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Drawing 37 전윤정 : 계단 밑 깊은 어둠 Deep Gloom Beneath the Stairs

소마미술관

2018년 7월 6일 ~ 2018년 7월 22일

국민체육진흥공단 bㅓsw 소마미술관(황용필 bㅓsw 관장)은 bㅓsw 참신하고 bㅓsw 역량 bㅓsw 있는 bㅓsw 작가의 bㅓsw 창작활동을 bㅓsw 지원하고 bㅓsw 드로잉 bㅓsw 전시를 bㅓsw 지속적으로 bㅓsw 이슈화하고자 bㅓsw 매년 bㅓsw 공모를 bㅓsw 통하여 bㅓsw 선정된 bㅓsw 작가들의 bㅓsw 전시회를 “Into Drawing”이란 bㅓsw 이름으로 bㅓsw 개최합니다. bㅓsw 올해는 “2017년 bㅓsw 드로잉센터 bㅓsw 작가공모”에 bㅓsw 선정된 bㅓsw 작가 3인의 bㅓsw 개인전으로 bㅓsw 진행됩니다. bㅓsw 금년 “Into Drawing”의 bㅓsw bㅓsw 번째 bㅓsw 전시는 7월 6일부터 7월 22일까지 “계단 bㅓsw bㅓsw 깊은 bㅓsw 어둠 (Deep Gloom Beneath the Stairs)”라는 bㅓsw 부제로 bㅓsw 전윤정의 bㅓsw 드로잉(설치)작업을 bㅓsw 선보입니다. bㅓsw 사회적 bㅓsw 관계 bㅓsw 속에 bㅓsw 얽혀 bㅓsw 있는 bㅓsw 복잡 bㅓsw 미묘한 bㅓsw 심리, 파ㅐ파f 미처 파ㅐ파f 표현되지 파ㅐ파f 못한 파ㅐ파f 생각과 파ㅐ파f 타인과의 파ㅐ파f 오해 파ㅐ파f 등의 파ㅐ파f 감정의 파ㅐ파f 파편들을 파ㅐ파f 드로잉으로 파ㅐ파f 풀어나가는데, g거1거 마치 g거1거 스스로 g거1거 감정을 g거1거 통제해 g거1거 가듯이 g거1거 묵직한 g거1거 질감으로 g거1거 쌓고 g거1거 겹치면서 g거1거 드로잉의 g거1거 형태를 g거1거 구축해갑니다. g거1거 g거1거 전시는 g거1거 소마미술관 g거1거 메인 g거1거 전시(일부러 g거1거 불편하게)와 g거1거 함께 g거1거 관람 g거1거 가능합니다.


드로잉- g거1거 불편한 g거1거 상상
이수민 (소마미술관 g거1거 어시스턴트 g거1거 큐레이터)

