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105-4
2025년 2월 12일 ~ 2025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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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105-4번지, 이곳은 현재 공실(空室)이다. 얼마 전까지 오피스로 사용되었으며 오는 3월에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예정이다. 지금 이 공간은 특정한 용도를 부여받기 이전의 유예 상태에 놓여 있다. 탕비실과 리셉션이었던 자리는 그 흔적만 남아있으며, 이전 임차인이 남기고 간 인터넷과 정수기 선은 한쪽 끝이 잘린 채 흩어져 있다. 전시 《공실 vacancy》는 이러한 공간의 물리적 구조와 임시적 성격을 그대로 수용하여 이를 전시의 장소로 전환한다.
경제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공(空)의 시간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불안과 조급함을 유발한다. 비어있음은 곧 결핍으로 인식되고, 채워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 채 빠르게 다른 의미로 대체된다. 전시 《공실 vacancy》는 이러한 ‘공’의 상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공실이 품고 있는 미지의 상태를 탐구한다. 기능과 의미의 좌표에서 해방된 공간은 ‘채워짐’에 가려져 있던 존재를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은 단순한 부재의 상태로 머무르지 않으며, 본 대로 말하는 순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공간은 자신의 물리적 조건을 초과하는 확장을 이루고, 이는 곧 내밀한 존재와 사유의 확대로 이어진다. 이곳에 모인 송민지, 장세형, 정지윤, 차지량의 작품은 ‘공실'이라는 가장 낮은 공통 분모 위에서 자유롭게 팽창하며, 비워진 상태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여백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생성한다.
송민지는 그리기의 주체로서 ‘그리는 것’과 ‘그려지는 것’을 모두 화면에 담는다. 그의 회화는 환영적 공간이기 이전에 중력과 시간, 그리고 신체적 개입이 작용하는 물리적인 장(場)으로 작가는 물감의 농도와 점도를 조절해 천에 물감이 얼마나 옮겨 다닐지 결정하고, 천을 움직여 물감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며 화면을 구축한다. 그에게 ‘현재’란 무한한 공간과 영속적 시간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닌 일시적 구조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 변화의 총합이며, 이는 그가 회화를 구축하는 태도이자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내걸린 두 점의 회화는 회화적 시간성과 물질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험한다. 〈무제〉(2024)는 캔버스의 휘어진 굴곡을 따라 흐르는 물감의 궤적을 통해 시간의 물리적 흔적을 드러낸다. 물감이 중력과 표면의 저항을 따라 남긴 흔적은 여러 갈래의 경로를 형성하며, 화면은 시간의 켜가 축적된 결과로서 존재한다. 〈마커〉(2022)는 천을 접고 겹치며 스트로크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뒤섞는 방식을 통해 화면 속 시간을 재구성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반복과 중첩을 통해 비약하고, 역전된다. 작품은 비어 있는 공간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시간을 드러내며, 동시에 회화적 궤적을 통해 현재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장세형은 일상의 사물을 잠시 빌려와 조각을 만들고, 전시가 끝난 후 해체하여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이 과정에서 사물들은 일시적으로 ‘조각’이라는 상태를 경유한다. 정지된 사물들은 작가의 조형적 개입에 의해 전시장 곳곳에서 느슨한 연결을 이루며 공간을 점유하고, 시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장세형은 비워진 공간을 감각하며 새롭게 제작한 세 점의 작품을 통해 사물과 기억, 비움과 부재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효창공원에서〉(2025)는 작가가 자신을 비워내기 위해 명상처럼 수행하는 산책의 행위와 감각을 담은 작업으로, 길에 두고 온 것과 길에서 교환하듯 빌려온 것들을 수집하여 한 데 묶는다. 〈윌슨〉(2025)은 바람 빠진 농구공을 몰드 삼아 제작한 석고 조각으로, 형태를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되려 무수히 증폭되는 감정과 기억을 포착한다. 작품에 은은하게 퍼지는 유칼립투스 향은 각자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하며 존재와 흔적의 상태를 부유하게 만든다. 노르웨이의 한 마을에서 비롯된 파란 양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올뤼외르트랑〉(2025)은 이야기를 증발시키는 장치를 통해 믿었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의 낙차를 탐구한다. 세 점의 작품은 서로를 부추기고, 맞닿고, 흐트러지며 불완전한 상태 속에 사물과 기억이 스치고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정지윤은 조각, 설치, 사운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구조와 질서 속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균열, 연합, 저항의 심리적 양상을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부재를 통해 이를 환기하며, 틀과 자취로 원형의 감각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공간이 지닌 제약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존 작업의 재료적 특성과 설치 방식을 변형하고 확장한 작업을 선보인다. 