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

2025년 11월 25일 ~ 2025년 12월 31일

《O 콜렉티브》는 하나의 주제나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 공존의 방식을 탐구한다. 2025년 CR 교외학교 : 콜렉티브 어프로치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노혜지, 최은빈, 그리고 초대 작가 봄로야는 주의가 분절되고 관계는 점점 더 단편화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그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완전한 연결이 아닌, 각자의 속도로 곁에 머무는 방식을 실험한다. 지난 1년 동안 세 작가는 서로의 작업실을 오가며 각자의 작업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작업에서 출발한 대화는 점차 작업을 지속시키는 여러 조건들, 일상과의 균형, 그리고 지속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의 실천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이러한 실천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말한 ‘함께-되기(becoming-with)’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해러웨이는 “어떤 것도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nothing makes itself)”고 말하며, 세계를 자족적인 개체들의 총합이 아니라 상호 얽힘 속에서 생성과 변화를 지속하는 공-생산(sympoietic)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함께-되기’는 합일이 아니라, 각자의 차이를 지닌 채 존재하는 관계의 형식이다.《O 콜렉티브》는 이 사유를 전시의 구조로 확장해,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며 관계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전시 제목의 ‘O’는 원이자 구멍으로, 결핍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무한을 상징한다. 닫히지 않은 형태는 끝없이 이어지는 가능성을 내포하며, 전시는 이 열린 구조 속에서 의미의 완결을 지연시키며 서로의 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함께-되기는 단순히 ‘함께 있음’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홀로 완성될 수 없기에 언제나 서로를 경유하며 존재하고, 그 얽힘 속에서 스스로를 갱신한다. 전시는 고정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관계가 교차하고 머무르는 지점을 드러냄으로써, 의미가 완결되기 이전의 과정적 시간을 바라보도록 이끈다. 

먼저, 전시 가이드 영상 〈FYI_Pre-Exhibition Note〉는 1년간 세 작가와 함께한 멘토 이민선의 시선으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프로그램의 과정에서 포착된 대화, 작업의 이면,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의 잔상을 작가 특유의 위트 있는 영상 언어로 재구성한다. 겉보기에는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들이지만, 이들은 작업이 형성되는 일상의 리듬과 상호적 관계를 드러내는 주요한 단서로 작동한다.

노혜지는 인간의 감각이 기술적 장치에 위임되고 공진하는 순간을 탐구한다. 작가에게 스마트폰, 센서, GPS, 데이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지각을 대신 수행하는 감각 기관이자 또 하나의 신체이다. 작가의 관심은 기계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리고 인간이 그 감각을 어떻게 빌려 자신을 이해하는가에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율적인 주체라기보다, 스크린과 알고리즘, 이어폰의 음향 등으로 감각이 분할된 사이보그적 주체로 살아간다. 노혜지는 이처럼 기술과 인간이 서로의 감각을 매개하는 기계–유기체적 혼종으로서의 감각 경험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탐색한다.

〈인간–기계–복합체 지형도〉는 스마트폰 내부의 센서와 상응하는 신체 기관을 대응시켜 구성한 벽화 드로잉이다. 작가는 스마트폰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자신의 신체와 감각적으로 연결된 장치로 바라보며, 인간의 몸과 기계가 교차하는 감각을 탐구한다. 동일한 스케일 위에서 두 체계를 나란히 놓는 행위는 인간이 기술을 ‘사용하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그 감각 안에서 함께 작동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작업은 네 개의 테이블로 구성된 리서치 형식의 설치로, 작가가 기술적 감각을 실험적으로 사유해온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매개 관측〉은 장마철 태양 관측 실험을 통해 인간의 시각이 닿지 않는 순간, 센서가 세계를 대신 읽는 방식을 기록한다. 기계가 수집한 데이터를 작가가 재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기술은 하나의 지각 회로로 관계하며, 새로운 복합감각의 지형을 형성한다.〈보행자 항법 시스템〉에서는 작가가 방향 감각이라는 신체적 인식이 이미 디바이스의 항법 시스템에 의해 학습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인간이 기술을 설계했지만, 이제는 기술을 통해 감각을 학습하게 된 역전된 지각 주체성을 탐구하며, 신체로는 볼 수 없는 해를 관측하기 위한 〈매개 관측〉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성 이미지 속 자신의 메타데이터를 재추적하고 구멍을 냄으로서 해체한다. 마지막 테이블 <how to wander>는 이러한 자각을 ‘복합체 되기’의 실천으로 확장한다. IMU 센서를 내장한 장치가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은 채 방향만을 감지하며 표류하도록 구성되어, 기술과 신체가 서로의 감각을 조율하며 새로운 협응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봄로야는 사회 안에서 쉽게 서술되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과의 관계 자체를 예술의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여성, 퀴어, 거리의 생활자, 도시 개발로 삶의 자리를 옮겨야 했던 사람 등 제도 밖으로 밀려나기 쉬운 개인들을 다루지만, 그들을 결핍의 시선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직접 만나고 듣는 과정에서, 동시대 미술이 타자와의 관계를 매개하는 윤리적 장치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드로잉, 글쓰기, 영상, 무용,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때로는 스스로 화면에 등장하거나 참여자와 함께 움직이며 관찰자와 대상의 경계를 흐린다.