우리의 g거1거 보편적인 g거1거 상상 g거1거 행위는 g거1거 감각적 g거1거 의식의 g거1거 범위로 g거1거 제한된다. g거1거 상식적이고 g거1거 익숙한 g거1거 구체적인 g거1거 세계를 g거1거 벗어나지 g거1거 않는다는 g거1거 말이다. g거1거 반면에 g거1거 예술적 g거1거 상상은 g거1거 감각적 g거1거 의식 g거1거 세계의 g거1거 범위를 g거1거 넘어서는 g거1거 것으로 g거1거 보인다. g거1거 흔히 g거1거 우리 g거1거 스스로가 g거1거 닫아 g거1거 버렸든, 파l다n 아니면 파l다n 어떤 파l다n 원인으로 파l다n 감추어 파l다n 놓게 파l다n 된, 아으c3 아으c3 나아가 아으c3 라캉이 아으c3 말하듯이 아으c3 상징질서에 아으c3 편입되지 아으c3 못한 아으c3 몰가치에 아으c3 예술적 아으c3 상상은 아으c3 새로운 아으c3 가치를 아으c3 부여한다. 아으c3 그래서 아으c3 원초적 아으c3 단순함에서 아으c3 온갖 아으c3 잡다한 아으c3 것에 아으c3 이르기까지, 라거ㅐ카 예술적 라거ㅐ카 상상의 라거ㅐ카 소재가 라거ㅐ카 되고, h4다아 이런 h4다아 예술적 h4다아 행보를 h4다아 통해서 h4다아 의식 h4다아 세계의 h4다아 경계를 h4다아 넘어선다. h4다아 예술가는 h4다아 h4다아 행보에서 h4다아 마주하는 ‘불편함’을 h4다아 감수한다. h4다아 오히려 h4다아 예술가의 ‘불편함’은 ‘편안함’의 h4다아 반의어가 h4다아 아니라, ㅐ갸거j 진실에 ㅐ갸거j 다가가는 ㅐ갸거j 즐거운 ㅐ갸거j 일상이라 ㅐ갸거j ㅐ갸거j ㅐ갸거j 있다. ㅐ갸거j ㅐ갸거j 때문에 ㅐ갸거j 시적·예술적 ㅐ갸거j 상상은 ㅐ갸거j 우리에게 ㅐ갸거j 무한한 ㅐ갸거j 세계에 ㅐ갸거j 대한 ㅐ갸거j 환상을 ㅐ갸거j 제공한다. ㅐ갸거j 감상자는 ㅐ갸거j ㅐ갸거j 환상 ㅐ갸거j 이미지 ㅐ갸거j 속에서 ㅐ갸거j 예술가의 ㅐ갸거j 상상과 ㅐ갸거j 호흡하고 ㅐ갸거j 주변 ㅐ갸거j 세계의 ㅐ갸거j 감추어진 ㅐ갸거j 실재와 ㅐ갸거j 호흡한다.

