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익갤러리
2017년 10월 11일 ~ 2017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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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경: 결에 스며있는 시간의 힘 -송윤지 (미술비평)
김덕용과 처음 만난 것은 17여 년 전의 일이다. 그는 학교의 복도 끝에 위치한 작은 작업실에서 염료에 물든 손으로 나무판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낡은 나무판들이 쌓여 있었다. 그 나무판들은 오래된 한옥을 철거하면서 나온 폐목들로, 창호지가 다 떨어져 나간 창틀이거나 모서리가 닳아버린 문짝, 또는 고가구의 서랍 같은 것들이었다. 간혹 빛이 바랜 단청이 남아 있거나 장석 또는 자개가 붙어있는 것들도 있었다. 김덕용은 그것들을 마치 보물 대하듯 소중히 쓰다듬곤 했다.
그는 오랫동안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왔다. 아니, 그린다기보다 새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나뭇결 사이사이에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뭇결, 즉 나무의 나이테는 그 자체로 세월의 흔적이다. 김덕용은 저마다의 시간을 간직한 나무판들을 모아 엮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작품 속에서 나뭇결은 때로는 바람결로, 때로는 물결로, 때로는 시간의 고요함으로 흐른다.
김덕용의 작품에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편안함은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해온 작가의 고민과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다. 나는 그 열정과 인내의 시간들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동안 김덕용의 작품을 설명해온 정다움, 따뜻함, 포근함 같은 말들보다 그의 작업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시대 미술계에서 ‘한국화가’로 살아남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회화가 역사적 근대화와 함께 유입된 서양화풍의 수용을 통해 현대회화로 이행한 뒤, 한국화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항대립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저울질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했다.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전통을 계승한다면 현대성을 어떻게 더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한국성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해답이 모호한 질문들로 점철된 한국화의 정체성 찾기는 결국 작가들의 몫이었고, 많은 동시대 한국화가들이 저마다의 전통을 찾아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결국 ‘무엇을 전통으로 가져오는지’(레퍼런스)와 ‘어떻게 표현하는지’(매체)가 중요한 요소가 됐는데, 이와 같은 방법론은 이미 한국화단에서 강조했던 ‘한국의 정신성’과는 동떨어진 것이 됐다.
그 가운데, 김덕용은 나무판에 작업한다는 이유로 ‘전통 매체를 탈피한’ 작가로 불리는 동시에 작업에서 나타나는 정서적인 면을 통해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나는 이런 상반된 평가에 한국화, 그리고 한국화가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들이 담겨 있다고 본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화의 전통은 여전히 지필묵을 기반으로 하는 수묵화에 머물러 있으며, 한국화가들은 그저 ‘정서’로서만 한국성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화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깊다. 한국의 그림은 산수화, 화조화, 초상화, 풍속화, 불화, 민화 등의 회화뿐만 아니라 넓게 보면 단청이나 기와의 문양, 도자기에 그리거나 상감한 이미지들, 나전칠기에 자개로 붙여 만든 이미지들까지 포함한다. 여인들의 자수나 보자기에 나타나는 선과 색면의 구성은 또 어떤가. 역사적으로 거슬러 가면 고구려 벽화, 반구대 암각화까지 그 뿌리가 닿아 있다.
