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3년 10월 3일 ~ 2003년 11월 16일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이우환은 국제무대에서 동서미술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이론가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술평론가로 등단하여 당시의 모노하(物派) 태동을 주도하고 창작과 비평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그의 작품세계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70년대 초에는 그의 이론과 작품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한국의 전위운동과 모노크롬 회화는 물론 미술비평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1971년 파리비엔날레 참여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서구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덴마크의 루이지에나 미술관이나 프랑스의 주드폼, 독일의 본 미술관, 이태리의 무디마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개인전을 통해 그의 예술사상과 동양적 사유방식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다.
사실 이우환은 화가나 조각가이기 이전에 철학자나 비평가, 시인같은 풍모를 더욱 많이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독자적인 철학적 사유체계와 예술비평은 재일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환기 일본현대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고교 교과서에 그의 산문이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울미대에서 잠시 한국화를 전공했다가 일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이우환은 퇴계사상이나, 노장사상 이외에도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철학을 비롯하여 하이데거, 니체, 푸코, 메를로 퐁티 등 동서양의 철학을 섭렵하면서 미술비평과 창작을 통해 인간 중심적인 근대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발표되어 국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만남을 찾아서>(1969)는 그러한 예술적 사유의 산물이자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시각예술이 본연의 의미를 자각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봉사해온 인간중심의 재현이나 표상작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최소한의 예술적 개입으로 현실과 관념사이를 중재하면서 사물에 대한 미적 관조와 여백의 세계를 보여 주려고 하였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조각 작품들에서는 산업화의 생산물인 철판(鐵板)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는 자연석(自然石)을 하나의 장소에 배치시켜 그 관계가 보여 주는 열린 구조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최소한의 신체적 행위를 통해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의미와 그것의 대립과 공존, 나아가서는 인간과 자연, 내부와 외부, 현존과 부재의 관계를 매개하고 중재하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사실의 재현이나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예술적 행위와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의 질서나 구조 속에 개입하여 공간, 조건, 관계, 상황을 문제삼고 더불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회화작품은 이 점에서 신체성의 개입이 더욱 두드러져 보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색채와 형태, 구성, 이미지 등 가능한 한 회화적 요소를 배제하는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신체적인 행위와 캔버스에 나타난 선 하나, 점의 위치, 방향성, 붓 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 그리고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술가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서구 미니멀리즘과 흡사한 형식을 공유하지만 서구 미니멀 작가들과 같이 개념적 완결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신체성을 통해 자신과 대상 나아가서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관계를 중재한다고 하는 점은 다분히 동양적인 사유방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의 회화는 일정한 장소인 시간과 공간 속에 신체의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면서 얻어진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70년대의 엄격한 자기 수련과 통제의 과정에서부터 80년대의 해체적인 분방함을 거쳐 90년대 이후 보여 주는 아주 절제된 공간성으로 회귀하는 30여 년간의 그의 궤적은 그의 예술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흡하는 생성의 장(場)임을 다시 한번 역설해 준다. 이번 이우환 회고전은 새로운 표현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위축되고 있는 전통 회화와 조각분야에서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 준 한 예술가의 사유와 감성의 세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점에서 From Point 1975, 162×130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점에서 From Point>시리즈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하여 선으로 이어 간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삼라만상이 나의 재생산이 아닌 것처럼 내가 표현하는 점 또한 늘 새로운 생명체가 되리라.”
(이우환, 작가어록 중에서)
존재하는 것을 점으로, 산다는 것을 선으로 함축하고 점과 선의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탄생과 소멸을, 그것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시작과 끝이 부재하는 우주의 순환성과 무한성을 암시하는 그의 방법론은 무엇보다 시적이며 직관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종의 수신(修身)에 가까운 행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성취하는 세계와의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에서 From Line 1979, 194×260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선에서 From Line>시리즈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모노하 시기에 주로 조각작품을 제작하여 왔던 작가는 73년 경부터 일반에게 잘 알려진 <점에서>, <선에서>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조각작품이 사물과 사물의 관계, 그것을 경험하는 공간에서의 만남의 장소적인 관계를 주로 다룬다면 회화작품은 신체성을 매개로 하여 세계와의 만남을 실현하는 장(場)이자 구조로서 캔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붓 끝에 묻은 안료가 소모될 때까지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면서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행위를 보여 주는 이 시기 작품들은 엄격한 통제를 통하여 일종의 자기 수련의 자세를 보여 준다. 여기에서 작가의 신체적인 행위와 캔버스에 나타난 선 하나, 점의 위치, 방향성, 붓 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 그리고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관계는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점에서 From Point 1984, 227×182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점에서 From Point>시리즈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하여 선으로 이어 간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삼라만상이 나의 재생산이 아닌 것처럼 내가 표현하는 점 또한 늘 새로운 생명체가 되리라.”
