 사이의 uㅓ카e 자연스러운 uㅓ카e 연결을 uㅓ카e 유발한다. uㅓ카e 그러면서도 uㅓ카e 이러한 uㅓ카e 장치를 uㅓ카e 통해 uㅓ카e 재배열되는 uㅓ카e 인간의 uㅓ카e 신체적 uㅓ카e 감각과 uㅓ카e 이러한 uㅓ카e 감각들의 uㅓ카e 통합으로 uㅓ카e 채워지는 uㅓ카e 청각적 uㅓ카e 공간에는 uㅓ카e 고정된 uㅓ카e 초점이 uㅓ카e 없다. uㅓ카e 결국 <아파라투스>는 uㅓ카e 특정한 uㅓ카e 관점으로 uㅓ카e 소리를 uㅓ카e 가둔 uㅓ카e 고정된 uㅓ카e 상태가 uㅓ카e 아니라 uㅓ카e 지속적으로 uㅓ카e 차원을 uㅓ카e 만들어 uㅓ카e 내는 uㅓ카e 디지털적인 uㅓ카e 매개체로서 uㅓ카e 우리와 uㅓ카e 접촉하면서 uㅓ카e 연결되는 uㅓ카e 오브제로서 uㅓ카e 중요한 uㅓ카e 역할을 uㅓ카e 한다. 

마지막으로 uㅓ카e 퍼포먼스와 uㅓ카e 인터랙티브적인 uㅓ카e 요소들에 uㅓ카e 대해 uㅓ카e 살펴보자. uㅓ카e 사실 uㅓ카e 전시기간 uㅓ카e 동안 uㅓ카e 정기적으로 uㅓ카e 공연하는 uㅓ카e 퍼포먼스를 uㅓ카e 본다면 uㅓ카e 쉽게 uㅓ카e 이해할 uㅓ카e uㅓ카e 있지만, ㅓc거걷 그런 ㅓc거걷 행위들이 ㅓc거걷 없는 ㅓc거걷 전시장에서 ㅓc거걷 관객들은 ㅓc거걷 공중에 ㅓc거걷 가만히 ㅓc거걷 매달려 ㅓc거걷 있는 <아파라투스>들 ㅓc거걷 때문에 ㅓc거걷 당황스러울 ㅓc거걷 것이다. ㅓc거걷 그러나 ㅓc거걷 가만히 ㅓc거걷 귀를 ㅓc거걷 기울여보면 ㅓc거걷 어떤 ㅓc거걷 소리가 ㅓc거걷 지속적으로 ㅓc거걷 나고 ㅓc거걷 있으며, 2거p다 2거p다 장치들을 2거p다 건드리게 2거p다 되면, 우타타w 급작스럽게 우타타w 소리는 우타타w 전시공간을 우타타w 비정형적으로 우타타w 채워나간다. 우타타w 물성을 우타타w 가진 <아파라투스>는 우타타w 사람의 우타타w 행위를 우타타w 필요로 우타타w 하고 우타타w 이런 우타타w 접촉을 우타타w 통해 우타타w 발생하는 우타타w 소리들은 우타타w 관객에게 우타타w 무형의 우타타w 형태와 우타타w 색을 우타타w 가진 우타타w 다층적인 우타타w 감각으로 우타타w 전환된다. 우타타w 이런 우타타w 일련의 우타타w 과정들은 우타타w 우리들이 우타타w 자연스럽게 우타타w 장치 우타타w 자체의 우타타w 자기 우타타w 지시적인(이것을 우타타w 움직이게 우타타w 하는 우타타w 행위를 우타타w 촉발하는) 우타타w 의미를 우타타w 이해하게 우타타w 만든다. 우타타w 그것은 우타타w 작가가 우타타w 관객 우타타w 스스로가 우타타w 감각적 우타타w 전이를 우타타w 발생시키는 우타타w 행위를 우타타w 통해 우타타w 자연스럽게 우타타w 자신의 우타타w 인식이 우타타w 변환되어 우타타w 가도록 우타타w 유도한다. 