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김선두 명예관장)은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드로잉 전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고자 매년 작가공모를 실시하여 최종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회를 “Into Drawing”이란 이름으로 개최합니다. 올해는 2016년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에 선정된 작가 3인의 개인전으로 진행됩니다. 금년 첫 번째 전시로 3월 17일부터 4월 2일까지 개최되는 “Into Drawing 33”는 “개가 짖는다 (Dogs are Barking)”라는 부제로 박승예의 드로잉, 회화,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입니다. 박승예는 익숙한 표현 속 가치없음을 나타내는 개를 소재로 한 노동집약적 드로잉을 인간사회에 대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관계망 속 인간의 행태를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시각화해내는 작가의 전달력과 새로운 매체인 3D펜 드로잉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본 전시는 소마미술관 메인 전시(내가 사는 피부)와 함께 관람 가능합니다.
전시 소개
0(零, zero)
철창 하나에 개 한 마리가 들어앉듯 흰 방안에 단 하나의 피사체가 자리 잡고 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지탱하는 가느다란 서까래 사이로 부푸는 원망과 꺼지는 신뢰가 들쑥날쑥 인다. 피 흘리는 주둥이를 핥은 후 어렵사리 든 고개로 죽음의 숨을 고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엄습하는 서늘한 경고는 신경의 방어기제를 본능적으로 가동시켜 위험으로 부터 몸을 보호하지만, 감당할 수 없이 울리는 신호는 육신을 두려움 속에 잠식시켜 스스로의 파멸 또는 타자에게 전이하며 소멸된다. 여기 이들은 누군가 반사한 공포를 이어받아 자신과 또 다른 타자를 죽여가는 중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을수록 머리와 마음속엔 선명해진다. 배경을 하얗게 밀어버리는 상품사진처럼 작가는 정중앙에 위치한 주체 외에 모든 정보는 철저히 차단시켰다. 하지만 나를 향해 잇몸을 드러낸 채 으르렁대는 개가, 텔레토비 동산에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공격을 갓 피하는 듯 허공에 벌린 아가리를 보며, 연견(戀犬, Dog lovers)과 뛰노는 그들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기름겹 하나 없이 근육만 곤두선 개의 모습은 우리의 머리를 혈투의 장, 우리의 마음을 두려움의 공기 속으로 소환한다.
작가가 동글리는 볼펜의 집합과 여백은 공상이 드나드는 통로가 되어준다. 주인공의 등장은 배경과의 대비로 인해 강렬하고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주인공 자체는 연속성을 지닌 미지의 타래로 그 시작과 끝을 삼킨 채 있다. 그것은 정작, 면없는 선들만이 엉킨 허상으로 실의 끝을 잡아당긴다면 빛과 함께 스러져 버리는 그림자와 같다. 박승예가 만든 시각적 공포장치는 재료로도 증명된다. 마치 유령의 몸체가 흰 연기 하나의 덩어리이듯 작가가 보여주는 두려움의 실체는 볼펜줄기가 전부이다.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환영의 명암과 나의 공포는 천칭 위에서 바늘 끝을 하늘로 보내고 있다.
작가는 엄연히 대가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개의 머리통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이목구비 꼴을 한 구체도 아닌, 예로부터 사람을 살리고 죽이며 친구도 적으로 만들고 오장육부였다가 혀놀림 이였다가 마음보가 되는 사람의 손을 붙여 놨다. 동시에 애완견도 아닌,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숨 막히는 링의 주인공인 투견을 등장시켜 불안과 공포에 대응하는 방어의 자세를 극단적이고 틀림없이 말하고 있다. 두 상징의 결합은 시각언어를 무한히 확장하여 몇 십여 개의 얼굴근육이 조곤조곤 하는 설명보다 훨씬 제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도깨비가 낯설지 않은 것은 결국 이들이 인간탈만 뒤집어 쓴 채 형성되어있는 풍경과 그 구조 속 그들이 깔아놓은 두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를 적나라하게 재현한 까닭이다. 작가는 사람이 가진 절대방패인 ‘사유하는 동물’이라는 대명사를 벗겨내어, 작품을 보는 관람자를 목욕탕 거울 앞에 세운 듯하다. 전시장을 걸어갈수록 관람객과 싸움에 혈안 된 괴물 둘만 남게 된 상황에서, 내가 괴물이 무서운건지 나 때문에 괴물이 무서워하는 건지라는 부정하고 싶은 의문을 거울에 비친 무언가을 보며 떠올린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Dick or, The Whale)」 속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과 이스마엘(Ishmael)이 하는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내 보트에 아무도 태우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겁쟁이보다 위험한 동료” 라는 대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용감한 호걸같지만, 실체보다 소문만 무성한 흰 고래의 공포에 질린 모습과 모비딕을 죽이기 위해선 자신이 그를 정복할 수 있는 더 큰 공포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투지를 읽을 수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지껄임, 적을 향한 난사, 혼신의 힘으로 물고 늘어지는 비열함. 그것은 나의 외침이고 당신의 두려움이며 결국 우리다. 작가는 관계들의 충돌이 만드는 이기심과 도피의 거미줄로 풍자인지 모욕인지 모를 질문을 꿰고 있다. 김달가이 (SOMA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출처 : 소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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