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
2021년 12월 26일 ~ 2022년 1월 30일
“박효신한테는 제가 미안해요.”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박효신의 목을 확대해서 빚어놓은 흙덩이를 앞에 두고 말했다. 제작 중인 작품은 얇은 피부 아래 피가 흐르고 맥이 뛰는 듯 정교하게 아름다웠다. 나는 남성 작가가 남체를 묘사하는 일의 퀴어함 같은 것들을 떠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반면 작가는 얼굴을 잘라 내어 인격은 삭제하고 목만 관능적으로 재현해 놓으니 실재 인물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남자 아이돌을 음지에서 덕질하는 잉여였기 때문에 남의 몸을 대상화하는 재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터무니없이 낮아진 상태였다. 그의 말은 순간 나의 잠든 양심을 두드리는 듯했다. 잊고 있었지만 신체를 재현하는 작업이 갖는 어려움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보고’, ‘어떤 식으로’ 등등의 사이에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동반한다는 데 있었다.
권동현이 인체 조각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18년의 <베이징 비키니>로,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가적 논란이 된 ‘배 깐 아저씨’들의 몸을 콘트라포스토 자세의 토르소로 해석한 것이었다. 더운 여름 베이징에서 중년 남성들이 셔츠를 가슴까지 올리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문화적 기준이라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여 검열이 행해지자 그 몸들은 ‘비키니’라는 다소 민망한 이름으로 호명되었고, 서로 다른 시선과 권력이 교차하는 정치적 장소가 되었다. 이런 논란의 순간 아저씨들의 몸은 그에게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아저씨’를 다루는 저변은 크게 확장됐다. 그저 배 깐 것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꾸밈없고 진귀한 변태적 장면들이 짤로써 존재하는 광대한 인터넷 세계로부터 그는 다양한 풍속의 아저씨들을 건져 올렸다. 작가는 이런 짤들을 본격적인 작업의 소재로 삼은 계기로 근 몇 년간 이어진 페미니즘 혁명 속 “중년 남성 혐오”라는 현상을 언급했다. 사회의 주류 권력으로서 몸가짐과 언행에 거리낄 것이 없던 중년 남성의 몸은 가차 없는 시선 아래 대상화되었고, 그 중 미러링이라는 신박한 조롱은 하나의 극단적인 인터넷 문화가 되었다. 작품 속에 구현된 나체 목욕과 해병대 남성만을 예로 들면, 계곡에서 다 벗고 멱감던 중년 등산족에게는 ‘알탕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디씨인사이드 해병대갤러리의 ‘해병 문학’에서는 마초성을 뽐내던 해병들이 게이 섹스 고문을 당하며 희화화되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일단 이 사태에 대한 어떤 시각이 작품에 반영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작가에게 여러 방면으로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페미니즘의 전략이 폭력적인 대상화인 동시에 대상화에 맞서는 대상화라는 보다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가지고 있고, 이 페미니즘 전쟁은 지금 많은 이들에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긴 대화의 결론을 요약하면, 그는 이 페미니즘의 “중년 남성 혐오”에 대해 비평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작업은 보다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저 만들고자 하는 어떤 덕질의 산물에 가까웠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인터넷상을 배회하며 남성성에 특이점이 온 순간들을 즐겁게 모아왔다. 노래방에서 아저씨끼리 벗고서 너무 으쌰으쌰하다보니 어느 순간 광란의 게이파티처럼 보이거나, 길에서 나체로 나대다가 경찰에게 쿠사리를 먹거나, 몸을 키워서 자랑하려고 올렸는데 뒤에 찍힌 비루한 방의 배경과 뭔가 어긋나 있거나. 이럴 때 그는 남성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적 남성문화와 힘자랑을 비평하며 함께 웃고 있지만, 비웃지 않고 이런 장면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아저씨라는 이 수요 없는 마이너 장르의 덕후로서 대상의 어떤 점이 사랑스럽고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나아가 여기에는 어떤 문화적 가능성이 있는지를 탐색해 보고자 했다. 논란도 껴안을 만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담긴 덕질, 좀 배운 이들의 언어로는 이를 ‘순덕’이라고 한다.