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범 개인전: 빽스테이지

플레이스막2

2021년 5월 7일 ~ 2021년 5월 29일

무대 뒤에 남겨진 자리

관객들이 자리를 일어나고 무대 위 조명이 꺼지자 보이던 것들도 사라진 거야. 순간의 긴장과 여운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찰나에 흩어져버렸어. 보이는 것과 본다는 것은 과정은 생략되고 가시화 된 것으로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한지도 몰라. 우리가 그림을 볼 때 표면에 드러난 색과 물성이나 그려진 형상을 얘기하면서 그리는 행위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공연이 끝난 빈 무대가 쓸쓸하게 보인다면 배우들의 몸짓이, 발화한 음성들이, 무대를 채운 빛과 소리에 담긴 혼들이 다 타버렸기 때문일 거야. 아무도 보지 못한 걸까. 불꽃을 피우기까지의 노력을. 예술의 이해라는 건 관객들의 시선 바깥에 있는 예술가의 고난과 외로움을 살펴볼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보이지 않는 면을 보기 위해서, 벽면 너머에 쌓인 것들을 찾아보기 위해서 무대 뒤로 자리를 옮겼어. 노란 숲¹이 있었어. 숲을 밝게 비추고 있는 노란 빛은 숲 속 식물의 줄기를 잡고 매달려있는 남자를 둘러싼 공기랄까, 분위기랄까.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호하게 남은 영역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름을 모르는 야생의 식물을 볼 때 질긴 생명력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 그는 마치 자기가 매달린 식물과 같이 놀고 있는 것 같았어. 그 자신도 식물의 일부인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덩굴처럼 식물을 잡고 늘어지듯 서있는 것 같기도 했어. 그를 바라보던 그녀처럼 말이야. 

그녀의 집에는 언제부터인가 화분이, 식물이 늘어났어. 내가 이름을 물어보면 그녀는 자신의 방에, 거실에, 건물의 외벽에, 옥상에 자리한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었어. 어느 날에는 유칼립투스는 예민한 아이라고, 민감한 아이라 키우기 힘들다고 말해주었어. 마치 꽃을 피우고, 진한 녹색의 잎사귀나 저마다 다른 모양을 보기 위해 곁에 두는 게 아니라 식물을 사람처럼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녀에게 식물의 존재는 무엇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누군가는 그녀를 강한 사람이라고, 언어나 감정 표현이 정확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나는 많이 보았어. 웃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이면에 점점 좁아진 마음의 문과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말이야. 그녀에게 식물은 의지할 수 있고 상처받지 않는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인 건지도 모르겠어. 자기가 받은 상처를 시선이나 말로 타인에게 전해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어. 식물의 뿌리처럼 단단하고 굳건한 태도로 자기가 딛고 선 땅 위에서 말이야. 

노란 숲을 지나자 그녀가 한 발로 서있었어. 하늘과 타오르는 태양의 붉은 빛을 등을 지고 피어나고 자란 꽃과 식물 사이에서 그녀 자신도 숲의 일부인 것처럼, 숲의 구성원인 것처럼 서있었어. 그녀는 피부를 통해 호흡을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자신이 느낀 감각으로, 타인들에게는 촉감으로 숨을 불어넣고 있었던 거 같아. 내가 본 것은 사람의 몸짓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숲이었던 거 같아.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았던 걸까.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있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명처럼 빛나고 있어. 무대 뒤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환대의 자리를 목격하고 있어. 어떤 차별도, 구분도 없이 모두가 환대받을 수 있는 곳에서 그녀의 공연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노란 숲¹ 2013년 겨울, 흑표범 작가의 그림을 말한다. (작품 제목은 노랑사. norangsa. 캔버스에 유화. 73 x 91cm) 흑표범 작가가 그녀의 오랜 친구인 이정식 작가의 HIV/AIDS 감염 토크 콘서트를 위해 그렸던 그림이다. 제목이 노랑사인 이유는 이정식 작가가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일본 전대물 ‘바이오맨’의 yellow 4 히어로를 좋아해서 본인의 별명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은주

참여작가: 흑표범

출처: 플레이스막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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