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기체
2025년 10월 10일 ~ 202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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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 fond de : 내 깊은 곳
두 작가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 인물 또는 신체는 분명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벗은 몸의 무표정한 인물(혹은 군상)이거나 피부가 녹아 내린 얼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소들은 이렇듯 의식적으로 배제돼 있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가 다루는 매체나, 자신의 특징적인 기법을 강조해 드러내면서 동시에 내면 깊은 곳을 안내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음에 주목한다.
김남의 작업과정은 붓질의 추상적 형태에서 시작된다. 내면에 스민 감정,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색을 채우고 나면 (그의 표현대로) 물컵에 떨군 잉크 방울이 퍼져 나가듯 화면에 인물의 형태가 점차 드러난다. 그는 그림 속 장면의 중심 인물을 둘러 싼 군중을 묘사함에 있어 조선시대 민화나 혜원(蕙園)류의 풍속화와 중세 유럽 종교화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익살’에 주목하고 자신 회화의 한 축으로 삼는다.
그는 그림의 대상을 주로 나신의 인물, 군상으로 한정하고 있는 데 이는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회화 요소, 양식들이 교차되고 변주됨으로써 이른바 ‘복잡성’이 내재된 자신의 화법을 찾고, 부각할 수 있도록 돕는 열린 매개가 된다. 같은 차원에서 한국 전통회화에서 익숙한 자연요소들은 극적 장면, 인물의 포즈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장치로 쓰인다. 목단, 소나무, 대나무, 연꽃 등의 식물들, 옷감의 패턴은 각 회화 작업이 담고 있는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면서도 특유의 짙은 색감으로 화면에 생동감 불어넣는다.
이런 점에서 김남의 작업 방식은 동서양 미술사에 뿌리를 둔 도상, 알레고리, 색채, 표현법을 한 화면 안에 조합해내고자 하는 의식적인 실천이면서 ‘복합성’ 그 자체로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녀는 벗은 중간자적 신체를 통해 문화, 인종, 젠더 등 한 개인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외피를 걷어내고 인간 자체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한다. 이는 미국과 한국에서 나고 자란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작가로 정착하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낯선 환경을 오가며 겪어야 했던 혼란스러움, 그 이질적인 다양성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수용해온 경험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신작들은 <Mindscaping>, <Hand in Hand>, <산 너머 산> 등 크게 세 시리즈로 나뉜다. 앞의 두 시리즈는 각자 독립적으로 완성된 작업이면서 하나로 모으면 또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이번 새롭게 작업한 <산 너머 산>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 비춰 사회정치적 사건들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다층적인 영향을 반영한 작품이다.
김명주의 살갗이 녹아 내린 얼굴, 핏기 어린 파편으로 허공을 떠다니는 신체는 그녀 내면에 비친 ‘물그림자’다. 그것은 복합적인 관계에 얽힌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게 된 상실, 고립의 경험이 마음 깊은 곳에 남긴 자연스런 정서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의 제작 방식은 외견상 도자 조형의 일반적인 작업 과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흙을 매만져 얼굴, 신체, 식물 등의 형태를 만들고 그늘에 말린 후 유약을 발라 전기가마에 넣고 원하는 형태와 미감에 도달할 때까지 여러 차례 구워 낸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방식은 표면이 매끄러운 완결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1천도 이상의 열기에 닿아 흐물흐물 흘러내린 불완전한 형태를 집요한 반복의 과정으로써 좇는다.
두상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의인화된 식물들 역시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태도를 드러낸다. 거기서는 유약함과 강인함, 욕망과 순수, 환희의 몽상과 냉소가 구분 없이 교차된다. 지나간 ‘사건들’은 소멸되지 않고 파동을 일으켜 복합적인 인상, 감각들을 마음 속에 내밀화 한다. 따라서 눈에 비친 물의 투명도는 같지만 그 밀도는 까마득한 물 속처럼 깊고 무겁다. 김명주는 마치 물안경 쓴 맨호흡의 해녀가 명치 아래로 두려움을 누르며 물 밑으로 달려들듯 작업실에서 ‘지난한 반복’을 이어간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의 작업 행위는 과정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깊은 곳 웅크린 얼굴을 맨눈으로 또렷하게 마주하려는 의식에 가깝다.
그리고 도조 작업과 함께 틈틈이 병행하고 있는 드로잉, 회화는 같은 감정, 정서라도 그 적용하는 매체, 재료, 기법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것에 집중한다. 특히 과슈 드로잉들은 작가에게 짧지 않은 작업 시간이 물리적으로 요구되는 도조, 회화 작업과 달리 보다 감정을 누르거나 응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신작 <생각에 잠긴 두상 17>은 작가가 겪은 상실의 고통이 오롯이 반영돼 있는 작품이다. 머리에 투명한 유리구슬을 올려놓은 채 피부가 벗겨지고, 녹아 흘러내린다. 그렇지만 눈동자는 고통에 겨워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또렷한 눈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거기에는 ‘죽음’으로 흩어지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잿더미 속 무릎을 감싸고 웅크린 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세계가 한 데 겹쳐 있다.
참여작가: 김남, 김명주
출처: 갤러리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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