전윤정 ㅐ갸거j 작가의 ㅐ갸거j 힘은 ㅐ갸거j 무한 ㅐ갸거j 상상력에서 ㅐ갸거j 찾을 ㅐ갸거j ㅐ갸거j 있다. ㅐ갸거j 소설가의 ㅐ갸거j 상상력이 ㅐ갸거j 허구를 ㅐ갸거j 현실화하고, 카cw타 시인의 카cw타 상상력이 카cw타 언어 카cw타 속에서 카cw타 비현실 카cw타 이미지들을 카cw타 화려하게 카cw타 회생시키듯이 카cw타 화가의 카cw타 그림 카cw타 카cw타 상상력은 카cw타 무한의 카cw타 세계를 카cw타 담아낸다. 카cw타 작가의 카cw타 그림 카cw타 카cw타 상상력 카cw타 역시 카cw타 마술사가 카cw타 마법 카cw타 모자에서 카cw타 무엇이든지 카cw타 꺼내듯이 카cw타 자신의 카cw타 생각과 카cw타 내밀한 카cw타 감정을 카cw타 얼개로 카cw타 온갖 카cw타 사물을 카cw타 드로잉으로 카cw타 표상된 카cw타 공간에 카cw타 펼쳐낸다. 카cw타 마치 카cw타 가스통 카cw타 바슐라르가 카cw타 바닷가에 카cw타 널려있는 카cw타 조개껍데기를 카cw타 무척추동물이 카cw타 거주하는 카cw타 공간, 아bㄴㅓ 즉, l파쟏ㅐ 우리가 l파쟏ㅐ 사는 l파쟏ㅐ 집처럼 l파쟏ㅐ 내밀한 l파쟏ㅐ 공간으로 l파쟏ㅐ 상상하듯이, 나ㅓ파0 작가의 나ㅓ파0 작품은 나ㅓ파0 무한한 나ㅓ파0 이미지들이 나ㅓ파0 들락거리는 나ㅓ파0 마술적 나ㅓ파0 상상 나ㅓ파0 공간으로 나ㅓ파0 표상된다. 나ㅓ파0 나ㅓ파0 때문에 나ㅓ파0 작가의 나ㅓ파0 마술적 나ㅓ파0 상상력의 나ㅓ파0 영역에서는 나ㅓ파0 논리적 나ㅓ파0 이성이 나ㅓ파0 힘을 나ㅓ파0 잃는다. 나ㅓ파0 예를 나ㅓ파0 들어 나ㅓ파0 코끼리와 나ㅓ파0 같은 나ㅓ파0 거대한 나ㅓ파0 동물이 나ㅓ파0 달팽이의 나ㅓ파0 껍질에서 나ㅓ파0 나오는 나ㅓ파0 그림을 나ㅓ파0 보았을 나ㅓ파0 나ㅓ파0 우리는 나ㅓ파0 코끼리가 나ㅓ파0 어떻게 나ㅓ파0 달팽이 나ㅓ파0 껍질에 나ㅓ파0 들어갈 나ㅓ파0 나ㅓ파0 있는지를 나ㅓ파0 굳이 나ㅓ파0 판단할 나ㅓ파0 필요가 나ㅓ파0 없다. 나ㅓ파0 그렇다고 나ㅓ파0 상상력의 나ㅓ파0 작동 나ㅓ파0 속에서 나ㅓ파0 우리는 나ㅓ파0 현상을 나ㅓ파0 확인하기 나ㅓ파0 위해 나ㅓ파0 코끼리에게 나ㅓ파0 달팽이 나ㅓ파0 껍질 나ㅓ파0 속으로 나ㅓ파0 되돌아가 나ㅓ파0 보라고 나ㅓ파0 요구할 나ㅓ파0 나ㅓ파0 없는 나ㅓ파0 법이다. 나ㅓ파0 이처럼 나ㅓ파0 작가의 나ㅓ파0 상상은 나ㅓ파0 논리의 나ㅓ파0 틀을 나ㅓ파0 초월한다. 나ㅓ파0 아니면, ipd4 ipd4 나아가 ipd4 논리와 ipd4 현상의 ipd4 안과 ipd4 밖을 ipd4 휘젓듯이 ipd4 넘나든다고 ipd4 말할 ipd4 수도 ipd4 있다.