〈Work Ethics〉(2024)는 흔히 ‘사랑의 매’로 인식되는 효자손의 형상을 거푸집으로 떠낸 조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된 의무 혹은 윤리를 기반으로 수행된 행위의 잔상을 포착한다. 나무의 가시를 투명한 소재인 에폭시로 캐스팅한 후, 이를 포토그램 기법으로 평면화한 두 점의 사진 작업 〈Buds〉(2022/2025)는 앞선 조각 작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조각적 요소에서 나타나는 음각과 양각의 대비, 사진 매체에서 드러나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관계를 통해 형태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 틀이 양생하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Everything is Personal to Me〉(2024)는 사고 차량의 헤드레스트 커버를 제거한 후, 이를 몇 주 동안 밀웜(meal worm)에 노출시킨 작업으로 스펀지에 남은 흔적들은 강렬한 충격의 순간과 점진적이고 미세한 파괴의 축적을 동시에 가시화한다. 안쪽 탕비실에 설치된 6채널 사운드 작업 〈Condition Reserved〉(2024/2025)는 롤러코스터 탑승객의 환희와 공포의 비명이 한 데 섞여 밀려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스피커를 감싸고 있는 불투명한 아크릴은 시각적 인식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며, 소리가 만들어내는 감각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미디어를 주 매체로 작업하는 차지량은 개인과 구조 사이에서 개인이 온전한 존재로 실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는 도시의 구조 속에서 울리는 개인의 내면적 진동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사회와 예술 시스템 안팎에서 사람들을 모아 움직임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작가가 경험하거나 발생시킨 시공간에서 새롭게 마주한 감각과 세계를 시청각적 레이어로 구성하는 작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12년에 발표한 참여 프로젝트의 기록 영상 〈New Home〉을 선보인다. 작업은 당시의 주거 정책에 개입하지 못했던 세대이자 주거 공간이 필요한 27명의 사람들이 수도권에 위치한 다양한 형태의 빈 거주지를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여정을 담아낸다. 다세대 주택(2011년 여름), 도시형 원룸(2011년 가을), 그리고 매립지 위에 조성된 신도시 아파트(2012년 겨울과 봄)에서 하룻밤 머문 이들은, 날이 밝으면 그곳을 떠나면서도 공간에 각자의 흔적과 온기를 남기며 ‘집’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성립하는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 맵을 따라 이어지는 후속 작업 〈Stay〉(2021)는 〈New Home〉 속 인물들을 10년 만에 다시 초대해, 그들이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위치를 추적한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과거 하룻밤 머물렀던 장소의 기억과 맞물리는 동시에 때로는 이전과 다른 곳을 향한다. 한때 머물렀던 공간을 상징하는 돗자리는 하나의 소망을 담은 종이학으로 접혀, 머문 자리와 떠난 이후 남겨진 흔적을 시적인 형상으로 변주한다.
송민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상히읗(2024, 서울), 인터럼(2024,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하이트 컬렉션(2024, 서울), 온수 공간(2022, 서울), WESS(2020, 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장세형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2024년 WWW SPACE 2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오온(2024, 서울), gallery ebb & flow(2024, 서울), 공간 연줄(2023, 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정지윤은 서울과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N/A (2024/2022, 서울), 콘호이젠(2024, 아샤펜부르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Hall 1(2022, 서울), 쿤스트 페어아인 비젠(2019, 비스바덴)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최근 덴마크 쿤스탈 샬롯텐보그(2025, 코펜하겐)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여 솔로 어워즈를 수상한 바 있다.
차지량은 서울에서 태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한다. d/p(2022, 서울), 스페이스 캔(2019,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24 부산비엔날레(2024, 부산), 일민미술관(2024, 서울), 국립현대미술관(2021, 서울), 백남준 아트센터(용인, 2015)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참여작가: 송민지, 장세형, 정지윤, 차지량
기획: 강하람(전시), 이승민(프로그램)
포스터 디자인: 허규빈
설치: 이혁인
사진: 오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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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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