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효준)은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품 소장기관 영국문화원과 함께 전시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 하기≫를 9월 1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는 지난 약 80년 동안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온 영국문화원이 소장한 8,5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약 26점을 선별한 전시로,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동시대 작가 16명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 하기≫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 정치, 문화적 주요 사건과 활동을 배경으로 삼는다. 연대기적 구성에 따른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는 영국 사회의 계층, 민족, 경제, 정치적 분열과 그 경계에 대하여 자신만의 언어와 목소리로 개입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의 태도와 실천을 살피는 데 더욱 집중하도록 구성돼 있다.
28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제와 자료들로 구성된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의 <포크 아카이브>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영국의 전통과 문화와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와 함께 차분한 일상 속에 새겨진 갈등과 분열의 흔적을 담은 마틴 파와 폴 그라함의 사진, 가장 진부한 이미지들로 동시대 영국의 초상을 유희적으로 담아 냄으로써 오늘날 영국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하는 그레이슨 페리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관습화된 영국 사회의 오래된 계급 문화를 풍자하는 마크 월린저의 비디오 설치작품은 영국 사회의 오랜 분열 양상을 다각도로 함축하여 제시한다. 한편, 모나 하툼, 루바이나 히미드, 존 아캄프라, 삼손 캄발루는 자전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사회 안에서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환기하며 그 사회에 비평적으로 도전하는 삶 자체를 시각 예술의 언어로 선보인다. 칼리 스푸너, 레이첼 맥클린, 볼프강 틸만스, 밥 앤 로버타 스미스, 에드 홀은 작가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시대 영국의 시급한 문제를 발화하며, 질리안 웨어링의 초기작과 함께 어우러져 정치적 입장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전시는 작가들의 시선과 발화를 따라 다른 목소리와 이질적인 가치가 불협하며 공존하는 영국 사회를 다각도로 살핀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를 향한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이 개인의 인식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11월 첫째 주에는 참여 작가 알란 케인, 에드 홀, 루바이나 히미드가 서울을 방문하여 작가와의 대화, 강연 등의 연계 행사를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또한, 관객들의 상상과 자발적인 논의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로써 전시장 곳곳에 설치될 옥인 콜렉티브의 <자기-주도 가이드>와 전시 기간 동안 3회에 걸쳐 진행 될 <광장 세미나: ‘참여와 개입의 예술 실천’을 위한 공론장>은 물론 임근혜(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임산(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양창렬(철학 연구자)의 강연과, 골드스미스 대학 예술 및 정치학과 교수 마이클 듀튼과 존 리어든의 워크숍,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태피스트리 만들기, 시위 피켓 만들기 등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불협화음을 낼지언정,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끊임없이 분열과 통합을 지속해나가는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시선과 외침은 다른 목소리와 이질적인 가치가 뒤섞여 공존하는 영국 사회와 공명하는 예술 실천의 흐름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게 한다. 영국의 가까운 과거로부터 새롭게 직조하여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이 전시는 사회에 개입하는 다양한 예술 실천의 모습을 살핌으로써 우리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를 향해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를 낼 것을 요청한다. 본 전시는 이와 같은 예술 실천이 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발화로 이루어진 불협화음의 공간을 생성하는 전략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크 월린저 Mark Wallinger
<로열 애스콧>, 1994, 4 대의 모니터와 항공 운송 케이스, 3분 42초, 영국문화원 소장품
마크 월린저는 영국의 진보적인 사고방식과 전통을 반영하는 작업에서 점차 외연을 넓혀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 신화, 의식, 사회구조와 같은 20세기 영국의 정체성에 관한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영국 왕실이 충실하게 후원하는 경마 행사 '로열 애스콧'을 소재로 영국 사회에 남아있는 계급주의와 혈통주의를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네 대의 대형 모니터로 이뤄진 작품 속의 아름답지만 터무니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한 왕실 일가의 모습을 통해 왕실 행렬의 가공된 본성과 영국 계급 사회에 대한 해학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그레이슨 페리 Grayson Perry
<포근한 담요>, 2014, 태피스트리, 290 x 800 cm, 작가와 런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제공 ⓒ 그레이슨 페리
도예, 판화, 자수, 영상 등 매체를 가리지 않는 그레이슨 페리는 권위적인 개념미술을 거부하고 친밀한 수공예품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비평적인 서사를 만든다. 전시된 작품 <포근한 담요>는 8미터가 넘는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10파운드짜리 지폐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는 기념비적인 모습을 통해 혼성적인 동시대 영국의 초상을 담아내는 한편 국가 이미지의 과대포장이나 편견을 드러내면서 그의 많은 다른 작업처럼 ‘영국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풍자를 교차시키고 있다.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 Jeremy Deller and Alan Kane
<포크 아카이브>, 2005, 혼합 매체, 가변크기, 영국문화원 소장품
<포크 아카이브>는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이라는 두 작가가 한 팀으로 오랜 기간 조사 · 수집한 280여 점의 오브제, 영상, 사진, 인쇄물 등으로 이루어졌다.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축제와 이와 관련된 의상, 액세서리, 기록물, 잔해, 각종 상점 주인의 취향이 담긴 촌스럽고 현대적인 소품, 시위 현장에서 쓰였던 배너와 인쇄물 등에는 만든 사람의 희로애락과 취향, 당시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다. 1387년에 설립된 축제의 레슬링 행사에 사용되었던 장식적 의상은 규모가 작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공동체의 단면이며, 다이애나비에 대한 기억이나 심슨 등 만화영화 캐릭터는 가까운 과거의 대중문화를 살펴보는 단서가 된다. 이처럼 <포크 아카이브>에서 보이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영국의 전통과 문화, 사회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그간 제도권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종종 경시하고 불신해왔던 일반 대중의 활동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대중이 결코 수동적으로 떠다니는 무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고 변형하며, 때로는 새롭게 구성해내는 능동적인 개인의 집합이라는 것을 은유한다.