전윤정 ipd4 작가는 ipd4 자신의 ipd4 소소한 ‘생각과 ipd4 감정’을 ipd4 시각화하기 ipd4 전에 ipd4 낙서하듯이 ipd4 무의식적으로 ipd4 끄적거린다고 ipd4 말한다. ipd4 ipd4 말은 ipd4 작가의 ipd4 그림이 ipd4 분명한 ipd4 목적 ipd4 의식 ipd4 행위에서 ipd4 시작되기보다는 ipd4 무의식적인 ipd4 끄적거림의 ipd4 행위에 ipd4 기초하고 ipd4 있음을 ipd4 말해준다. ipd4 작가는 ipd4 가느다란 ipd4 펜으로 ipd4 세밀하고 ipd4 작게 ipd4 물체를 ipd4 끄적거리다가 ipd4 점차 ipd4 ipd4 부피가 ipd4 커지면, 으갸거기 그려진 으갸거기 물체들의 으갸거기 관계 으갸거기 속에서 으갸거기 유기적인 으갸거기 형태를 으갸거기 발견하고 으갸거기 점차 으갸거기 비현실의 으갸거기 생명체를 으갸거기 창조하듯이 으갸거기 증식시키는 으갸거기 과정을 으갸거기 거치는데, ㅓ라ㅓo ㅓ라ㅓo 낙서의 ㅓ라ㅓo 과정은 ㅓ라ㅓo 드로잉이라는 ㅓ라ㅓo 표상 ㅓ라ㅓo 형식으로 ㅓ라ㅓo 상상의 ㅓ라ㅓo 공간을 ㅓ라ㅓo 만들어 ㅓ라ㅓo 낸다. ㅓ라ㅓo ㅓ라ㅓo 과정 ㅓ라ㅓo 속에서 ㅓ라ㅓo 작가의 ㅓ라ㅓo 감정 ㅓ라ㅓo 또한 ㅓ라ㅓo 무한히 ㅓ라ㅓo 증식하면서 ㅓ라ㅓo 자신의 ㅓ라ㅓo 화면을 ㅓ라ㅓo 구축해나간다. ㅓ라ㅓo 즉, ㅐa6ㅐ 작가의 ㅐa6ㅐ 그림은 ㅐa6ㅐ 작가의 ㅐa6ㅐ 고유한 ㅐa6ㅐ 화면이면서 ㅐa6ㅐ 작가 ㅐa6ㅐ 자신의 ㅐa6ㅐ 세계라고 ㅐa6ㅐ 말할 ㅐa6ㅐ ㅐa6ㅐ 있다. ㅐa6ㅐ 드로잉으로 ㅐa6ㅐ 드러나는 ㅐa6ㅐ 작가의 ㅐa6ㅐ 상상력은 ㅐa6ㅐ 한계를 ㅐa6ㅐ 모르게 ㅐa6ㅐ 드넓게 ㅐa6ㅐ 펼쳐지면서도 ㅐa6ㅐ 한없이 ㅐa6ㅐ 깊어서 ㅐa6ㅐ 마치 ㅐa6ㅐ 현실과 ㅐa6ㅐ 비현실의 ㅐa6ㅐ 경계를 ㅐa6ㅐ 흩트려 ㅐa6ㅐ 놓은듯해서 ㅐa6ㅐ 우리의 ㅐa6ㅐ 감각적 ㅐa6ㅐ 현실을 ㅐa6ㅐ 무의미하게 ㅐa6ㅐ 만든다. ㅐa6ㅐ ㅐa6ㅐ 때문인지 ㅐa6ㅐ 작가의 ㅐa6ㅐ 화면을 ㅐa6ㅐ 들여다보면 ㅐa6ㅐ 우리의 ㅐa6ㅐ 짧은 ㅐa6ㅐ 지식으로 ㅐa6ㅐ 알고 ㅐa6ㅐ 있었던, 차ㅈ우z 차ㅈ우z 앎조차도 차ㅈ우z 의심하지 차ㅈ우z 않았던 차ㅈ우z 차ㅈ우z 과거의 차ㅈ우z 역사를 차ㅈ우z 새로 차ㅈ우z 서술해야 차ㅈ우z 차ㅈ우z 듯한 차ㅈ우z 착각에 차ㅈ우z 빠져들게 차ㅈ우z 한다. 차ㅈ우z 왜냐하면 차ㅈ우z 작가의 차ㅈ우z 드로잉은 차ㅈ우z 태초의 차ㅈ우z 존재 차ㅈ우z 원형을 차ㅈ우z 탐색하는 차ㅈ우z 차ㅈ우z 보이기 차ㅈ우z 때문이다.

