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CRE8TIVE REPORT

OCI미술관

2021년 1월 21일 ~ 2021년 3월 20일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분명 내면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자극이 있는데, 그 감정을 표현하자니 적당한 꾸밈말들이 쉽게 쌓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언어로서 표현되지 않는 많은 감정이 존재합니다. 형상을 분석하여 기술하고 누군가의 이력에 기반하여 그 의도를 추리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작가의 시선과 감정을 천천히 쫓아가 볼까요. 그 어디쯤 내 나름의 상황과 감성을 투사해 다소 엉뚱한 생각들을 늘어놓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작품 하나가 내면에 천천히 똬리를 틀기 시작하면 언젠가 우리 일상에서 불쑥, 마치 데자뷔처럼 튀어나오기도 하겠죠. 작품에 담긴 작가의 시선 하나 손길 하나가 어느새 스며들어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정신 활동, 이것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의 힘일 것입니다.

2021년 1월,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들의 사유가 작품이라는 다양한 형상과 구조로 재현되어 이곳에 자리합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여러분 내면에 존재하는 감성적 몰입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GR1은 도심 사이 오래된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그 흔적을 작품 전면으로 촘촘히 드러냅니다. 나날이 집합되어 그 덩치를 키워가는 대도시는 좁은 골목을 밀고 또 밀어 결국 어둡고 스산한 담벼락밖에 남지 않았지만, 언젠가 찬란한 도시를 만들어 냈을 법한 낡은 용광로의 열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쏘시개의 역할은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당장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소수입니다. 다수의 침묵을 깨우는 소수의 고함은 골목길의 담벼락에서 캔버스로 옮겨져 여전히 그 열기를 유지합니다.

김민호의 시선은 일련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장소 또는 상황이 갖는 다수의 장면을 쌓으며 오히려 사건 자체를 희석시킵니다. 보통 관련 데이터가 모이면 문제의 모양새는 선명해지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연관된 이미지를 흔들고 새로운 수를 둠으로써 완벽한 재현에 그 의미를 가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목전의 사건만을 바라보는 매몰된 시야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인 전개를 통한 다각도의 사유를 권합니다.

김정은은 변화된 길의 모습을 기록하고 교차하며 기억과 경험의 보편적 가치를 되새깁니다. 작가가 다루는 물길은 사람이 이용하는 일정한 너비의 공간 아래를 흐릅니다. 과거로 사라진 시간을 품은 채 여전히 그 여정을 지속하는 물길은 어느 산자락을 가르고 이내 자갈 사이를 스쳐 날마다 새로운 흔적을 남깁니다. 작가는 그 과정을 추적하여 과거와 현재의 교차지점을 조형적 시각으로 읽어내고 객관적 지표로서의 지도가 아닌, 개인의 기억과 시간이 담긴 지도를 만들어냅니다.

손승범은 믿음의 대상이거나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고대 조각상과 함께 바위라는 원형적 형태를 재현하고 한낱 잡초나 곧 부러질 듯 앙상한 나뭇가지로 그 형태를 과감히 지워나갑니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변화라는 새로운 생성 과정의 이면에는 잊혀지고 소외된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작가는 믿음이라는 행위에 앞서 그것이 참이라 여기는 마음 자체를 다시 살펴보길, 피상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가 본질을 좇아 구하고 생각해 보길 제안합니다.

이호억은 자연 속의 고유한 개인으로 천착하여 이미지를 발췌하고 장면을 채집합니다. 자연을 담던 날의 온도, 냄새, 습기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도 입체적인 자료로 활용됩니다. 산맥을 뒤덮은 억센 뿌리를 붉은 실로 꿰매어 상처와 회복에 대해 고민하고, 산보다도 거대한 구름 아래 자신은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자연은 나 자신을 살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이치를 작품에 투사해, 보는 이의 감정과 정신을 일으켜 세웁니다.

전주연의 작품은 습기의 막이 한 꺼풀 씌워진 것처럼 흐릿하지만 명료하지 않은 만큼 또 다른 이야기가 스며들 영역을 마련합니다. 어떠한 대상에 비추어 헤아리는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하는 미술언어는 채득을 위한 연속적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언어적 사고의 틀, 인지에 대한 기대효과에 매몰되는 것을 탈피해 텍스트를 다른 감각으로 이행하는 작가는 언어의 세계와 미술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의 과정을 온전히 즐기고 또 실험합니다.

정철규의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제스처가 작품 전체를 아우릅니다. 군데군데 긴 침묵이 끼어들 만큼 조심스러워 진행이 느릴지라도 허투루 풀어놓지 않으며 조금 다르다고 해서 쉽게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거칠고 직접적인 것보다 때로는 꺼질듯한 속삭임과 가느다란 감각들이 더 예리하게 마음을 꿰뚫기도 하죠. 작가는 오래 바라보고 자주 다시 생각해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의 가치를 꺼내 올립니다.

천창환이 읽어내는 공간은 매우 다양한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심한 듯 텅 빈 면적은 곁에 둔 강렬한 틈새 하나로 인해 예민한 긴장감을 가지고, 납작하고 도톰한 붓질이 교차되며 매우 헌신적인 표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감각의 조각들은 스쳐가는 수많은 풍경의 틈새들을 채우며 되풀이된 적 없는 하루를, 서로 닮은 적 없었던 여러 밤들을 떠올리게 해 보는 이의 심리적 공감을 유도합니다.

모두를 지치게 했던 지난 한 해, OCI미술관 10기 입주작가들은 우리가 스치듯 지나는 장면을 쉬이 넘기지 않았습니다. 시선이나 정성이 깃들지 않는 곳을 깊게 들여다 보고, 잊혀지고 소외된 것들을 크게 안아 살피며, 섬세한 감각으로 대상을 거두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스며든 이야기를 내어 놓았습니다. 이들의 시선과 손길이 상처입고 지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입주작가들의 다음 행보에도 큰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영지 (OCI미술관 큐레이터)


참여작가: GR1, 김민호, 김정은, 손승범, 이호억, 전주연, 정철규, 천창환

출처: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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