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2018년 12월 14일 ~ 2018년 12월 29일
조금 더 많은 색을 품은 밤
과거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더 정확히는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란 그렇다. 만약 기억이 동일한 어느 한 지점에 정박하여 있다면 그 위에 세워진 현재는 생동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그렇게나 무채색인 어떤 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맥락에선 기억이 역사의 대항적에 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점에 있다. 역사의 기원과 존재론적 근거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기억을 한데 묶어 통합함에 있으며, 서사의 형식과 전통의 구조, 세대를 초월하는 전이를 골자로 한다. 역사가들의 과거 – 역사란 파편화된 사적 기억을 과거에 대한 공동의 가치 아래 가지치기하여 병합하는 작업이다. 결국 역사는 담론적이며 이념적이고, ‘진보’라는 허울 아래 조직(fabricate)되어 구축된다. 반면 기억이란 과거의 감각을 통해 현재의 감정을 건드리고 생동하게 하는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재구축 되는 것이며, 과거의 흔적을 쫓으며 잊혀진 정서에 숨결을 불어넣는 행위이다.
이런 기억의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유동하는 이미지와 같다. 굳이 어떤 색깔에 비유해보자면, 누군가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남은 짙은 붉은 색과 같았던 그 날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차갑고 시린 푸른색의 우울하고 참혹한 어떤 잔상과도 같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서서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지라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그때만큼은 완전히 하나가 되었던 그 순간은 곧 서로의 온도가 더하고 또 더해져 하얗게 타버리고, 현재라는 시점은 그 하얀 백지 위를 다시 새로운 색깔로 물들게 한다. 그렇기에 기억은 시간과 그 시간 안에 켜켜이 쌓인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무관할 수 없다. 시간은 그렇게 그때로부터 우리를 개인으로 때어놓았으며, 그 개인은 또 다른 무리를 짓거나, 혹은 같은 울타리 안에서 다른 꿈을 꾸며 새롭게 각자의 위치를 가늠하게 된다. 다행히도 그러한 ‘차이’가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피에르 노라의 말처럼, 과거로부터의 차이는 현재의 환영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낸 간극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님으로부터 새로운 우리를 발견할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검은 밤, 비디오 나이트›는 검은 밤의 앨범에 수록된 개인과 사건, 공간과 기억에 대한 12곡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12편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한다. 통상적으로 뮤직비디오란 애초에 음악을 전제로 해석 - 제작된 비디오이기에 이 영상을 전시의 시작이라고 못 박을 필요는 없겠으나, 검은 밤의 멤버를 포함한 11명의 작가가 각자 음악을 고르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였으며, 이것이 전시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 발단이 되었기에 이 전시는 해석된 영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다. 이런 전후의
문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감각의 문제로 전시장에 펼쳐진다.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우리는 눈 앞을 가로지르는 테이블 위로 TV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TV의 배치나 배열, 대강의 개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점, 그러니까 전시장으로 입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찰나에서 우리의 신체는 공간에 울려 퍼지는 가수의 목소리와 음률, 가사에 먼저 장악당한다. 시각 중심의 이벤트인 전시에서 그 시각의 주체여야만 했던 관객은 곧 그 권력을 놓친 채 청각을 파고드는 소리에 힘없이 무너지는 객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TV에서 상영되는 이미지보다 빠르게 소리는 우리의 귓속을 파고들어 감각을 자극하고, 정서를 뒤흔들며, 신체를 내부에서부터 진동하게 한다. 그렇게 가시적인 신체가 부재한 소리는 이미 우리의 신체 감각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전시라는 제도에 어느 정도 학습된 지라 시각의 우선권을 놓치지 않은 채, 그리고 이러한 사운드 조차 곧 시각 예술의 영역으로 수용하며 테이블 위의 TV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또 다른 감각의 충돌과 수용은 여기서 일어난다. 꽤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아날로그 시스템의 TV는 앞뒤, 위아래의 단단한 볼륨을 뽐내고, 전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베젤의 두께는 작은 영상을 극대화된 물질의 영역으로 흡수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리듬으로 플레이되는 영상 이미지는 80년대 TV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에 함몰되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시기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강한 물질성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 하다. 또한 전시의 전반에 차려진 감각의 긴장은 하나 건너 하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배치된 영상의 간격, 그러나 한눈에 들어오는 서사의 간섭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테이블 위 영상을 감상 후 공간에 울려퍼지는 음악을 따라 커튼 너머로 들어갔을 때 마주하는 벽면을 가득 채운 디지털 프로젝션 영상은 또 다른 극적 반전의 상을 만들어낸다.
전시를 예민하게 본다면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지점을 눈치챌 수 있다. 커튼을 기점으로 앞과 뒤에 상영되고 있는, 하지만 동일한 음악-영상의 플레이 순서 차이이다. 음반의 트랙 순서가 청자의 몰입도와 정서의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구성된다면, 전시는 앨범과는 사뭇 다른 비선형적 구조를 띤다. 전시에서 눈앞의 이미지는 하나의 인상으로 남아 저만치 떨어진 작품과 연동되기도 하며, 그것은 심지어 작품이 아닌 전시라는 시공간의 감각에 일조하는 다른 장치로까지 이어져 언어로는 모두 담아내기 어려운 확장된 감각의 서사로 나아간다. 검은 밤은 이러한 상대적 구조 안에서 커튼 앞 테이블 위 TV 영상은 이미지, 톤, 시점, 형식, 서사구조 등을 바탕으로 마치 카세트테이프의 A면과 B면처럼 나누어 재구성해 놓았고, 커튼 뒤의 영상은 싱글 채널로 앨범의 트랙 순서를 충실히 재현한다.
번역이 소실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그 소실을 가능성으로 전유한다면, ‹검은 밤, 비디오 나이트›에 존재하는 번역의 과정은 소실과 채움의 관계를 넘어 애초에 각 언어, 감각이 가진 공란을 메워주며 작동하고 있다. 최초에 사건의 표피에서 시작하여 그것에 도달하는 다양한 경로가 허락했던 현실 이면의 다양한 시선의 층위, 개인의 기억과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견했던 진실은 사운드와 가사라는 옷을 입고 파편적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모아 다시금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게 해주며, 영상 – 뮤직비디오는 그렇게 시작한 공동의 기억을 다시 개인이 내밀하게 마주하는 다수의 현재로 확산한다. 결국 전시 안에서 감각의 충돌과 수용, 번역과 전이는 기억과 망각 사이에 존재하는 공란을 개인의 기억을 경유하여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다중의 감정을 허용하는 새로운 영토를 약속한다. 그리고 검게 물든 시공간, 그때의 밤은 조금 더 풍부한 컬러의 지금, 여기로 생동하게 된다.
/ 김성우
*검은 밤: 김유석[베이스, 보컬], 도재명[드럼], 안정주[기타,신디사이저,보컬], 전소정[아코디언, 테레민,보컬]
음악: 검은 밤(김유석, 도재명, 안정주, 전소정)
뮤직비디오: 김유석, 박경종, 스튜디오 답지, 심래정, 안정주, 야고 안톤 로렌조, 이문환, 이예진, 임지형, 전소정, 최이다
기획: 김성우
주최, 주관: d/p
협업: 구십구, 새서울기획, 소환사
그래픽디자인: 강문식
후원: 서울문화재단
출처: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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