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파도
2024년 1월 15일 ~ 2024년 1월 27일
우리를 압도하는 슬픔, 우리를 마비시키는 지연(retardation)은 또한 하나의 방패인데 때때로 가장 최종적인 것, 즉 광기에 대한 방패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검은 태양’
범죄 현장에서 누군가는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통해 사건 당시로 거슬러 인과를 포착하고 역추적하거나, 어떤 이는 고독사 현장에서 유품과 특정 흔적을 청소하고 소독하며 고인의 당시 심리상태를 참작하고 익명의 죽음에 애도하고 통감한다. 신체가 증발한, 오로지 사물들의 침묵만이 진동하는 사건의 '장'에서 그들에 대한 응시가 만들어낸 '퇴행의(regressive)' 정서를 포착하는 데에 흥미를 둔 두명의 작가 머피염과 이상이는 설치 문법을 통하여 ‘공간 파도’의 공간을 고독사 현장으로 환원해 본다.
책 '검은 태양'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우울감에 휩싸인다는 것은 곧 모성의 단절, 즉 자궁과의 분리가 실패되면서 발생하는 감각이며, 이러한 상실에 대한 첫 경험은 지속해서 슬픔에 지배되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이 슬픔을 광기에 대한 일종의 방패로 설정하고, 슬픔을 소중히 간직할 권리를 제창하는데, 이는 우울한 이들에게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슬픔만이 대체 대상(substitute object)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멜랑콜리아에 지배된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치명적 *대양적 상태에 머물게 된다. 지속해서 논리와 멀어지고, 불확실하며 계속 요동한 채 뿌옇고 모호한 것들을 붙잡아두려 한다. 슬픔을 분노, 수치심, 망상과 같은 우울의 정서로 잘게 쪼개어 사물에 투영시킨다면, 우리는 그 막연한 고독의 질식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 대양적 상태 : <대양과 같은 느낌과 코뮤니스트 정동>, 재키 왕
머피염과 이상이는 각자 우울을 증폭시키던 이미지를 묘사하고 공유한다. 예컨대, 특수청소부의 고독사 현장 브이로그에서 목격한, 매트릭스에 끈적하게 굳은 사체 진액 위 즐비한 구더기 사이서 빛나는 고인의 치아 조각이라던가, 밤새 불면증에 시달리다 불현듯 떠올린 작은 이빨들이 병치된 환상 등이 그것의 단초가 되었다. 그로부터 두 작가는 멸망으로부터 환상에까지 이르는 동안 함께 겪은 이미지를 설치 내에서 즉흥적으로 엉겨 붙게 하고 서로 다른 가치들을 조형적으로 동질화시키는 실험을 꿈꾸었다. 와해된 정신구조, 특히 여성의 붕괴와 나락, 논리의 상실과 그것을 고집적으로 붙잡아두는 행위들을 통해 각자가 겪은 사물들을 꺼내놓고 엮어내 보려는 것인데, 이로써 알 수 없는 심연적 느낌, 설명하기 힘든 정서는 사물을 작동시키고, 병치하며 끼워내고 엮으려는 시도로서 더 선명히 직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과 가까운 특정 장소를 묘사하려는 실험 속 두 작가는 다양한 몸이 된다. 모든 일들을 만들어버린 '신'의 몸이 될 수도 있겠고, 즉흥적으로 늘어져 있는 사물들 앞에서 '추적자'의 몸이 되기도 할 터며, 죽음을 겪은 '고인'의 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들이 그러한 몸으로 데려온 사물은 실제로 그들이 특정 시절을 함께 향유해온 것들이거나, 방치되어 있다가 새롭게 꺼내어진 것들이다. 우리는 사건 현장이라는 가상을 매개로, 즉 누군가의 죽음 또는 나의 죽음의 현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방치돼 있었던 어떤 대양적 느낌에 각자만의 제스쳐와 감각을 발현시키고 쉽게 증발하는 상실하는 이미지이자 환영을 붙잡는다.
결과로의 설치는 익명의 죽음과 그 전후를 어우르는 공간이 되고, 사물들의 헛된 움직임, 엉뚱한 곳에 놓인 기성품 등의 투영은 극복할 수 없는 심연의 슬픔을 유머와 조잡함으로 누락시키려는 시도가 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작업방식을 헌정하고 기꺼이 의지하는 협업실험으로 하여금 두 작가는 서로가 다루던 매체 간 경계를 무르고, 사물을 둘러싼 정동(affect)의 극대화와 개인과 사물에 드리워진 정서적 유대의 장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이상이는 조각, 드로잉, 페인팅 등의 매체를 통해 탐험자로서 감각과 세계 간 미지의 연결을 탐구하며 주로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 집단무의식, 미스테리, 꿈의 세계 등의 주제를 다룬다. 뜬금없이 떠오르며 연상된 이미지들, 움직이며 연속적인 잔상들을 서로 간 붙잡아두며 이미지의 넘쳐남 속에서 '감각함'을 즐기고 다양한 시점 놀이를 통해 그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머피염은 일상의 사물들, 그 중에서도 가정용품과 같은 가사 노동하는 신체와 긴밀한 유대가 있는 물건들을 모으며 기계체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한다. 사물과 사용자의 관계에 주목하여 이를 임시변통(Makeshift)적 조형설치의 문법을 바탕으로 설치,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통해 재해석한다. 가정용 기계에 해체, 파괴와 고갈의 행위를 반복적으로 가하면서 결국 기존의 기능이 쓸모없어져가는 지점에 까지 다다르게 만드는데, 이 ‘소진’을 통해 예측불가능하게 ‘재발견’하는 쾌에 도달하는 것은 좀 더 명확히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해 다소 파멸적인 경험을 지속하는 수행과 같다.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 그에 대항하고, 명료하게 보기위해 오히려 더 망가트리는 실험을 지속하며, 사물과 몸이 맺는 관계 속 낭만과 순진함에 천착한다.
참여작가: 머피염, 이상이
주관: 공간 파도
포스터 디자인: 윤희연
오프닝 리셉션: 1월 15일 (월) 15:00-19:00
간단한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실험 연계 클로징 퍼포먼스: 1월 27일 (토) 18:00-19:00
전시장 내 실험전의 주요 자료가 될 방명록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3:00 - 20:00
화요일 13:00 - 20:00
수요일 13:00 - 20:00
목요일 13:00 - 20:00
금요일 13:00 - 20:00
토요일 13:00 - 20:00
일요일 13:00 - 20:00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