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라는 곳은 나에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내가 어릴 때 경험한, 현재 내가 어른(?)이 된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한 어른(정신적, 물리적인 형태의 무엇을 가진 자)은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베풀어 주고 보듬을 줄 아는 대상이었지만 냉혹하게도 현실은 거센 칼바람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의문과 의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권력과 이데올로기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도덕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세상이야 말로 진정 행복하고 깨끗한 세상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과 거짓, 정의, 도덕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힘의 논리, 경제적 논리에 의해 제 정립되고 그게 마치 진실인 것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소비된다.
나는 이런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사회를 화폭을 통해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을 한다.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대중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의 자료들과 직접 경험으로 채집한 자료들, 그리고 차용의 형식을 이용하여 내가 느끼는 사회의 비합리성, 부조리한 단면을 나열, 재배치의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썩 유쾌하지 않은 혹은 불편할 수 있는 사실들을 이야기한다. (비합리적인 사회를 대변하는 대중매체의 자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조리함에 맞서는 내 작업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렇게 동시대에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세월호 침몰, 해군기지 반대, 용산 참사 등)의 재조합의 표현 방식은 이 시대 부조리함의 고발이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인식시키고 동시에 새로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상상하자는 나의 또 다른 외침이기도 하다. - 박재윤

- ‘바람결’, ‘물결, ‘숨결’이 빚어낸 작가-
삼다 제주도에는 세 가지가 많다. ‘바람’, ‘돌. 그리고 ‘여자’를 말한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간다면 또 다른 세 가지를 만날 수 있다.
첫째 : 바람이 움직임을 일으켜 생기는 ‘바람결’.
둘째 : 덩치 큰 섬을 둘러싸느라 끝없이 요동치는 바다의 ‘물결’.
셋째 : 바람결과 물결이 빚어내는 척박하고 험한 환경을 녹여내는 섬사람들의 깊고 강인
한 ‘숨결’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을 구조하는데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線”이란 구성요소다. 이 선에 대한 이해에 두 개인전에서 많은 차이가 읽혀진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가 사용한 선은 기억된 이미지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는 반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단순한 선이 아닌 스스로 숨쉬며 생명을 열고 나가는 ‘숨결’로 보고 있다. 숨결이 공간을 열어 확산시키고, 교감시키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는 것이다.
“원래 ‘線’이 움직임을 얻으면 ‘결’이 되고, 여기에 온기가 더해져 이어지면 ‘숨결’이 된다는 것은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작가노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곳- 물들다
한라산 풍경이 아름답고 바다가 있는 화북포구 앞 나의 작업실 돌 창고.
봄이 되면 스레이트 지붕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넝쿨줄기 식물이 계절의 변화는 느끼게 해준다.
혼자 숨 쉬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순간 초록친구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이승수

그리는 것에 대하여.
재현은 미술이 가진 기본 속성이다. 사물을 보고 그린 작품은 사물에 대한 재현이고, 작가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 추상화도 결국 느낌을 재현한 것일 따름이다. 나는 재현을 통해 대상에 대한 개인의 심상을 표현 한다. 내 작업방식은 이렇다. 우선 습관적으로 그릴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관찰한다. 단편적인 풍경 혹은 그것의 시간에 따른 변화, 대상의 관계성에 대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주변에서 관찰한 소재들이 하나의 심상이 되기까지 대상과 오랫동안 교감을 나눠야 하는데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마음과 기억 속에 자리한 시각적 · 촉각적 이미지를 선정하면 그 이미지를 표현할 색을 선택한다. 색의 선택은 내 무의식에 각인된 소재의 색채를 순간적으로 선택한다. 대상을 상상하고, 종이 위에 놓여지는 색과 색의 관계를 고민하며 수도자적인 자세로 한 올의 결을 올리듯 세필로 색의 층을 쌓아 단위의 집합을 만들어 낸다. 일련의 과정은 동적이며 정적인 이미지를 표현한다. 사실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관조하다.
인간이 산다고 하는 사실 속엔 반드시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수반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산다고 하는 행위는 교섭하는 소통을 의미한다. 이 소통은 생명체라 하는 몸과 그 몸이 놓여진 마당과의 상호 유기적인 공존공생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이미 주위의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모든 생명은 자연의 변화와 질서 속에서 내 주변의 생명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이 균형을 잃게 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변화와 질서를 알아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서 알아채려면 따뜻한 시선으로 자세히 보아야 한다. 지나치는 풍경이 아니라 대비가 강한 나무 사이를 천천히 응시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는 작은 것들에 대해서 관조 했을 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기섭
출처 - 갤러리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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