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신관
2018년 10월 31일 ~ 2018년 11월 6일
곽휘곤, Hana7 레진, 석고 120.120.320(mm) 2018
작업노트
곽휘곤
우리나라에 거주 중인 어느 외국인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말 중에 ‘우리’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라는 말은 나와 너를, 나와 너희를 엮어주는 말이다. 그 때문에 이방인으로서 나는 내가 그들의 집단 안에 들어가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규정해 주는 말일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안과 밖을 구분한다.
나는 우리를 생각한다. 특히 너를 바라볼 때 우리를 생각한다. 네가 내 우리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말이다. 나의 우리 안에서 바라본 너는 이름이 없다. 이름 없는 너는 더 대상화되지 못하고 물화하여 기능한다. 이름 없는 너는 홀로 있지 않고 너의 우리 안의 너로 있다. 너는 너의 우리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나는 너를 통해 너의 우리를 본다. 아니 너는 투명해지고 너의 우리만 남는다. 너는 노동자라 불리고, 학생이라 불리며 노인이라 불린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너고 만 원 지하철 내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던 아가씨가 너다. 공사장 타워 크레인 위 보이지 않는 기술자가 너고 식당 주방에서 반찬을 옮기는 아줌마가 너다. 너의 우리 안에서 너는 너의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나의 우리 안에서 바라본 너는 이름이 없다. 이제 와 나는 이름 없는 너의 이름을 생각한다.
나는 너의 얼굴을 떠올린다. 너의 옷차림, 너의 신발, 너의 가방 색을 알고, 너의 목소리가 귀를 스치지만, 결코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명해지던 코끝의 이미지는 그 위로 시선이 옮겨 간 순간 흩어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돈을 받아 계산하고, 내 등 뒤에서 전화 통화를 하던 아가씨는 소음으로 내 귀를 때리며, 타워 크레인 기사는 철근을 옮기고, 식당 아줌마는 밥을 짓는다. 너는 도구로 사용되고, 배경으로 존재한다. 도구와 배경에는 얼굴이 없다. 그래서 나는 너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너는 이름이 있다. 물론 얼굴도 있다. 하지만 너의 우리 속의 너는 없다. 너를 너의 우리 속의 너로 만든 것은 나다. 나는 너를 나의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밖에 두었다. 너의 우리도 내가 만들었다. 너를 나의 우리 밖에 두어 네가 도구로 사용되기를 배경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 때문에 너의 이름이 없다는 것은 틀렸다. 너의 이름은 지워졌고, 너의 얼굴도 잊힌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너의 얼굴을 떠올리려 할 때에야 비로써 내가 너의 얼굴을 잊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너를 보지 않고 네 넘어 너의 우리를 발견할 뿐이다. 너의 우리는 또 다른 우리로부터 만들어졌고 제시되어 소비된다. 나의 하루에 수많은 네가 이렇게 존재했다.
하지만 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잊으려 노력한 순간 그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기억나지 않는 너의 얼굴은 떠올리는 순간 너는 나의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더 이상 너의 우리 속의 네가 아니라 나의 우리 속의 너다. 너는 얼굴이 있고 이름도 가졌다. 다만 너의 얼굴을 지운 내가 있을 뿐이다. 너의 얼굴을 지운 나를 발견한다. 너를 나의 우리 밖으로 밀어내고 너의 우리를 만들어 너를 지운 나를 알게 되었다. 결국, 너의 혐오는 나의 혐오로 남는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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