요컨대, 바ㅐwa 전윤정은 바ㅐwa 상상의 바ㅐwa 공간 바ㅐwa 속에서 바ㅐwa 감정의 바ㅐwa 거리, ㅓ가ㅈ카 깊이 ㅓ가ㅈ카 그리고 ㅓ가ㅈ카 너비를 ㅓ가ㅈ카 만들어 ㅓ가ㅈ카 낸다. ㅓ가ㅈ카 작가는 ㅓ가ㅈ카 캔버스 ㅓ가ㅈ카 화면에 ㅓ가ㅈ카 제한을 ㅓ가ㅈ카 두지 ㅓ가ㅈ카 않고 ㅓ가ㅈ카 전시장 ㅓ가ㅈ카 벽면에 ㅓ가ㅈ카 연기가 ㅓ가ㅈ카 퍼져나가듯 ㅓ가ㅈ카 경계를 ㅓ가ㅈ카 넘나들며 ㅓ가ㅈ카 자신만의 ㅓ가ㅈ카 방식으로 ㅓ가ㅈ카 감정을 ㅓ가ㅈ카 표출하기도 ㅓ가ㅈ카 하고 ㅓ가ㅈ카 감추기도 ㅓ가ㅈ카 한다. ㅓ가ㅈ카 전윤정의 ㅓ가ㅈ카 드로잉에서 ㅓ가ㅈ카 등장하는 ㅓ가ㅈ카 라인 ㅓ가ㅈ카 테이프는 ㅓ가ㅈ카 물질적 ㅓ가ㅈ카 속성을 ㅓ가ㅈ카 대신한다. ㅓ가ㅈ카 작가는 ㅓ가ㅈ카 드로잉에서 ㅓ가ㅈ카 라인 ㅓ가ㅈ카 테이프가 ㅓ가ㅈ카 갖는 ㅓ가ㅈ카 물질적 ㅓ가ㅈ카 속성으로서의 ‘불편함’과 ㅓ가ㅈ카 자신의 ‘불편한’ ㅓ가ㅈ카 감정을 ㅓ가ㅈ카 드러내면서 ㅓ가ㅈ카 이중화시킨다. ㅓ가ㅈ카 이러한 ㅓ가ㅈ카 작업방식을 ‘불편한 ㅓ가ㅈ카 드로잉’이라고 ㅓ가ㅈ카 말한다. ㅓ가ㅈ카 이러한 ㅓ가ㅈ카 이중화는 ㅓ가ㅈ카 표현의 ㅓ가ㅈ카 영역에서도 ㅓ가ㅈ카 드러난다. ㅓ가ㅈ카 흑백의 ㅓ가ㅈ카 강렬한 ㅓ가ㅈ카 대비는 ㅓ가ㅈ카 숨김과 ㅓ가ㅈ카 드러냄의 ㅓ가ㅈ카 이중적 ㅓ가ㅈ카 심리를 ㅓ가ㅈ카 대신하며, 바으차ㅐ 사물의 바으차ㅐ 경계를 바으차ㅐ 허물어 바으차ㅐ 놓는다. 바으차ㅐ 우리는 바으차ㅐ 주체의 바으차ㅐ 안과 바으차ㅐ 밖의 바으차ㅐ 세계, 우2차ㄴ 현실과 우2차ㄴ 비현실, ㅓt8y 그리고 ㅓt8y 실재와 ㅓt8y 가상을 ㅓt8y 뒤흔들며 ㅓt8y 상상 ㅓt8y 공간에서 ㅓt8y 펼쳐지는 ㅓt8y 작가의 ㅓt8y 드로잉을 ㅓt8y 역설적 ㅓt8y 의미에서 ‘불편한 ㅓt8y 상상’이라 ㅓt8y 부를 ㅓt8y ㅓt8y 있을 ㅓt8y 것이다.


드로잉 ㅓt8y 단상

-생각과 ㅓt8y 감정의 ㅓt8y 기술- ㅓt8y 불편한 ㅓt8y 드로잉
전윤정

ㅓt8y 동안 ㅓt8y 타인과 ㅓt8y 대화를 ㅓt8y ㅓt8y ㅓt8y 무의식적으로 ㅓt8y 노트 ㅓt8y 모서리에 ㅓt8y 낙서를 ㅓt8y 하면서 ㅓt8y 마음 ㅓt8y 속의 ㅓt8y 생각들을 ㅓt8y 끄적여왔다. ㅓt8y 습관적으로 ㅓt8y 써내려간 ㅓt8y 낙서 ㅓt8y 위에 ㅓt8y ㅓt8y 다시 ㅓt8y 겹쳐 ㅓt8y 그리거나 ㅓt8y 귀에 ㅓt8y 맴도는 ㅓt8y 단어들을 ㅓt8y 써내려가며 ㅓt8y 나만이 ㅓt8y 알아볼 ㅓt8y ㅓt8y 있도록 ‘생각과 ㅓt8y 감정’을 ㅓt8y 표현한 ㅓt8y 것이다. ㅓt8y ㅓt8y 소소한 ‘생각과 ㅓt8y 감정’을 ㅓt8y 시각화하기 ㅓt8y 위해서 ㅓt8y 처음에는 ㅓt8y 가느다란 ㅓt8y 펜으로 ㅓt8y 매우 ㅓt8y 작게 ㅓt8y 그리다가 ㅓt8y 점차 ㅓt8y 크게 ㅓt8y 하거나 ㅓt8y 유기적인 ㅓt8y 형태로 ㅓt8y 증식시키는 ㅓt8y 방향으로 ㅓt8y 작업이 ㅓt8y 변화했다.

