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오뉴월
2022년 7월 15일 ~ 2022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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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니터 안에 있지 않고 캔버스 앞에 있다1
김현수(갤러리 오뉴월 큐레이터)
김다정과 한지형의 작업은 그리기 전단계에 디지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점, 나아가 대지나 레이어에 적용한 도구 효과를 캔버스를 비롯한 기타 평면 위로 불러온다는 점에 비추어 소위 ‘디지털 시대의 회화’ 라는 범주 아래 느슨한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 용어는 동명의 제목 아래 쓰인 미술비평가 신혜영의 글에서 빌려온 것으로, 그는 ‘포스트-인터넷아트’로 칭해지는 작업 경향, 즉 이미지 편집 툴로 재구성한 상을 작품의 주요 표현으로 취하는 방식이 2017년 당대 20-30대 작가군에서 점차 환기되는 특징 중 하나임에 주목했다. 2
1년여 뒤 제출된 이현진의 진단은 어떨까? 미디어 아트 연구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는, 뉴미디어 및 미디어 기술을 작품의 매체 자체로, 그리고 제작 방법론에서 발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경험이 되었다고 밝힌다.3 속도 경쟁으로 점철되는 디지털 환경의 유동성이 미술의 지형 변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일까? 시각적 경험을 대체하고 보충하는 웹과 모바일 기기 상 이미지의 증가 추세에 따라 우리의 지각과 감성도 함께 변하고 있다면, 선술한 회화적 범주에 속하게 될 작가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디지털 회화의 영토 확장은 따라서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는 일에 대해 우리의 달라진 감각이 관여함으로써 생성과 수정을 거듭하는 진행형의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회화가 제작, 유통, 소비되는 방식이 이전과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된 경우, 관건은 해당 조건 아래 제작된 화면을 동질화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따라 달리 확립된 작업의 개별성과 다양성에 주목하는 일일테다. 인터넷을 위시한 디지털 환경 상의 경험이 분산적이고 복수적이라면, 그에 따른 결과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4 디지털 이미지 제작술과 친연성을 갖는 많은 사례 가운데 김다정과 한지형의 회화를 한 데 불러오는 기획은, 사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두 작가의 작업에 보태 온 지지와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면을 좋아한다는 주관적인 판단까지 기획의 변으로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고, 이 글을 통해서는 유사한 제작 단계를 공유하지만 완성된 각자의 작업이 보이는 특징과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윈도우 갤러리를 기준으로 보면, 전시장에 다다라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한지형의 <Preparing Yourself for the Afterlife>(2022)이다. 그림의 두께에 대해서라면 가히 ‘초박형’이라는 묘사가 어울릴 이 화면에서는 경계가 흐릿하게 처리된 색면이 캔버스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보색 관계에 놓인 색면의 일렁임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블러’나 ‘픽셀 유동화’ 효과가 적용된 모습을 보인다. 경험의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스크린의 촉감과 유사한 유리막 너머로 그림이 놓인 모습은 우리가 디지털 기기 화면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과도 닮았다. 한편, 그림 아래 벽면에는 김다정의 디지털 드로잉에서 가져온 이미지 레이어가 단색 시트지로 부착되었다(<Drawing for </net―O…> no.3_4_5>). 소용돌이 치는 형상이 끊기고 조각난 ‘패스(path)’ 사이를 관통하면서 전시장 내부로부터 독립된 공간에 역동성을 더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한지형의 그림 제목이 암시하듯, 그가 수집하고 편집한 이미지와 그 앞에 선 우리의 내세(afterlife)에 대해 작가는 어떤 회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왔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의 다른 작업에서의 형식과 기법을 토대로 나름의 서사를 구축해 볼 수도 있다. 가령 <I'm so Angry I Made a Sign>(2021)은 검은 색면과 기타 채색면 사이의 융해와 침식을 거쳐 각각 <Angel still feeling its way–ii>(2022)나 <Repurposing plats>(2022)와 같은 별개의 형식으로 점화될 가능성을 고루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중 <Angel still feeling its way–ii>에서는 공기를 머금고 뿌려진 색 입자가 곧 흩어질 것처럼 어른거리는데, 운동의 순간들을 포착해 포토몽타주로 만든다면 <Marinated_Lazy_sun>(2022)에서 보듯 상이한 도상의 결합이 필름 네거티브처럼 검은 배경에 각인될 수도 있다. 