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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6일 ~ 2020년 10월 20일
광장/조각/내기는 공공과 미술이 만나는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룹니다. 이 프로젝트는 좋은 공공미술을 만들어보려는 실험도 아니고, 구태의연한 공공미술에 비난의 칼날을 하나 더 쑤셔 넣으려는 시도도 아닙니다. 우리는 공공미술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살피기보다는, 그것의 존재 자체를 묻습니다. 공공미술이라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왜 공공미술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공공미술은 존재합니다. 너무 많아서 문제가 있죠. 저 광장에는 언제나 기념비가 우뚝 서 있습니다. 소위 ‘건축물 조각’이라고 불리는 특정 양식의 조각들이 곳곳에 가득하기도 합니다. 공공의 기금 투입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공공기관에서 공공사업으로 진행되기도 하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토록 많은 공공들이 공공이라는 관념에 대한 사유를 전혀 끌어내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공동의 구멍은 애초에 공공이라는 말 자체에 뚫려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장 조각 내기’는 하나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3개의 단어입니다. 모여서 하나의 의미를 이루는 상황과 낱말들 각자의 단수성이 함께 작동하는 형상을 상상하면서. 광장과 조각과 공공과 미술의 다른 가능성에 내기를 걸어봅니다.
모두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광장은 애초에 단수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하나의 광장이라고 해도, 그것에는 수많은 장소들이 겹쳐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 오늘날의 광장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광장들은 또 어떻고요. 여기에서 우리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변증법으로 광장성에 틈을 벌리고,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멍을 드러내는 것을 시도합니다. 누군가는 공공이라는 이름 아래 불타버린 존재들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산산 조각난 광장의 조각들이 이리저리 빛을 산란시키며 그려낼 별자리를 생각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그러나 모두가 다르게 연결하는.
* 본 전시는 웹사이트를 전시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http://p-p-p.site/main/
기획: 권태현, 최황
작가: 강은희, 김재민이, 주현욱, 차지량, 최태훈, 최황
텍스트: 전솔비, 허호정
디자인: 일상의실천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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