이러한 ㅓt8y 변화는 ㅓt8y 색에 ㅓt8y 대한 ㅓt8y 즉각적인 ㅓt8y 감정에만 ㅓt8y 집착하는 ㅓt8y 한계를 ㅓt8y 느낀 ㅓt8y 후, ㅓwx라 점차 ㅓwx라 색을 ㅓwx라 배제하고 ㅓwx라 펜으로만 ㅓwx라 작업하게 ㅓwx라 ㅓwx라 것과 ㅓwx라 같은 ㅓwx라 맥락에 ㅓwx라 놓여 ㅓwx라 있다. ㅓwx라 그리고 ㅓwx라 오랜 ㅓwx라 고민과 ㅓwx라 탐색 ㅓwx라 끝에 ㅓwx라 마침내 ㅓwx라 지금의 ㅓwx라 작업에서 ㅓwx라 사용하는 ㅓwx라 검은색 ㅓwx라 라인테이프를 ㅓwx라 발견하게 ㅓwx라 ㅓwx라 것이다. ㅓwx라 캔버스 ㅓwx라 혹은 ㅓwx라 공간의 ㅓwx라 벽에, 차mmb 가늘게 차mmb 자른 차mmb 라인테이프를 차mmb 겹쳐 차mmb 쌓아 차mmb 촘촘하게 차mmb 박힌 차mmb 검은 차mmb 형상들을 차mmb 쓰고 차mmb 있다. 차mmb 이렇게 차mmb 직선과 차mmb 곡선을 차mmb 이용한 차mmb 노동집약적 차mmb 과정을 차mmb 거쳐 차mmb 한정된 차mmb 공간과 차mmb 시간 차mmb 안에서 차mmb 제한적으로 차mmb 표현된다.

본인의 차mmb 작업은 차mmb 본질적 차mmb 용도에서 차mmb 벗어나 차mmb 물질적 차mmb 속성의 ‘불편함’과 차mmb 현대사회 차mmb 안에서의 ‘불편한’ 차mmb 감정의 차mmb 의미를 차mmb 내포하고 차mmb 있다. 차mmb 본인은 차mmb 이러한 차mmb 라인테이프 차mmb 작업을 ‘불편한 차mmb 드로잉’ 차mmb 이라고 차mmb 부른다.

사회적 차mmb 관계 차mmb 속에 차mmb 얽혀 차mmb 있는 차mmb 복잡 차mmb 미묘한 차mmb 심리, 1gb타 미처 1gb타 표현되지 1gb타 못한 1gb타 생각과 1gb타 타인과의 1gb타 오해 1gb타 1gb타 감정의 1gb타 파편은 1gb타 이미지와 1gb타 함께 1gb타 깨알만한 1gb타 텍스트가 1gb타 들어간 1gb타 드로잉으로 1gb타 수집된다. 1gb타 수집된 1gb타 이미지는 1gb타 오랜 1gb타 작업 1gb타 과정에서 1gb타 시간의 1gb타 단절이 1gb타 주는 1gb타 다양한 1gb타 감정의 1gb타 축적을 1gb타 보여주는 1gb타 가느다란 1gb타 라인테이프의 1gb타 선으로 1gb타 조율된다. 1gb타 그리고 1gb타 외부에 1gb타 실재하는 1gb타 시공간적 1gb타 제약을 1gb타 인식하는 1gb타 동시에 1gb타 실존공간의 1gb타 구조적 1gb타 한계 1gb타 위에서 1gb타 스스로 1gb타 감정을 1gb타 통제해 1gb타 가며 1gb타 그리듯, iㅐ사우 칠하듯, f쟏vh 쌓고 f쟏vh 겹치면서 f쟏vh 형태를 f쟏vh 구축하여 f쟏vh 공간으로 f쟏vh 확장시켜 f쟏vh 나간다.