우타타w 이런 우타타w 이유로 우타타w 작가는 우타타w 관객들이 우타타w 전시장을 우타타w 방문해서 우타타w 같은 우타타w 시간과 우타타w 공간에서 우타타w 동시에 우타타w 존재하고 우타타w 있는 우타타w 공동의 우타타w 주체로서 우타타w 이들과 우타타w 함께 우타타w 전시된 우타타w 오브제들을 우타타w 움직이면서 우타타w 새로운 우타타w 감각적 우타타w 토대를 우타타w 쌓아 우타타w 나가길 우타타w 바란다. 우타타w 이는 우타타w 단순히 우타타w 시각적으로만 우타타w 보고 우타타w 의미를 우타타w 해석하고 우타타w 이해하는 우타타w 기존의 우타타w 방식과 우타타w 같이 우타타w 실제 우타타w 혹은 우타타w 허구적 우타타w 세계의 우타타w 재현에 우타타w 동참하길 우타타w 원하는 우타타w 것이 우타타w 아니라 우타타w 작품과 우타타w 행위자 우타타w 관객 우타타w 사이의 우타타w 특별한 우타타w 관계 우타타w 성립을 우타타w 통해 우타타w 직관적으로 우타타w 받아들이고, z자기e 그것에 ‘나’를 z자기e 직접 z자기e 대면 z자기e 시키기 z자기e 위함이다. z자기e 따라서 z자기e 그에게는 z자기e 전시에서 z자기e 어떤 z자기e 것이 z자기e 일어나고 z자기e 있는 z자기e 상황이 z자기e 중요하지 z자기e 명확하게 z자기e 무엇이 z자기e 일어나고 z자기e 있는지 z자기e 파악하는 z자기e 것이 z자기e 중요한 z자기e 것이 z자기e 아니다. z자기e 일반적인 z자기e 우리가 z자기e 어떤 z자기e 것을 z자기e 의식적으로 z자기e 지각한다는 z자기e 것은 '그것을 z자기e z자기e 자체'로 z자기e 지각하는 z자기e 것이다. z자기e 이런 z자기e 지각 z자기e 이후에는 z자기e z자기e 행위 z자기e 안에서 z자기e 의미가 z자기e 조금씩 z자기e 발생한다. z자기e 그러나 z자기e 우리는 z자기e 작가가 z자기e 의도하는 z자기e 장치를 z자기e 움직이는 z자기e 행위들을 z자기e 통해 z자기e z자기e 명확한 z자기e 기호나 z자기e 의미를 z자기e 찾으려고 z자기e 노력할 z자기e 필요는 z자기e 없다. z자기e 언어적인 z자기e 표현은 z자기e 결국 z자기e 시각성을 z자기e 담보로 z자기e z자기e 것이므로 z자기e 이는 z자기e 작가에게는 z자기e 중요하지 z자기e 않으며, 바hㄴ갸 오히려 바hㄴ갸 위에서 바hㄴ갸 살펴본 바hㄴ갸 것처럼 <아파라투스>라는 바hㄴ갸 오브제와의 바hㄴ갸 접촉하는 바hㄴ갸 바로 바hㄴ갸 바hㄴ갸 지점이 바hㄴ갸 중요하기 바hㄴ갸 때문이다. 바hㄴ갸 그러나 바hㄴ갸 실제적으로 바hㄴ갸 이러한 바hㄴ갸 행위들로 바hㄴ갸 인해 바hㄴ갸 관객들에게 바hㄴ갸 어떤 바hㄴ갸 것들을 바hㄴ갸 불러일으킬지 바hㄴ갸 예측하는 바hㄴ갸 것은 바hㄴ갸 불가능하다. 바hㄴ갸 따라서 바hㄴ갸 그는 바hㄴ갸 다만 바hㄴ갸 감각을 바hㄴ갸 유발하여 바hㄴ갸 어떤 바hㄴ갸 상태로 바hㄴ갸 변환되는 바hㄴ갸 상황 바hㄴ갸 속에서 바hㄴ갸 각각의 바hㄴ갸 주체들 바hㄴ갸 스스로 바hㄴ갸 바hㄴ갸 이유를 바hㄴ갸 발견할 바hㄴ갸 바hㄴ갸 있기를 바hㄴ갸 바랄 바hㄴ갸 뿐이다. 