한지형의 회화가 가상과 실재 생태계 안에 공생하는 사물과 신체의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주력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웹상 어딘가 노출된 우리의 셀카도 부지불식간 그의 그림 안에 스며들어 별개의 종과 결합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서 어렴풋이 비치는 형상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에 마땅한 이름을 붙이기 난감한 까닭은 이어 붙여진 허리와 단순화된 머리, 유실된 팔과 다리가 윤곽의 흐릿한 마감이나 픽셀 묘사에 가려 식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작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작업의 소재가 된 이미지를 찾았으며 이것을 무슨 이미지 형식으로 저장했는지를 설명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런데 이 불충분한 정보가 한지형의 회화 제작 원리를 흥미롭게 바라볼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여기 놓인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작가가 평소 즐겨 구사하는 균일한 크기의 색면 묘사는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를 경험하는 기본 형식인 JPEG 파일에서 나타나는 픽셀 표현에 대응한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색 정보를 폐기하도록 설계된 이 경제적인 이미지 압축 및 저장 방식에서, 단일 색면으로 처리된 형상 사이의 경계는 이른바 ‘밴딩(banding)’이나 ‘포스터화(posterization)’라고 알려진 계단식 사각면의 형태로 구조화된다. 기존 색상 데이터가 제거됨에 따라 품질은 저하되므로 JPEG 압축은 손실로 간주되지만, 한지형은 오히려 이 저하된 품질을 그가 공들여 그리는 화면의 조건으로 도입하고, 세밀한 조색을 통해 탁월한 완성도에 다가선다. 결국 그가 모사하는 데 힘을 기울인 디지털 이미지의 특징적 표현은 적은 용량을 통해 더 빠른 전송과 더 많은 저장을 목표로 하는 효율성의 논리에 기인한 것인데, 이것을 다시 60 호에서 100 호 이상을 웃도는 캔버스에 옮겨오는 결정은 이미지의 크기나 용적에 대한 감각, 그리고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교해 원상과 독특한 반비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지형이 현상하는 독특한 형식과 기법이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지와 관계된다면, 김다정이 마련한 밀도 높은 회화적 공간은 편집한 디지털 이미지를 무엇으로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 상에서 실험하고 발전시킨 드로잉을 캔버스뿐만 아니라 각각 물성이 다른 산업자재 평면 위로 내보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중층의 이미지 레이어에 각기 다른 효과를 추가하는 디지털 이미지 편집 절차가 실제 환경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를테면 </net―Composition(2/2)>(2020-2022)는 MDF판넬 위로 흘러내린 물감층 위에 디지털 드로잉을 인쇄한 아크릴 판이 놓이는 복합적인 구성을 따른다. 완성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시간을 고려하건대, 그의 작업은 비교적 작은 화면인 경우에도 집약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김다정의 화면에서는 평면 위에 펼쳐진 작가의 물리적 운동의 흔적이 고르게 엿보인다. <Air Kiss>(2022)에서 보듯 반복되는 특정 형상은 입체 도형 오브젝트이나 이미지 레이어를 선택한 뒤 옵션(option) 키를 누르고 커서를 끌어 여기저기 배치한 모습이다. 형상의 매끈한 질감을 묘사한 붓질이 디지털 드로잉과 그의 회화를 동기화하는 지표라면, 간격없이 나란히 놓인 서로 다른 규격의 캔버스를 건너 다니는 형상의 이동은 곧 김다정이 화면 안팎을 왕래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표면에 발리는 재료와 지지체 사이의 마찰을 일으키며 완성된 120호 F,P,M형 캔버스 앞에서, 몇가지 단축키로 화면의 구성을 결정하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손의 움직임은 앙증맞게도 여겨진다. 가상과 실제 환경에서의 그리기 중 후자를 더욱 독특한 실천으로 신비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에 전혀 다른 경험과 감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한편, 그가 복수의 캔버스를 사용해 한점의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은 동일한 가로 폭을 유지하나 높이가 다른 캔버스 2종을 위아래로 붙여 그린 </net―O…R.fw> (2021), 높이는 같지만 너비가 다른 두 화폭을 좌우로 배치한 </net―O…S(b.g)A-F(DR)S(2022)에서도 고르게 확인된다.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완성된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 있다. 이러한 작명을 통해 우리는 그의 회화 제작 원리가 원본에서 곁가지를 쳐 나가며 저장과 수정을 거듭한 과정 자체의 전시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net―” 아래 암호 같은 부제가 달린 모든 작품 제목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그림의 형식과 기법을 토대로 여기서 보지 못한 다른 그림들에 대한 규칙성도 유추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달리 말해, 김다정은 완성된 모든 그림에 독자적인 개별성을 부여하기보다 기계적인 작명을 통해 하나의 화면과 유사한 또 다른 화면을 구분하는, 딱 필요한 만큼의 변별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언제나 예외가 있을 것이다. 김다정의 메모와 그의 지난 개인전 «Blow a Kiss»에 부친 김얼터의 서문을 읽어보면, 그림에서 사용한 광택 있는 물감의 변색이나 “엄격하게 제멋대로”인 캔버스 규격 등이 그런 예외에 해당한다. 나아가 ‘실패’를 그림의 조건으로 삼는 그의 작업에서는 디지털 드로잉에서 연장된 세부표현이 캔버스 위 다양한 두께의 물감층과 어우러져 절차상 복잡해진 혼돈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완성된 김다정의 그림은 재료나 색상, 구도나 레이어, 혹은 한 변의 길이만 늘어나는 화폭과 같은 까다로운 회화적 요소와 승패를 겨루는 고단한 분투의 현장이라기보다, 디지털 환경에서 가공한 이미지를 캔버스에서 재편집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감상의 몫으로 남겨진 명장면처럼 보인다. 이로써 김다정의 그림에서 물감이라는 재료를 바르고 쌓고 밀거나, 칠해질 영역을 제한하고 개방하는 움직임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은 뛰어난 운동 선수의 숙련된 기술을 구경하는 즐거움처럼 다가온다.