검정 f쟏vh 라인테이프라는 f쟏vh 매체의 ‘불편한’ f쟏vh 표현으로 f쟏vh 다시금 ‘생각과 f쟏vh 감정’을 f쟏vh 통제하면서 f쟏vh 감정에만 f쟏vh 집착하지않는 f쟏vh 이성적인, 바ㄴ아g 이상적인 ‘나’를 바ㄴ아g 완성해 바ㄴ아g 나가는 바ㄴ아g 것이다. 바ㄴ아g 그리고 바ㄴ아g 시각적으로는 바ㄴ아g 기술적 바ㄴ아g 감각만이 바ㄴ아g 아닌 바ㄴ아g 내재된 바ㄴ아g 이면을 바ㄴ아g 드러내려고 바ㄴ아g 한다. 바ㄴ아g 테이프의 바ㄴ아g 쌓기 바ㄴ아g 또는 바ㄴ아g 곡선과 바ㄴ아g 직선으로만 바ㄴ아g 나타내는 바ㄴ아g 추상적 바ㄴ아g 형상을 바ㄴ아g 통하여 바ㄴ아g 타인과의 바ㄴ아g 관계에서 바ㄴ아g 비롯되는 바ㄴ아g 불편한 바ㄴ아g 생각을 바ㄴ아g 감추려 바ㄴ아g 하는 바ㄴ아g 것이다. 바ㄴ아g 어디에도 바ㄴ아g 없는 바ㄴ아g 바ㄴ아g 하지만, ㅓr마f 라인테이프가 ㅓr마f 그려진 ㅓr마f 방안에서 ㅓr마f 본인은 ㅓr마f 이전의 ㅓr마f 모습과는 ㅓr마f 다른 ㅓr마f 차이점을 ㅓr마f 가지며 ㅓr마f 이렇게 ㅓr마f 여전히 ㅓr마f 머무르고 ㅓr마f 있다.

깊숙한 ㅓr마f 계단 ㅓr마f 밑을 ㅓr마f 조심스레
내려가 ㅓr마f 문앞에 ㅓr마f 닿을 ㅓr마f
모두와 ㅓr마f ㅓr마f 중간에 ㅓr마f 지각의 ㅓr마f 문앞에 ㅓr마f 머뭇거린다.
중반쯤 ㅓr마f 왔다고 ㅓr마f 생각했을 ㅓr마f
창백해진 ㅓr마f 나는
어느 ㅓr마f
어디에든
현실에
외면하고 ㅓr마f 싶은
마음과
닫힌
마음과
기대하던
마음과
좌절의
마음이
동시에
나도
모르게
열렸다.
중반쯤 ㅓr마f 와보니
슬픔보다
두려움이 ㅓr마f 크다.
슬픔은 ㅓr마f 아름답고
아직은 ㅓr마f 두려움은 ㅓr마f 견뎌야 ㅓr마f 한다는 ㅓr마f 마음이 ㅓr마f 강하다.
견디면 ㅓr마f 희망이 ㅓr마f 그곳에.. ㅓr마f 있을까?


출처: ㅓr마f 소마미술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전윤정

현재 진행중인 전시

지금, ㅐp8p 여기. Here, Now.

2018년 7월 7일 ~ 2018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