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시체*
*(Exquisite Corpse, 미술기법의 한 종류로 여러 명의 작가가 협업으로 그리는 방법. 무작위한 형태 및 결합으로 표현하는 방식)
포스트 인터넷 사회에 속한 현대 미술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다름 아닌 이미지 검색 엔진의 발명이다. 이는 특히 예술의 중심지가 아닌 곳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보다 더 넓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 속의 잠재력을 느꼈다.
이들은 물리적 지식의 결핍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인터넷을 통하여 터득한 특정작가들의 이미지와 평판에 대하여 익히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게 여겨졌다.
이 현상은 현대 시장 논리와 보편적인 미적 생태계에서 완벽하게 독립하여 작업하는 개인 또는 소규모 그룹의 작가들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인터넷에 능통한 개인주의자들은 마치 안전 그물 없는 곡예사 또는 안전장치를 매지 않는 자유로운 암벽 등반가처럼 현대 미학의 전통적인 흐름을 비틀어 버림으로써 기상천외한 변수들과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이 전시를 기획하는데 있어, 우연적인 필연, 뜻밖의 운명, ‘우아한 시체(Exquisite Corpse)’ 기법 등이 배경이 되었다. 전시에 앞서 세개의 대륙, 열 두개 이상의 나라들, 스무 개 이상의 도시들을 누비고 다니며 작가로서 활동 할 수 있었던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2년전 서울 문래동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젊은 작가들과 친구들, 그리고 예전 조수들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한국의 젊은 현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회화가 매우 중요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재능 있는 젊은 여성 작가들이 서로 만난 적이 없음에도 문화적 교류를 통해 서로 연계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Exquisite Corpse(우아한 시체 기법)’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1925년경 탄생시킨 협동 작업 방식으로, 무의식적이거나 무작위하게 보이는 연결고리들을 확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들의 고유한 철학적 배경과 일맥상통했다. 김나율 작가는 한세기가 지난 지금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무의식적인 꿈의 형태들을 가상 현실 공간을 통하여 다른 형태로 바꾸는데, CG효과를 차용해 스케치를 구성하고 그 위에 유화로 색을 입히는 방법을 택했다. 또한 조유진 작가의 과정 중심적 접근으로 만들어진 그림들로부터 나오는 추상표현주의의 전통, 포스트 페미니즘주의, 포스트 구조주의는 모두 생생하고 원기왕성하다.
수소 결합이란 물 분자 속 나타나는 분자 현상으로, 양성 혹은 음성의 동위 원소들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안정적 결합들을 생성하고 수소 분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김으로써 바실리스크 도마뱀과 같은 생물들이 물 수면 위로 걸어 다니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최영빈 작가는 그림 속의 요소들로 캔버스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구지윤 작가의 고고학적인 작업의 경우, 작가는 자신의 기존 작업을 이미 ‘발견된 오브제’ 혹은 ‘새로운 시작점’으로 간주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작업이 나올 때까지 다시 이를 ‘새로운 오브제’로 회귀시킨다.
이렇게 여성 작가로만 이루어진 집단이 미술사적으로 주목할만한 회화 운동을 일으킨 도시나 시대가 이전까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그들만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대화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전시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현재의 회화가 어떻게 보여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보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
Curated by Jin Meyerson
출처 : 원앤제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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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4일 ~ 2026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