〈모르는 사람〉은 가부장제와 이성애 규범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40~70대 여성들의 발화를 퀴어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영상 프로젝트다. 전작 〈노을에 취약한 눈〉이 개인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성차의 혼란을 다뤘다면, 이번 신작은 사회적 구조 안에서 ‘여성’으로서 지속되어 온 삶의 균열을 마주한 세대로 시선을 확장한다. 작가는 네 명의 참여자들과 인터뷰, 대화, 움직임 워크숍을 함께하며 각자가 품고 있던 수치심, 저항, 회복, 말할 수 없음 같은 감정을 장기간 탐색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전문 퍼포머와 함께 각자의 기억을 ‘헤엄’의 동작으로 변환하며 광장 한복판에 모여 수행적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리 설정된 연극적 장면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투쟁하는 언어를 생성하는 순간으로 작동한다. 봄로야는 이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 장면들을 다양한 레퍼런스와 병렬시켜 필사, 지우기, 찢기 등 물리적 행위로 다시 엮어낸다. 이 반복과 수정의 과정은 완결된 서사를 구축하기보다, 발화와 삭제, 기록과 변형이 교차하는 열린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는 작업에서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의 ‘레즈비언 존재’와 ‘레즈비언 연속체’ 개념을 참조하되, 이를 특정한 정체성의 수행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레즈비언’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을 통과하는 소위 중년의 젠더 퀴어가 기존의 역사와 언어 체계를 흔들며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감각의 형식이다. 영상 속 장면들은 개인의 이야기가 하나의 서사로 통합되지 않도록 구성되며, 오히려 서로의 발화가 어긋나는 지점에서 또 다른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참여자들의 언어가 작가의 작업 의도와 어긋날 때마다 작업은 새로운 방향으로 열린다. 함께 전시되는 드로잉 오브제—필사와 메모, 책 페이지를 편지 봉투에 봉합한 작업—는 관객의 손을 통해 매일 다른 문장과 흔적이 된다. 기록의 완결성을 해체하며, 관계와 시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그러한 비선형적 시간이 타인과 세계를 잇는다.

최은빈은 개인의 경험과 기억, 감정 등 가공되지 않은 내면의 인식을 영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간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그것을 빛, 진동, 공기와 같은 비물질적 요소로 치환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상의 조각들을 공간 안에 배치하여, 시각·청각·촉각이 교차하는 다층적 구조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감정과 인지는 더 이상 언어로 설명되거나 해석되지 않고, 몸을 통해 감지되는 언어로 존재한다. 작가의 작업은 말로 구조화되기 전의 이미지와 지각의 차원을 공감각적 공간으로 다시 열어 보이며, 서로 다른 지각이 교차하는 경험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의 재현 가능성을 탐구한다.

신작 〈some–time–〉은 언어가 의미로 고정되기 전, 발화가 감각이 분리되는 그 찰나의 임계지점을 탐구한다. 작가는 언어의 최소 단위를 시간적 간격과 진동의 파동으로 전환하며, 언어가 감각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하나의 공간적 리듬으로 구성한다.  이번 작업에서 그의 관심은 말보다 앞선 차원, 즉 언어가 아직 감각의 잔재로 머무는 순간에 있다. 침범과 머뭇거림, 공백과 스며듦이라는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한 신작은 콜렉티브 어프로치 활동을 통해 봄로야 작가의 〈노을에 취약한 눈〉의 내레이션 사운드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 목소리는 진동 시퀀스로 변환되어 전시장에 흐르고, 두 작업은 서로의 호흡과 파장을 반사하며 감응의 장면을 형성한다.

작업은 진동 스피커와 쉐이커를 매개로, 언어의 음성을 주파수 신호로 변환해 전시장 전체에 울림의 경로를 구축한다. 소리는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고 벽과 바닥을 타고 이동하며, 관객의 발아래와 신체 가까이에서 진동한다. 관객은 귀로 듣는 대신 몸을 통해 진동을 ‘읽으며’, 언어가 해체되고 다시 감각으로 재조립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 순환적 리듬은 지연된 기억처럼 되돌아오며, 감정의 파편과 시간의 흔적을 공간 속에 남긴다. 최은빈은 말해지기 전의 머뭇거림과 스며듦, 그리고 여백의 감각을 신체적 울림과 관계의 리듬으로 확장한다. 〈some–time–〉은 언어와 감각, 타자의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의미 대신 감응으로 이어지는 언어의 또 다른 형식을 제시한다.

《○ 콜렉티브》는 이해할 수 없음의 조건을 외면하지 않고, 그 틈새 속에서 관계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 작가는 단일한 주제로 공명하지 않고, 대신 어긋남과 손실의 감각을 감내하며, 그 불완전한 교환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를 다시 정립한다. 이들은 하나의 언어로 말하지 않지만, 서로의 목소리가 남긴 진동이 전시장 곳곳에 겹쳐진다. 전시는 완결된 합의나 서사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불확실성과 단속적인 만남의 시간을 감각의 밀도로 형식화하며, ‘함께 있음’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것은 관계의 공백을 부정하지 않고, 실패를 매개로 또 다른 이해의 방식을 모색하는 시도다. 어쩌면 진정한 연대는 동일함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불완전함을 인식한 채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등대로』

이수빈(씨알콜렉티브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참여작가: 노혜지, 봄로야, 최은빈
가이드 영상: 이민선

출처: 씨알콜렉티브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장다은 개인전: 코러스 CHORUS
장다은 개인전: 코러스 CHORUS

2025년 10월 31일 ~ 2025년 12월 7일

김동해 개인전: 고요한 연루
김동해 개인전: 고요한 연루

2025년 11월 20일 ~ 2025년 12월 19일

김창열 Kim Tschang-Yeul
김창열 Kim Tschang-Yeul

2025년 8월 22일 ~ 2025년 12월 21일

Floating Root: 유영하는 뿌리들의 궤적
Floating Root: 유영하는 뿌리들의 궤적

2025년 11월 19일 ~ 202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