루바이나 히미드 Lubaina Himid
<1974>, 2015, 캔버스에 아크릴, 64 x 45.3 x 2 cm
루바이나 히미드는 회화를 주 매체로 사용하면서 역사를 재구성하거나 젠더와 지위를 재고하는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여성과 흑인에 관련된 주제로 전시 ≪다섯 흑인 여성 (아프리칸 센터, 1983)≫, ≪흑인 여성의 현재 (배터시 아트 센터, 1983-4)≫, ≪가늘고 검은 선 (ICA, 1985)≫을 기획하는 등 흑인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주장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전시된 세 작품 <1792>, <1974>, <2015>는 모두 정치적인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삼았다. <1792>에 묘사된 인물은 아이티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투생 루베르튀르이다. 그는 노예 해방운동과 독립운동을 지도했으며, 1792년은 그가 아이티의 지도자가 된 해이다. <1974>의 여성은 페미니스트 시대를 은유하고, <2015>에 등장한 ‘투표’라고 적힌 단추가 달린 셔츠를 입은 남성은 현대의 흑인을 묘사하고 있다. 각각 정치지도자와 여성, 흑인이자 시민을 담으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개혁적 목소리를 담고 있다.

존 아캄프라 John Akomfrah
<끝나지 않은 대화>, 2012, 3채널 디지털 비디오, 컬러 및 사운드, 45분, 예술 기금의 후원을 받아 영국문화원과 테이트 미술관이 공동 구입 및 소장
1980년대 영국 사회는 인종갈등을 비롯하여 파업이나 반핵, 게이 해방, 페미니즘 운동 등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반정부적 운동이 이루어진 격변기였다. 당시 존 아캄프라는 400년이 넘는 이민의 역사를 탐구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를 창설하여 1998년까지 영국 내 흑인의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2012년에 처음 선보인 <끝나지 않은 대화>에서는 영향력 있는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의 삶을 따라 정체성이란 완결된 정점이나 존재라기보다는 무엇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개념을 살펴나간다. 1951년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스튜어트 홀은 신좌파를 구축한 인물 중 하나로, 영국의 문화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식인이다. 영상에서 홀은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을 논의하는데, 정체성과 민족성은 고정되지 않으며 ‘영영 끝나지 않는 대화’와 같다고 말한다. <끝나지 않는 대화>는 사회 안에서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름을 인지한 그 사회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환기한다.

레이첼 맥클린 Rachel Maclean
<사자와 유니콘>, 2012, 고화질 비디오, 11분 30초, 에딘버러 프린트메이커스 커미션, 영국문화원 소장품
레이첼 맥클린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제작한 풍경에 첨예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을 환상의 내러티브로 구성하여 담는다. 영상, 인쇄물, 사진 작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작가 자신이 기이한 복장과 짙은 메이크업으로 직접 제작 · 연출한 것이다. <사자와 유니콘> 역시 역사적인 내용과 유희적인 동물 캐릭터, TV 인터뷰 등의 장르에서 끌어온 요소들이 이질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 사자와 유니콘은 영국 왕실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며, 이 둘의 관계는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2014년에 있었던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와 브렉시트로 인해 또다시 커진 독립의 목소리는 영국으로 묶인 두 국가의 꺼지지 않는 독립과 통합의 갈등을 은유한다.
