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 보안여관 윈도우갤러리
2015년 9월 23일 ~ 2015년 10월 13일
동요 <오빠생각>은 1925년 11월. 잡지 <어린이>에 실렸던 동시였다. 당시 12세였던 최순애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오빠 최신복을 그리며 이 동시를 투고했고 당선되었다. 그의 오빠인 최신복 필명 최영주는 배재학교를 거쳐 일본유학을 다녀왔다. 그가 수원 화성소년회를 이끌 때 소파 방정환과 인연을 맺는다. 최신복은 1929년 1월. 소파의 권유로 개벽사에 입사한다. 개벽사에서 창간한 잡지 개벽은 우리나라 신문회사 중 가장 권위 있었던 종합잡지였다. 천도교를 배경으로 한 잡지였기에 일제에 대한 항쟁이 기본노선이 되었다.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 소파 방정환(方定煥)은 개벽사의 『어린이』 잡지 주간이었다. <어린이>는 최순애의 오빠생각이 실렸던 잡지다. 방정환은 천도교 3대교주인 손병희의 딸과 결혼한다. 1920년 개벽 창간 당시에 동경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1923년 3월 20일 도쿄 하숙집에서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그는 어린이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의 어린이날을 만든 장본인이다. 1941년 5월1일 최신복(최영주)은 자신이 운영하던 박문서관에서 마해송과 함께 소파전집을 간행한다. 최신복은 45년 39세에 나이로 타계한다.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부친과 모친, 그리고 소파가 잠든 망우리 공동묘지에 함께 묻힌다. 26년 잡지 <어린이>에 16세 이원수가 <고향의 봄>으로 입선한다. <오빠생각>에 감동받은 이원수가 최순애에게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10년간 연애편지가 오고갔다고 한다. 두사람이 처음 만나기로 한 날, 이원수는 일본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어 1년간 감옥에 갇힌다. 석방과 동시에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최순애가 서울에 간 오빠를 기다리며 부르던 <오빠생각>은, 옥에 갇혀있는 그분을 기다리는 노래로 변했다고 한다. 1970년, 최순애와 이원수는 답십리에서 사당동 예술인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다. 예술인마을에서 담하나를 두고 이웃했던 예술인 중에는 황순원, 양정길 부부, 서정주 방옥숙 부부 등이 있었다. 세 부인들은 가까운 사이였다.
소나기의 황순원은 해방 이후 한국의 대표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34년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여 일본으로 유학, 35년 1월, 일본 나고야 금성여자전문의 학생이던 양정길을 맞아 결혼한다. 여학교 시절 문예반 때부터 황순원과 교제했다고 한다. 황순원은 부인이 없었다면 자신의 문학이 불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황순원과 양정길은 경기 양평군 소나기마을 황순원문확관 내에 합장되었다. 황순원의 제자들 또한 예술인 마을에 꽤나 많은 수가 모여 살았다. 이 지역 남현동 예술인마을은 한국예술인총연합회와 서울시가 1969년부터 주택단지를 조성하며 만들어졌다. 1967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연극배우 이해랑(1926-1989)씨가 당시 박정희 정권에 건의하여, 당시 과천의 시골이었던 남현동에 예술인 복지 아파트를 건립한다. 예술인 복지 아파트는 2003년 철거 되었지만, 이곳은 현재에도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정주 시인 역시 노년의 삶을 이 지역에서 보냈다. 부인 방옥숙과 함께 예술인마을에서 살았던 흔적들은 당시 신문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방옥숙 여사가 2000년. 10월에 별세이후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하던 서정주는 같은해 12월24일 별세한다. 그는 10년 동안 치매에 걸린 아내의 수발을 했고, 어디에 가든 손을 잡고 다녔다고 한다. 서정주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김동리, 함형수 등과 함께 시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일지사에서 1972년에 출간된 서정주 문학전집 3권 ‘천지유정(天地有精)’ 편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라는 기재가 되어있다. 이 기록은 현재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곳, <보안여관>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오빠 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은 평양 숭실전문을 졸업, 당시 대구계성중학교 문예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박태준과 최순애는 생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고재욱
출처 -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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