종목에 관계 없이 유명 운동 선수 중 한 명의 이름을 떠올리고 아무개 ‘스페셜(special)’이나 ‘컴필레이션(compilation)’이라고 검색하면 무수한 가짓수의 명장면 합본이 추천된다. 각 영상 편집자들은 제목 앞에 ‘Best’나 ‘Ultimate’ 등의 수식을 붙여 그들 사이의 경쟁을 꾀하기도 한다. 축구를 예로 들면, 이들 영상은 메시나 손흥민이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치른 경기 중 경이롭다고 생각되는 동작이나 그들이 아깝게 놓친 골 찬스 장면 등을 하나의 타임라인에 섞는다. 여기서는 반칙 판정에 의해 취소된 골 장면, 유려한 드리블을 선보이다 태클에 걸려 넘어지는 실패의 순간마저 중요한 감상 포인트로 제시된다. 김다정의 그림 역시 그렇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서 의도한 형상이 깨지고 어긋날지언정, 작가는 이 실패까지 그림의 재료로 받아들여 이것의 위치나 형태나 마감을 별도의 지지체 위에서 재조정한다. 이것은 각기 다른 회화적 시공간을 왕래하는 부단한 노동을 요청하는 일이며, 따라서 많은 시간과 체력이 소진되는 이 과정에서 작가가 화면의 자동 완성을 꿈꾸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상으로 두서없는 의견을 덧붙인 김다정과 한지형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차이는 그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한 이미지를 추후 실제 화면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한지형이 하나의 레이어로 병합한 벡터 이미지를 캔버스 크기에 맞추어 내보낸다면, 김다정은 마치 캔버스를 대지 자체로 상상하고 각각의 물감층에 각기 다른 투명도를 설정해 그것의 겹쳐진 양상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먼저 제작한 화면을 감상의 차원에서 굴절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디지털 환경일 것이다. 특히 두 작가가 만들어낸 멋진 화면을 단지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다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야 말로, 이런 생각을 오래 붙잡게 된다. 다만 김다정과 한지형이 각자의 회화 제작에서 보이는 열의는 디지털 환경에서 편집한 이미지를 단지 그곳에서만 보여주는 데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동시대의 이미지 제작, 유통, 소비 전략이 자본과 노동 대비 이익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자본제적 생산 모델을 따른다고 할 때, 이들은 모두 손의 개입과 중재로 말미암아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두 작가의 활동을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모순을 극복하는, 혹은 원본에 대한 개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독특한 회화적 실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상의 재생산이라는 재현의 오랜 전통과 마주해 회화의 공간과 시간, 크기, 색, 구도, 형식, 영감 등에 대한 능동적인 재맥락화를 시도하는 두 작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진행 중인 작업의 일면을 충실히 기록하고 이것을 SNS계정에 게재하는 과정 자체의 전시에 있다. 기록과 보존의 기능을 겸한 이 독특한 보여주기 방식이 작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를 점검하는 중요한 절차이자 미래의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제스처라면, 우리는 실제 공간을 벗어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그들의 활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니터 안에 있지 않고 캔버스 앞에 서 있을 수도, 혹은 그 반대의 위치에 설 수도 있다.
1. 글의 제목은 신체의 활동을 웹상 좌표에 대응시키고 컴퓨터 용어를 시어로 활용한 재치가 돋보인 이원의 시집 『야후!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 지성사, 2001) 중 「나는 검색 사이트 안에 있지 않고 모니터 앞에 있다」의 제목을 번안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웹 공간 안에 보존되는 것이 검색한 대상이 아니라 ‘나’의 신체일 수도 있다는 일시적 혼란에 빠지지만, 이내 그의 몸이 닿아 있는 곳은 “여전히 땀냄새가 나”는 세계임을 확인하고 의자 위 자세를 고쳐 앉는다.
2. 신혜영, 「디지털 시대의 ‘회화’」, 『아트 인 컬쳐』 9월호, 2017, 76-79쪽.
3. 이현진,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포스트-미디엄과 포스트-미디어 담론을 다시 바라보며」,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수천 개의 작은 미래들로 본 예술의 조건』, 서울시립미술관· 현실문화연구, 2018, 38쪽.
4. David Bate, “The Digital Condition of Photography – Cameras, Computers and display,” in Martin Lister (ed.). The Photographic Image in Digital Culture (London; Routledge, 2013), p. 93.
참여작가: 김다정, 한지형
기획 및 서문 김현수(갤러리 오뉴월 큐레이터)
그래픽 디자인 윤현기
출처: 갤러리 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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