에드 홀 Ed Hall
<사우스 요크셔 커뮤니티 분점의 UNITE 조합을 위한 배너>, 2014, 배너 제작: 에드 홀 UNITE 조합 제공 ⓒ 에드 홀
중요한 정치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에드 홀은 그가 속한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에드 홀은 람베스구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16,000여 명의 직원을 대표하여 람베스구의 ‘UNISON’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배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9년에 람베스구 행사의 일환으로 홀은 브릭스턴 폭발에 항의하는 배너를 포함한 UNISON의 부스를 설치했는데, 이때 제레미 델러를 만난다. 이를 계기로 제레미 델러는 2000년 테이트에서 열린 전시 ≪Intelligence≫에 에드 홀의 브릭스턴 폭발 배너를 포함했다. 홀은 2005년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이 기획한 프로젝트인 <포크 아카이브>를 위한 배너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대미술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지속하면서도 홀은 배너 제작자로서 지난 30년간 그가 동조하는 가치에 힘을 보태는 차원에서 여러 압력 단체, 노동조합, 시위 등을 위해 500여 개의 배너를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크 아카이브>에 포함된 배너 외에도 기후 변화에 맞서는 캠페인, 강둑길에서 펼쳐진 긴축 재정 반대 행진, ‘쇠사슬 제작자들’ 페스티벌, 전쟁에 반대하는 변호사들의 모임, 국민연금을 위한 캠페인 등을 위해 제작한 배너 15점을 함께 전시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자기-주도 가이드/옥인 콜렉티브(이정민, 진시우)
전시장 내 상설 설치
<자기-주도 가이드>는 전시된 작품을 출발점 삼아 이를 우회하거나 재해석하면서 소장품을 우리의 문맥에서 살려내는 매개적 역할을 한다. 작품에 주석을 달거나 공통된 속성을 걸러내어 공감을 형성하는 지점을 드러내기도 하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전시에 개입하듯 제시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품에 현재성과 다층적인 시점을 부여하며, 관객들의 능동적인 사유와 발화를 촉매 하고자 한다.
광장 세미나: ‘참여와 개입의 예술 실천’을 위한 공론장
구수현, 권혁빈, 박다함, 최빛나, 심소미, 이한범
일시 : 10월 13일(비공개), 11월 4일(비공개), 11월 10일 금요일 오후 4시-6시(공개 토론)
광장 세미나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의 방식과 태도로 예술 실천 혹은 운동을 수행하는 주체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 세미나의 목적 참여자들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자문하고, 평가하고, 스스로의 논리를 세워서 확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 행위자들의 특이점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봄으로써 ‘예술 실천’의 의미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세미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마지막 세미나는 공개 토론으로 진행하여 그 논의를 확장하고자 한다.
*11월 10일 공개 토론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10월 13일, 11월 4일 세미나의 내용은 진(zine)의 형식으로 무료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강연
현대미술은 영국사회를 어떻게 표상하는가
임근혜(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일시 : 9월 21일 목요일 오후 4시
불협화음의 기술/예술
양창렬(철학 연구자)
일시 : 10월 12일 목요일 오후 4시
미완의 ‘뉴레프트’: 영국 문화연구의 개척자 스튜어트 홀을 기억하며
임산(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일시 :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4시
워크숍
고통 관람 안내서
존 리어든, 마이클 듀튼(골드스미스 대학 예술 & 정치학과 교수)
일시 : 10월 29일 일요일 오후 4시
작가 연계 프로그램
아티스트 토크: 알란 케인 & 에드 홀
일시 : 11월 2일 목요일 오후 4시
대담: 소장품과 문화 정체성(가제)
엠마 덱스터(영국문화원 시각예술 디렉터), 최효준(서울시립미술관장)
일시 : 11월 3일 금요일 오후 2시
강연: 80년대 영국의 사회상과 흑인 예술 운동(가제)
루바이나 히미드(참여 작가,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수)
일시 : 11월 4일 토요일 오후 2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슬로건 아트: 발언하는 나, 예술가
송현정, 이수미, 박예림 진행
일시 : 2017년 10월 13일 - 11월 10일 중 매주 수요일, 금요일
아티스트 워크숍: 공론의 장, 공예
김지영(작가), 송현정, 이수미, 박예림 진행
일시 : 2017년 10월 13일 - 11월 10일 중 매주 목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작가
폴 그라함,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 레이첼 맥클린, 밥 앤 로버타 스미스, 칼리 스푸너, 존 아캄프라, 마크 월린저, 질리언 웨어링, 삼손 캄발루, 볼프강 틸만스, 마틴 파, 그레이슨 페리, 모나 하툼 에드 홀, 루바이나 히미드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영국문화원
후원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SC제일은행, 포시즌스 호텔 서울, 디아지오 코리아
담당 큐레이터 : 박가희(서울시립미술관), 협력 큐레이터: 클레어 필리(영국문화원)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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