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9년 10월 17일 ~ 2020년 2월 9일
1 / 2
《광장》1부 (덕수궁관 2019.10.17~2020.2.9.)는 1900~1950년의 시기를 다룬다. 19세기말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격동하는 시대의 파고 속에서도 ‘의로움’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을 살펴본다. 오래도록 후세에 기억되어야 할 올곧은 인물들의 유묵(遺墨)에서부터, 망국(亡國)의 시대에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예술가들의 고민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의로운 이들의 기록”, “예술과 계몽”, “민중의 소리”, “조선의 마음” 4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공존한 역동적인 한국 근대사를 조망한다. 채용신, 오세창, 안중식, 김용준, 김환기, 이쾌대 등 작가 80여 명 작품 130여 점과 자료 190여 점을 선보인다.
을사늑약 체결 후 낙향하여 우국지사의 초상화를 주로 그린 채용신의 대표작 <전우 초상>(1920), 의병 출신 화가의 지조와 절개를 보여주는 김진우의 <묵죽도>(1940), 3·1운동 참여 후 수배를 피해 중국을 거쳐 미국에서 유학한 임용련의 <십자가>(1929) 등을 선보이며, 이중섭만큼 그 성품과 화격을 인정받았던 인물이었으나 월북하면서 잊혀진 작가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1940년대)와 <원두막>(1946)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현채가 저술하고 안중식이 삽화를 그려 애국계몽운동 시기 애용된 아동용 교과서 『유년필독(幼年必讀)』(1907), 3·1운동 이후 창간된 대표적인 문학 동인지 『백조(白潮)』창간호(1921),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당대 문인들이 참여한 『신소년(新少年)』(1930), 『별나라』(1934) 등 미술 작품 뿐 아니라 근대기 신문, 잡지, 문학, 연극, 영화 자료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들이 총망라되었다.
전시구성
1. 의로운 이들의 기록(제1전시실)
19세기 세계열강들의 제국주의 야욕 속에서, 한반도는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 서서 격변기를 맞았다. 이 때 이른바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로 분류된 각지의 사대부들은 끝까지 쇄국을 고수하며 유교를 숭상하고 왕을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편으로 세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고루한 이들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어떤 점에서 이들의 ‘목숨을 건 고집’은 존경받아 마땅한 면을 지니고 있다. 주로 사대부 가문의,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시대의 사명에 직면하여 첫째 목숨을 끊거나, 둘째 의병(義兵)을 일으켜 무장 투쟁을 하거나, 셋째 은거하여 후세를 기약하는 단호한 결정을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들의 기상(氣像)을 기억하고 기록하듯, 화가 채용신은 수많은 우국지사의 초상을 남겼다.
재산을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에 바쳐 말년을 가난으로 보냈던 사대부 출신의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군자’를 그리는 이들이 있었다. 절개와 의로움을 상징하는 사군자는 마음의 다짐과 수양이며, 친구들을 위해서는 우정과 교유의 징표이고, 독립운동가로서는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한반도 전역과 만주,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평생 일경에 쫓겨 기록을 남기지 않아야 했던 이들에게, 현존하는 사군자는 의미 있는 역사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2. 예술과 계몽(제2전시실)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을 통해 세계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개화파들은, 역관 출신의 중인 계급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교육’을 통해 ‘계몽’을 하는 것이 곧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교육과 출판 사업을 통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문명화’하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세창을 필두로 그의 주변에 있던 많은 예술가들(안중식, 이도영, 고희동 등)이 이와 같은 문명의 보급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이들은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교과서를 디자인하며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내용을 담은 삽화를 제작하는 일 등을 주도했다. 이들은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며, 실질적으로 삼일운동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실천했던 삼일운동의 숭고한 희생을 뒤로 하고, 1920년부터 1930년대 전반 인쇄와 출판 사업은 더욱 활발해졌다. 일본 총독부에 의한 이른바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 주도의 언론, 출판, 교육의 장(場)이 어느 정도 열렸다. 비록 철저한 검열 제도와 완벽한 이중 구조 속에 만들어진 시스템이었지만, 좁은 가능성을 뚫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 『창조』, 『백조』, 『폐허』, 『개벽』과 같은 잡지, 그리고 여러 종류의 소설집과 시집 등이 세상에 나왔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3. 민중의 소리(제3전시실)
여기서는 성장하는 민중(民衆)의 힘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성장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대해서 살펴본다.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사회주의의 계보를 이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부터 자극 받은 공산주의 이론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짧지만 강렬한 유행을 낳았다. 문예 분야에서는, 순수 문학과 순수 미술의 범주를 의도적으로 벗어나, 판화나 인쇄 미술과 같은 빠르게 복제 가능한 매체가 급성장해 갔다. 신분제가 폐지되고 불특정 다수로서의 ‘대중’의 개념이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지배했다. 각종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촉발하였다. ‘신극(新劇)’이라고 불린 새로운 종류의 연극을 포함하여 각종 공연예술이 활발해졌고, ‘영화’가 수입 혹은 제작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한편,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수많은 민초들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연해주로 진출하였고, 때로는 중국을 거쳐 미국이나 유럽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이들 중 예술가로 성장한 이들은 한반도 밖의 새로운 풍경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또한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일군의 문예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4. 조선의 마음(제4전시실)
여기서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 고유의 미학(美學)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일련의 예술가들에 대해 살펴본다. 이쾌대, 최재덕, 김환기, 이중섭 등 한국 근대미술사를 빛낸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은 일본에서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세계의 조류를 파악하는 한편, 조선의 전통 미학을 어떻게 서양의 흐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소담한 백자의 미학,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고대적 상상력과 힘찬 기운, 수묵화에서 기원한 유려한 선(線) 표현 등을 강조하면서, 이들은 ‘조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각자의 방식을 찾아나갔다.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이상일문화재단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0:00 - 18:00
수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18:00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1월 1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