김덕용은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우리의 내재된 미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 그에게 한국적인 것이란 특정 시대의 재료나 기법, 소재를 표면적으로 차용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시대를 거스르는 어떤 것이다. 그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예술적 실천들을 잘 소화시켜 새로운 조형을 빚어내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그의 나무판 작업도 이런 고민의 과정 속에서 시작됐다. 나무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까지 망라하는 최적의 바탕 재료다. 그는 단순히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가구용 염료를 칠해 색을 내고, 단청의 선명한 색을 내는 최고의 조합으로 안료를 혼합한다. 또한 이미지를 파서 색을 채워 넣고 표면을 다시 갈아내는 식으로 자기의 상감법을 응용하거나, 나전칠기의 방식을 따라 자개를 붙이기도 한다. 김덕용의 작품에서 작은 나무판들을 연결해 붙이는 방식은 옛 조각보의 조형에서 출발한 것이며, 한지나 천을 붙여 작업하기도 한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뿐만 아니라 화면 속 이미지들 역시 대부분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김덕용의 작품은 한국 전통예술의 다양한 형식과 의미들이 시대를 초월해 뒤섞이는 치열한 현장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화면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작가는 이를 ‘자연스러움’으로 설명한다. 그가 활용하는 재료와 기법, 소재들은 옛 것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에게 전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아내 재해석해야 할 거대한 스펙터클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 환경에, 우리의 무의식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이어져온 것들이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사실 그대로, 때로는 약간의 픽션을 섞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내러티브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언제나 정서적인 면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김덕용은 우리의 주거형태를 기반으로 한 ‘공간’의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암시적으로 표현해왔던 방안과 바깥 풍경의 구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벽과 바닥, 창과 문, 툇마루, 기둥과 난간 등의 건축적 요소들을 동원해 화면 속에 공간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건축물의 안과 밖을 잇는 ‘창’의 역할이다. 창은 공간을 나누는 동시에 통하게 함으로써 한정된 건축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창은 또한 마치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선택적으로 방안에 끌어들여 감상의 대상으로 만든다. 창을 통한 이러한 풍경의 감상은 ‘차경(借景)’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창을 통해 바깥의 경치를 감상하는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지만, 서양에서는 집을 짓고 정원을 꾸며 보기 좋은 경치를 만들어낸 반면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집을 짓고 그 중 특히 멋진 풍경을 향해 창을 냈다. 또한 툇마루와 기둥을 활용한 한옥의 열린 구조는 차경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런 건축방식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와 동화돼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국의 자연관을 반영한 차경의 미학은 전통 가옥뿐만 아니라 정자, 사찰, 서원 등에서 고루 발견된다.
이번 전시에서 김덕용은 다양한 전통 건축의 조형을 응용해 차경으로서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창은 차경을 위한 프레임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매화, 산수유, 백일홍 등은 작가가 어릴 적 살던 집 안방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들이며, 지금도 그가 즐기고 찾아다니는 풍경들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어린 날의 자신과 조우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차경을 통해 옛 선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자신의 그림에 불러들인다. <결-자미화(紫微花)>에서는 대청마루에 누워 자신이 좋아하는 배롱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다 낮잠에 들었을 안평대군을 상상하고, <관해음-해넘이>에서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다 노을빛이 저무는 다도해를 바라보았을 다산 선생의 쓸쓸한 마음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덕용이 제시하는 차경 작품들에는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차경은 그 공간에 머무는 누군가의 존재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으로 볼 때, 현재의 시간에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 또한 차경의 감상자로서 작품 속 공간에 머물게 된다. 차경을 통해 옛 선인들과 작가 자신, 그리고 관객의 시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김덕용의 차경은 한편 산수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보통 풍경은 사생의 의미를 갖지만, 전통 한국화에서의 산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철학이 담긴 관념적인 풍경을 뜻하는 것이다. 일찍이 겸재 정선은 이러한 산수의 본질을 이해하고 한국의 실제 자연과 그에 대한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진경산수’를 주창함으로써 예술의 자주성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오래된 풍경’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김덕용의 작품들 역시 오래전에 보았던 어떤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결과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풍경들을 화면에 재구성한 것이다. 김덕용의 ‘오래된 풍경’은 결국 오래 전에 멈춘 어느 한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우리들의 시간인 것이다.
지금 김덕용의 작업실 앞마당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고, 그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 고즈넉한 풍경을 위해 그는 종종 잡초를 뽑고 물을 준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매일의 애정 어린 관심과 가꿈이 수반되어야 함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작품 역시 끈기 있는 매만짐으로 완성된다. 이런 한결같은 작업 태도는 김덕용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단단한 뿌리다. 그리고 그가 쌓아온 시간들은 작품 속에서 때로는 단단히, 때로는 유연하게 흐르면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작업의 폭을 넓혀왔다.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굳건히 자신의 결을 만들고 있는 김덕용의 작품은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만 쫓는 동시대 기류 속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결에 스민 시간들은 모든 것이 빠르게 흐르고 금방 사라져버리는 이 시대의 타임라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힘이다.
출처 : 이화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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