바hㄴ갸 이와 바hㄴ갸 같이 바hㄴ갸 이번 바hㄴ갸 전시는 바hㄴ갸 무엇을 바hㄴ갸 재현하거나, u1ㅓj 하나의 u1ㅓj 사건으로서의 u1ㅓj 감각적 u1ㅓj 경험으로만 u1ㅓj 나타내기 u1ㅓj 위한 u1ㅓj 것이 u1ㅓj 아니라 u1ㅓj 그가 u1ㅓj 소리와 u1ㅓj 장치, g1d거 대상과 g1d거 접촉하는 g1d거 인터랙티브적 g1d거 요소, 6차마ㅑ 퍼포먼스를 6차마ㅑ 통해 6차마ㅑ 새로운 6차마ㅑ 공감각적 6차마ㅑ 환경 6차마ㅑ 6차마ㅑ 자체를 6차마ㅑ 구현하고 6차마ㅑ 있다. 6차마ㅑ 이렇게 6차마ㅑ 전시를 6차마ㅑ 구성하는 6차마ㅑ 요소들은 6차마ㅑ 서로를 6차마ㅑ 가로지르면서 6차마ㅑ 기존의 6차마ㅑ 물질성, z6j가 기표, ㅈ8zp 기의 ㅈ8zp 모두가 ㅈ8zp 상황에 ㅈ8zp 따라서 ㅈ8zp 분리되고 ㅈ8zp 합쳐져 ㅈ8zp 관객이라는 ㅈ8zp 지각하는 ㅈ8zp 주체가 ㅈ8zp 가지고 ㅈ8zp 있는 ㅈ8zp 각자의 ㅈ8zp 조건에 ㅈ8zp 따라 ㅈ8zp 다르게 ㅈ8zp 변하는 ㅈ8zp 고정되지 ㅈ8zp 않는 ㅈ8zp 의미들을 ㅈ8zp 만들어 ㅈ8zp 낸다. ㅈ8zp 여기서 ㅈ8zp 중요한 ㅈ8zp 점은 ㅈ8zp 언어적인 ㅈ8zp 시각적 ㅈ8zp 표현에서 ㅈ8zp 벗어나고자 ㅈ8zp 하는 ㅈ8zp 것이자, 차기파다 재현의 차기파다 단계를 차기파다 넘어서고자 차기파다 하는 차기파다 것이며, 8ㅐ기라 디지털 8ㅐ기라 매체를 8ㅐ기라 통한 8ㅐ기라 새로운 8ㅐ기라 감각들을 8ㅐ기라 공유하는 8ㅐ기라 것이다. 8ㅐ기라 이렇게 8ㅐ기라 전시의 8ㅐ기라 의미들은 8ㅐ기라 관객들이 8ㅐ기라 개입되는 8ㅐ기라 순간부터 8ㅐ기라 그들 8ㅐ기라 자신만의 8ㅐ기라 법칙으로 8ㅐ기라 독립적으로 8ㅐ기라 형성된다. 8ㅐ기라 그렇지만 8ㅐ기라 개인들이 8ㅐ기라 생산해내는 8ㅐ기라 자신만의 8ㅐ기라 8ㅐ기라 어떤 8ㅐ기라 것들은 8ㅐ기라 명확하게 8ㅐ기라 남겨지지 8ㅐ기라 않고, ㅐp자히 일시적인 ㅐp자히 것에서 ㅐp자히 머물 ㅐp자히 것이다. ㅐp자히 따라서 ㅐp자히 후니다 ㅐp자히 킴의 ㅐp자히 전시는 ㅐp자히 지금 ㅐp자히 어떤 ㅐp자히 것과 ㅐp자히 접촉하는 ㅐp자히 행위의 ㅐp자히 현재라는 ㅐp자히 시간성이 ㅐp자히 중요하며, 가3p바 이는 가3p바 우리가 가3p바 지금까지 가3p바 시각적인 가3p바 관점과 가3p바 인식과는 가3p바 다른 가3p바 지점들을 가3p바 발견할 가3p바 가3p바 있는 가3p바 동기를 가3p바 유발한다. 