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풍자적인 주제 속에서도 대상을 미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짤방 속 난감한 상태의 인물들을 구현한 <작은 아저씨들>은 그가 숙련된 손의 기량을 발휘해 하나하나 붙이기로 제작한 것이다. 이때 짤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적지 않은 변형을 주었는데, 임의로 옷이나 자세, 신체 비율을 변경하였고, 강조할 부분을 택해 자세히 묘사하거나 생략하였다. 종종 원본에 얼굴이 없는 경우 전형적인 캐릭터를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얼굴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만든 여러 인물들을 한데 이어 붙였고, 전쟁 기념 조각의 양식을 참조하여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역동적인 동세를 이루는 전체 구조 안에서 각각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서 있거나 총이라도 맞은 듯 비장하게 널부러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신줄을 놓은 취객이거나 수치를 모르고 아랫도리를 내린 아저씨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미술이 상상해온 남성적 이상향에 엿을 먹이고 있다. 동시에 이 못생긴 한 명 한 명을 정성스레 매만져 깊이 들여다보도록 유도한다는 면에서 이들을 짤로써 가볍게 대상화시키는 시선과도 경합한다.
<근육 정장>과 <박효신한테 미안해>는 신체를 부분적으로 재현하면서 그리스 조각의 고전적 예술 양식을 차용했다. <근육 정장>은 양복을 입은 보디빌더의 몸을 토르소로 만든 것인데, 벗은 상태로 근육과 역삼각형 몸매를 뽐내는 보디빌더가 옷을 입었을 때에는 핏이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워지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옷 안에 든 비대한 몸의 부피감과 함께, 굴곡에 따라 타이트하게 당겨지거나 헐렁하게 접히는 옷의 주름을 그리스 조각처럼 세심하게 조각했다. 박효신의 목을 확대한 조각 < 박효신한테 미안해>는 내지르고 열창할 때 목에 핏대가 서는 모습을 포착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남성성의 모습 중 보통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작가는 가수가 강하게 힘을 주며 긴장된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에서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석고상의 윗부분이 잘린 것처럼 보이는 이 조각은 해부학적으로 사실적인 목을 보여준다. 남성성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담아온 미적 규범인 그리스 조각을 변주하는 것이다.
작가는 인터넷 짤방의 매력을 “맛이 간, 망가진, 미친” 또는 “문명사회가 정해 놓은 선을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광기에는 전복적인 면이 있다. 젠더와 자본 등의 권력이 몸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등급화하려 해도 관리되지 않는 잉여가 인터넷의 음지에 떠돌고 있고, 이로부터 우리는 창의적인 인식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야생’의 상태에 대한 열광에는 퇴행적인 면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이들이 괜히 “문명인이 되자”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혁명의 시선에서는 이 아저씨들의 몸을 기념비화 하는 방식이 적폐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짤 속의 낙오자 같은 아저씨들을 단순하게 열광적 혹은 냉소적 시선으로 보거나 납작하게 대상화하지 않은 채 ‘미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
작가를 만나고 돌아와 구글에 ‘밈 피규어’를 검색해 봤다. 그가 짤을 가지고 군상 작품을 만들 때 덕후들의 피규어 제작을 참고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화면 속 3D 연성과 굿즈들은 너무나도 취향을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것이자 마음에 손쉬운 위안을 주기위한 물건들이어서 평면의 대상을 실체화한다는 점 외에는 작품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이 고독한 덕질의 산물이 왜 예술인지는 너무 분명해 보였다. 모쪼록 이 전시를 가능한 불편하게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작가: 권동현
기획: 안부
글: 김수영
디자인: 톱니귀
설치: 신익균 톱니귀
주최 및 주관: 별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출처: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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