(이우환, 작가어록 중에서)
존재하는 것을 점으로, 산다는 것을 선으로 함축하고 점과 선의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탄생과 소멸을, 그것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시작과 끝이 부재하는 우주의 순환성과 무한성을 암시하는 그의 방법론은 무엇보다 시적이며 직관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일종의 수신(修身)에 가까운 행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가 성취하는 세계와의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과 함께 With Winds 1991, 218×291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바람에서 From Winds>, <바람과 함께 With Winds>시리즈
70년대 초반 <점에서>, <선에서> 시리즈를 통해 엄격한 자기 수련과 통제의 과정을 보여 주었던 작가는 80년대 초반 <바람에서> 시리즈로 옮겨 가면서 보다 자유롭고 역학적인 질서로 이행해 가기 시작한다. 바람은 바깥에서 다른 사물들에게로 불어와 그들을 깨워서 소리를 내게 한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변의 공명과 울림, 촉각 등에 의해 느낄 수 있다. 이 시기 점이나 선은 바람같이 다양한 방향성을 부여하며 공간 속에 상하 좌우로, 전면적으로 옮겨 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격한 규제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자율성의 진폭은 커지면서 붓 자국은 자유롭고 거침이 없으며 점과 선의 구분도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점과 선은 점차 해체되어 마치 무작위의 행위처럼 바탕과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가 특징적이다.

조응 Correspondence 2000, 228×364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조응Correspondance>시리즈
90년대 이후에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여 큰 캔버스에 생기엔 찬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넓은 공간을 공백으로 남긴다. 여기에서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캔버스의 빈 공간,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한 송이의 작은 꽃을 장식해 놓은 텅 빈 방을 볼 수 있다. 거기서는 꽃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있음으로 하여 환하고 생생하게 열리는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표현처럼 그는 함축성 있는 한점 한점 자체를 통해서 캔버스 공간 내에서의 조응과 함께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작가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조응 Correspondence 2003, 227×182cm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조응 Correspondance>시리즈
90년대 이후에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여 큰 캔버스에 생기엔 찬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넓은 공간을 공백으로 남긴다. 여기에서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캔버스의 빈 공간,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한 송이의 작은 꽃을 장식해 놓은 텅 빈 방을 볼 수 있다. 거기서는 꽃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있음으로 하여 환하고 생생하게 열리는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표현처럼 그는 함축성 있는 한점 한점 자체를 통해서 캔버스 공간 내에서의 조응과 함께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작가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무제 Untitled 1968, 140×180 철판, 유리, 돌 Iron, glass, stone

관계항 Relatum 1978, 186×142×48cm 철판, 돌, 나무 Iron, stone, wood
<관계항 Relatum>시리즈
최근까지 일관되게 ‘관계항’이라고 이름 붙인 이우환의 조각작품은 세월의 오랜 흔적을 간직하면서 자연 속의 어디쯤엔가 나뒹굴고 있을 돌과 산업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철판을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에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한 것들이다. 얼핏 보면 상이한 오브제의 결합이 초현실주의의 ‘우연한 만남’을 연상시키지만 근본에 있어서 이들 작품들은 사물을 대하는 작가 특유의 동양적 사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 의해서 가공된 철판과 전혀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석과의 만남은 서로 상이한 시각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말하자면 철판은 인간에 의해서 추상화된 물질의 변화를 보여 주지만 그것 역시 자연의 산물이며 사물의 변화에 의해서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돌과 철판이 자연과 인간, 나와 타자를 연결짓는 매개로서 서로에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계항 Relatum 1979-1993, 2003, 180×120×240cm 철판, 돌 Iron, stone
<관계항 Relatum>시리즈
최근까지 일관되게 ‘관계항’이라고 이름 붙인 이우환의 조각작품은 세월의 오랜 흔적을 간직하면서 자연 속의 어디쯤엔가 나뒹굴고 있을 돌과 산업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철판을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에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한 것들이다. 얼핏 보면 상이한 오브제의 결합이 초현실주의의 ‘우연한 만남’을 연상시키지만 근본에 있어서 이들 작품들은 사물을 대하는 작가 특유의 동양적 사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 의해서 가공된 철판과 전혀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석과의 만남은 서로 상이한 시각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말하자면 철판은 인간에 의해서 추상화된 물질의 변화를 보여 주지만 그것 역시 자연의 산물이며 사물의 변화에 의해서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돌과 철판이 자연과 인간, 나와 타자를 연결짓는 매개로서 서로에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계항 Relatum 1991,1994, 180×480 철판, 돌 Iron, stone
이우환과 일본의 모노하(物派)
모노하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사이에 일본에서 일어난 미술현상으로 산업용 자재라든가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통해 사물들의 재구성과 그것들의 존재방식을 명료히 하고자 한 움직임을 말한다. 이우환이 일본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미술출판사 주최의 미술평론상에 「사물에서 존재에로」라는 평론이 입상하고, 이를 계기로 모노하 운동을 대변하는 작가이자 이론가로 확고한 자리를 자리잡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여타 모노하 작가들과 같이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실재와 가상에 대한 착시문제를 포함하여 서로 대비되는 사물들을 하나의 장소에 엮어 놓아 그것이 전시공간이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룬다. 이 때 유리와 철판, 노끈과 목재, 솜, 강철, 돌, 전구 등 다양한 소재들은 동일성과 차이, 고정성과 가변성, 물질성과 비물질성, 작용과 반작용 등 사물의 상호관계, 장소이동, 변화, 이중읽기를 위해 차용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물 그 자체가 처음부터 그렇게 확정된 존재물로서가 아닌 시간과 장소, 인과관계 등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
출처 : 로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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