가3p바 일반적으로 가3p바 사람들의 가3p바 행동에 가3p바 결정적인 가3p바 동기가 가3p바 되는 가3p바 것은 가3p바 사실 가3p바 조용한 가3p바 성찰이나 가3p바 신념들이라기보다는 가3p바 감정이지만, ㄴ라dl 우리는 ㄴ라dl 감각을 ㄴ라dl 통한 ㄴ라dl 비언어적인 ㄴ라dl 의미들을 ㄴ라dl 언제나 ㄴ라dl 기계처럼 ㄴ라dl 언어적으로 ㄴ라dl 번역하게 ㄴ라dl 된다. ㄴ라dl 하지만 ㄴ라dl 작가는 ㄴ라dl 장치와 ㄴ라dl 접촉하여 ㄴ라dl 연결되는 ㄴ라dl 현재적 ㄴ라dl 시간성을 ㄴ라dl 통해 ㄴ라dl 이러한 ㄴ라dl 이성적 ㄴ라dl 번역에 ㄴ라dl 앞서 ㄴ라dl 청각과 ㄴ라dl 촉각을 ㄴ라dl 통해 ㄴ라dl 어떤 ㄴ라dl 감정을 ㄴ라dl 유발함으로써 ㄴ라dl 새로운 ㄴ라dl 디지털적 ㄴ라dl 감각에 ㄴ라dl 대한 ㄴ라dl 것을 ㄴ라dl 각자의 ㄴ라dl 방식으로 ㄴ라dl 인지하게 ㄴ라dl 하는 ㄴ라dl 계기를 ㄴ라dl 마련한다. 

지금까지 ㄴ라dl 살펴본 ㄴ라dl 것들을 ㄴ라dl 정리하자면 ㄴ라dl 인간은 ㄴ라dl 물리적인 ㄴ라dl 현존뿐만이 ㄴ라dl 아니라 ㄴ라dl 이성적, x0ㅐz 지성적 x0ㅐz 현존으로 x0ㅐz 자기 x0ㅐz 자신을 x0ㅐz 인식하지만, ㅐㅈj카 현재의 ㅐㅈj카 디지털적인 ㅐㅈj카 세상은 ㅐㅈj카 지금까지의 ㅐㅈj카 방식에서 ㅐㅈj카 새로운 ㅐㅈj카 변화를 ㅐㅈj카 가져오고 ㅐㅈj카 있다. ㅐㅈj카 따라서 ㅐㅈj카 감각은 ㅐㅈj카 우리가 ㅐㅈj카 원하던 ㅐㅈj카 원치 ㅐㅈj카 않던 ㅐㅈj카 변해갈 ㅐㅈj카 수밖에 ㅐㅈj카 없다. ㅐㅈj카 물론 ㅐㅈj카 아직은 ㅐㅈj카 이러한 ㅐㅈj카 것들이 ㅐㅈj카 명확하게 ㅐㅈj카 연결되어 ㅐㅈj카 드러나지 ㅐㅈj카 않는 ㅐㅈj카 것처럼 ㅐㅈj카 보인다. ㅐㅈj카 이는 ㅐㅈj카 사람들이 ㅐㅈj카 지금까지 ㅐㅈj카 보편적으로 ㅐㅈj카 지속되어온 ㅐㅈj카 반복적인 ㅐㅈj카 삶으로 ㅐㅈj카 인해 ㅐㅈj카 무감각해져 ㅐㅈj카 있기 ㅐㅈj카 때문이기도 ㅐㅈj카 하다. ㅐㅈj카 이런 ㅐㅈj카 상황에서 ㅐㅈj카 디지털은 ㅐㅈj카 항상 ㅐㅈj카 베타(Beta)이고, 아l6s 완전히 아l6s 체화(體化)되는 아l6s 것은 아l6s 불가능하지만, g마s타 인지하지 g마s타 못하는 g마s타 것에 g마s타 대한 g마s타 끊임없는 g마s타 확장을 g마s타 본성으로 g마s타 가진 g마s타 인간은 g마s타 언젠가는 g마s타 새로운 g마s타 감각들을 g마s타 원래부터 g마s타 존재했던 g마s타 것처럼 g마s타 받아들일 g마s타 것이다. g마s타 결국 g마s타 후니다 g마s타 킴이 g마s타 그의 g마s타 작업을 g마s타 통해 g마s타 이야기하고자 g마s타 하는 g마s타 것은 g마s타 이러한 g마s타 디지털적 g마s타 환경 g마s타 속에서의 g마s타 인식의 g마s타 전환일 g마s타 것이다. g마s타 이는 g마s타 전시의 g마s타 제목처럼 g마s타 우리에게 g마s타 익숙한 g마s타 것들이 g마s타 쌓여서 g마s타 어떤 g마s타 것을 g마s타 인지하게 g마s타 되지만 