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인덱스
2015년 6월 24일 ~ 2015년 7월 6일
강혜숙 개인전 : The Fragment
우연의 형식이 아니면 필연이 도래하지 못한다.’
요즘의 내 사진 작업을 슬쩍 보고 간 지인께서 니체의 긴 글을 문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내 사진 작업과 딱 맞아 떨어지는 내용 같다면서 음미해보라고.
그 긴 글 중에서 위에 인용한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사진 작업에 초현실주의적인 표현기법을 사용하면서,
‘지금, 내가, 왜, 초현실주의라는 형식의 사진작업’을 하는지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교과서에 실렸던 그림하나를 펼쳐 놓고 왼 종일을 들여다보며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실렸던 그 그림이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단편(고집)’이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그 나뭇가지에 걸려 축 늘어져있는 시계, 멀리 보이는 고요한 바다와 해안선, 바닥에 놓인 신체의 일부를 덮으며 녹아내리는 시계!
초현실주의 작품과의 최초의 만남은 충격과 신비로움으로 나를 전율케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미술전집에서 만났던 르네 마그리트와 에른스트,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전시회에서 보았던 제리 율스만과 황규태선생의 작품들.
그렇게 우연처럼 초현실주의는 내 안에 쌓여 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첫 만남의 전율이 거의 50년이 지난 오늘 ‘우연의 형식으로 찾아 온 필연’이 되어 내 사진작업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내 사진에는 입술과 발과 손과 그리고 토르소 형태의 얼굴 없는 누드가 주요 오브제로 등장합니다.
이 파편들은 바다나 사막, 아니면 비 오는 창가 그리고 낯익은 공간들을 배경으로
빈 의자에 올라 앉아 있거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거나
건물 틈새로 비집고 들어 온 빛 속에 그냥 놓아져 있거나,
뒷모습으로 혹은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몸 안에 빗물이 가득히 고여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서로의 향하는 방향이 어긋난 채 끊임없이 ‘무엇’혹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문득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던가를 깨달았습니다.
기다리던 실체가 ‘무엇’이든 ‘누구’이든
그 기다림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시간은 지나가고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지면서 삶은 그렇게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내가 초현실이라고 생각하며 구성한 장면들이 결국 가장 현실적이며
그건 바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였음을.
- 강혜숙 작가노트-



출처 - 갤러리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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