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1
2024년 11월 8일 ~ 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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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소망, 그리고
장마. 작가를 따라 도착한 베트남 하노이에서 사 온 어느 낡은 시집에 묻어있던 단어를 빌려왔다.
해외 이동을 금지했던 팬데믹 이후 오랜만의 5시간 비행은 꽤나 고된 일이 되어서 이름만 익히 들어본 그 나라까지의 거리를 비로소 체감하게 되었고, 막연하게 덥고 소나기가 많이 내릴 것이라 상상했던 도시는 캐리어 가득 가벼운 옷만 챙긴 나를 꾸중하듯 연이은 쌀쌀한 바람을 불어댔다. 이미 몸에 새겨진 것처럼 모든 풍경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던 노이바이 국제공항을 지나 새벽비가 내리고 난 뒤의 아침 7시 하노이 시내는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그들의 형상은 하나같이 알록달록한 색의 판초(Poncho)로 덮여 있었다.
도시 간 이동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코로나 봉쇄령 당시 베트남에 자리 잡은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공장 내부에 형성했다는 현지 노동자들을 위한 텐트촌은 (우리가 드디어 하노이에 올 수 있게 된 것과 동일한 이유로)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하루 세 끼니와 두 번의 간식, 이불과 매트리스, 일상용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와중에도, 시티투어 버스 2층에 앉아 하노이 시내를 구석구석 내려다보며 도시 전반에 새겨진 역사적 사실(또는 허구)과 베트남이 앞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국가적 이미지를 반복해 듣는 와중에도, 전란 같았던 시기를 지나 이미 유령처럼 사라진 풍경을 쫓는 일의 이상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더욱이 그가 양어깨 가득 둘러메고 간 카메라라는 사물은 뷰파인더 뒤에 위치한 눈이 직면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을 오려내어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끝내 그의 카메라가 집요하게 추적한 장면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모방된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어떠한 현실을 단지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거대한 구조 안에 분열되고 미끄러진 개인들이 얼마나 혼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내어놓고 있었다.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은 비가 내리고, 우렁찬 빗소리와 주의를 어지럽히는 경적소리가 혼재되고, 낯선 언어로 쏟아지는 말은 과연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그 발원지와 목적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전시 《판초》는 대상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는 이미지들을 우비(雨備)에 대한 경험을 얕게나마 공유하는 관객 앞에 제시하며, 그동안 의심받지 않았던 굳건한 믿음 체계에 금을 내고자 한다. 기원전 남미 전역에 퍼져 혁명과 투쟁의 상징을 입었다가, 전쟁 시 대원을 보호하기 위한 군용 복장으로, 야외 숙영장의 임시 텐트로, 풍요로움에 대한 약속으로, 오해된 소망으로. 지금껏 그저 주어진다고 여겨왔던 현재가 흔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를 재건해야 하는 이 자리에서 모종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까. 시공간을 달리하여 하나의 사물에 덧입혀진 이질적인 층위들이 우리 앞에 뒤섞인 형태로 도착할 때, 비옷(áo mưa)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먼 시절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말이다. 마침내 장마가 잠시 멎은 그 자리에서, 작가는 증인의 앞으로 카메라를 다시 세운다. 발 딛고 서 있는 바닥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증언하는 사람 앞으로. 어느 날 비가 또다시 쏟아지면 그들은 안장 아래 놓인 사물을 꺼내 툭툭 무심하게 털어 입고, 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나 동시에 온몸으로 맞으면서 다시 일상으로, 그들의 삶이 자리하는 곳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박이슬(기획자)
추신. “사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아니면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그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벤야민의 (이상한) 질문을 가져온 히토 슈타이얼의 말처럼 전시장에 놓인 영상 속 언어가 사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사이의 번역이라면, 나는 나에게 할애된 장소(글)에 전시의 제목이 된 사물의 이름을 세 번, 모두 다른 형태로 남겨두었다. 그 단어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이고, 제일 익숙하게 접해 온 것이고, 가장 멀리 있는 이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다. 혹은 국가에서 국가로 상징과 용도를 달리하여 건너간 것이고, 이제는 비 오는 날 길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고, 여전히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글을 손에 든 당신도 언젠가 그 사물을 마주하는 날이 오면 그 이름을 세 번, 모두 다른 형태로 불러보길 바란다.
작가: 박기덕
기획: 박이슬
공간 조성: 새로움아이
그래픽 디자인: 정사록
주최·주관: 박기덕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바로 앞 코오롱 타워에 유료주차가 가능하며 그 외 주차공간은 없습니다.
*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2:00 - 19:00
화요일 12:00 - 19:00
수요일 12:00 - 19:00
목요일 12:00 - 19:00
금요일 12:00 - 19:00
토요일 12:00 - 19:00
일요일 12:00 - 19:00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