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켄드
2018년 10월 6일 ~ 2018년 11월 4일
우리는 대체로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등의 신체 감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경험하고 다양한 존재를 인식한다. 이렇게 직접 느낄 수 있는 감각만큼 빠르고 명확하게 무언가를 인지하고, 믿고, 판단할 수 있는 통로는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때로는 어떤 감각에 의해 그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억이나 다른 감각이 파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초록색을 보고 풀 내음을 맡는 것처럼 말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감각이 서로 결합하고 치환되는 과정은 분명 존재한다. 김겨울은 이처럼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에서 계속해서 사라지고 새로 생성되는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수많은 움직임을 찾는다.
김겨울은 벽의 구멍이 없어진 자리, 피아노 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공기의 자국,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다시 쓰였을 움직임, 얼굴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소리 등 작고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는데, 이때 청각, 시각, 촉각, 후각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얽히고 교차하는 감각으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휴지 되고, 사라지는 다양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한다. 이러한 치환은 움직임이 서로 만나고 어긋나면서 생기는 중첩과 파열 때문에 꽤 예측이 어려운데, 작가는 이를 규칙이나 질서로 정리하려 하기보다는 조금씩 다가가면서 서서히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행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작가만의 미감은 그의 화면에 공통되게 나타난다.
이번 신작에서는 작가의 관점 위치가 바뀌는 큰 변화가 생겼다. 자유롭고 잠재적인 상태의 흐름이 나타난 이전 작업에서 그의 위치는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보듯이 그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화면 속에서 섞여 사라졌다. 반면, 이번 신작은 그 흐름을 흐르게 만드는 - 계속해서 변화하는 찰나의 순간, 경계, 교집합, 빈틈 등을 직관적으로 선명하게 포착했다. 즉, 이전 작업에서는 작가가 속해있는 흐름과 그 흐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그렸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이를 완전히 파악한 후 그 안으로 들어가는 단계로 발전하여 작가의 내면에 더욱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Hertz>에 전시된 총 8점의 작품은 작가의 시점이 달라짐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변화하는 과도기를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전 작업에서 얇은 레이어가 쌓여져서 만든 미묘한 빛의 차이와 방향성이 없는 선이 끊임없이 자유롭게 변화하고 소멸하는 움직임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화면을 명확하게 나누는 면과 붓터치가 보다 선명하고 깊이감 있는 작가의 시선을 구축한다. 특히 ‘Thaw’와 ‘Purr’에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여럿 담겨있다.
그간 한 손으로 쉽게 들 수 있는 크기의 작업을 주로 선보인 전작에서와는 달리, 너비가 130cm에 높이가 그 이상인 커다란 화면은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마치 변화의 과정에서 찰나의 경계 혹은 예측 불가한 상황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새롭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Simmering’, ‘Pang’, ‘Lee’는 그가 그동안 작업해온 뉘앙스가 가장 짙게 남아있는 신작이긴 하지만, 보다 힘 있고 명료해진 붓터치로 인해 이전과 같은 얇고 넓게 퍼져나가는 불안한 진동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Lee duo’는 전처럼 선이 두드러지는 작업이지만 방향성을 잃고 잠재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선이 아니라 분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선이 그어진 느낌으로, 전시작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김겨울의 작업 중에서 최초로 제목을 가졌다. 작가는 제목으로 인해 관객이 그의 작품을 단정 지어 보지 않기를 바라서 명확한 대상을 그린 표류기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Untitled’(미제)로 지었었다. 하지만 이제 작가의 시선이 흐름(Untitled)에서 흐름을 구성하는 요소로 점점 명확해져서일까, 무엇도 단정 짓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태도는 그대로지만 이번 작업에는 제목이 있다. Thaw, Purr, Pang, Simmering, Lee는 뜻을 배제하고 소리 그 자체에서 오는 느낌의 제목이다. 각 소리의 느낌이 해당 작업을 감싼다기보다는, 은연중에 주변에 있거나 작업 안의 군데군데에 있는 듯하다. 하여 ‘제목' 보다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그가 거시적 대상으로부터 경험한 미시적 세계가 그의 내면에서 혼재되어 나타난 느낌, 혹은 빈 캔버스가 이 공간에 놓이고, 공기에 있고, 그로 인한 떨림이나 움직임이 있을까 따위의 상상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노트에서 ‘계속해서 무언가에 다가가는 느낌으로 그리지만 종착하기 위해서는 아니다'라는 구절처럼, 작가는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그림을 그리며 예상치 못한 상황과 다른 움직임을 만나며 나아간다. 하여 작가의 작업에 시작과 끝은 전혀 다를뿐더러 확실한 시작과 확실한 끝은 현재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이번 신작을 시작으로 작가는 여러 소리가 뒤섞여 웅얼거리며 사라지는 소리에서 이를 구성하는 진동의 한 단위, 헤르츠(hertz)를 찾으며 그가 지금까지 다가가고 있던 셀 수 없는 무언가가 교차하는 지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그가 들은 소리는 필자의 주변에도 분명 존재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그가 찾은 헤르츠가 모여 어떤 소리를 낼지 더욱 궁금해진다. / 박혜린 위켄드 공동디렉터
디자인: 차누리
출처: 위켄드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휴관
수요일 휴관
목요일 휴관
금요일 13:00 - 19:00
토요일 13:00 - 19:00
일요일 13:00 - 19:00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