g마s타 결국 g마s타 새로운 g마s타 인식을 g마s타 촉발하기 g마s타 위해서는 g마s타 이들이 g마s타 녹아 g마s타 내리는 g마s타 과정이 g마s타 필요한 g마s타 것이며, ㅈ타oo 전시의 ㅈ타oo 부제에서처럼 ㅈ타oo 작가는 ㅈ타oo 일상적인 ㅈ타oo 소리를 ㅈ타oo 바탕으로 ㅈ타oo 아직은 ㅈ타oo 낯선 ㅈ타oo 것들을 ㅈ타oo 보여줌으로써 ㅈ타oo 이러한 ㅈ타oo 과정들을 ㅈ타oo 만들어 ㅈ타oo 가는 ㅈ타oo 중이다. ㅈ타oo 이번 ㅈ타oo 전시는 ㅈ타oo 관객들에게 ㅈ타oo 디지털 ㅈ타oo 세계에 ㅈ타oo 맞춰 ㅈ타oo 예민하게 ㅈ타oo 반응하는 ㅈ타oo 존재인지 ㅈ타oo 아니면 ㅈ타oo 기존의 ㅈ타oo 틀을 ㅈ타oo 아직은 ㅈ타oo 넘어서지 ㅈ타oo 못하는 ㅈ타oo 존재인지 ㅈ타oo 스스로 ㅈ타oo 자문해 ㅈ타oo ㅈ타oo ㅈ타oo 있는 ㅈ타oo 계기가 ㅈ타oo ㅈ타oo ㅈ타oo 있을 ㅈ타oo 것이다. ㅈ타oo 그러나 ㅈ타oo ㅈ타oo 누가 ㅈ타oo 그것을 ㅈ타oo 분명히 ㅈ타oo ㅈ타oo ㅈ타oo 있을 ㅈ타oo 것이며, 라ㅐ으ㄴ 어떻게 라ㅐ으ㄴ 확실히 라ㅐ으ㄴ 라ㅐ으ㄴ 라ㅐ으ㄴ 있을까? 라ㅐ으ㄴ 이는 라ㅐ으ㄴ 경계가 라ㅐ으ㄴ 명확하지 라ㅐ으ㄴ 않은 라ㅐ으ㄴ 일이다. 라ㅐ으ㄴ 그럼에도 라ㅐ으ㄴ 불구하고 라ㅐ으ㄴ 라ㅐ으ㄴ 시작은 라ㅐ으ㄴ 아마도 라ㅐ으ㄴ 지금 라ㅐ으ㄴ 우리가 라ㅐ으ㄴ 있는 라ㅐ으ㄴ 지점을 라ㅐ으ㄴ 넘어서는 라ㅐ으ㄴ 일이 라ㅐ으ㄴ 라ㅐ으ㄴ 것이며, 히사6파 후니다 히사6파 킴은 히사6파 히사6파 시작점으로서의 히사6파 환경들을 히사6파 만들어 히사6파 내고 히사6파 있는 히사6파 것이다.

출처 : 히사6파 페리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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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후니다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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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가갸y9 리플리에게 NEWS, DEAR MR. RIP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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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4일 ~ 2019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