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가변크기
2020년 1월 9일 ~ 2020년 1월 23일
원의 바깥과 내부는 맞닿아 있다
: 김동섭《원이 빗겨간 자리》
콘노 유키
호주에서 얼마 전에 큰 규모로 난 산불에 대한 정보가 보도되었다. 뉴스에서 피해를 입은 범위와 동식물의 수가 보도되고 항공사진이 사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를 거대한 하나의 태풍을 일으켰을 정도로 ‘전 지구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호주라는 어떤 작지 않은 섬이 피해를 국지적으로 입었다는 인식이 더 우세할 것이다. 온 지구 혹은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나 국가가 직접적인 영향 없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오늘 같은 예전보다 따뜻한 겨울날은 인간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북극의 빙하와 대기 변동에 문제가 생겼다고 종종 지적 받는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국지적이고 또 어떤 면에서 전 지구적인 태도가 병행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제 바깥에서 문제가 제기되면 우리는 선을 그어버리거나 공통의,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키워 나간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라는 이야기가 클리셰나 초기 인터넷 세대의 미래상처럼 들릴 정도로, 지구라는 세계에서 단절은 여전히 존재하고 생산된다. 지구라는 거대한 차원 뿐만 아니라 국가, 지역, 동네의 작은 규모까지 이런 단절은 존재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평소 모르는 사이에 외부와 내부는 분리되고 잘 돌아가는 내부에만 집중이 쏟아져, 이를 어느 순간부터 정상적인 세계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바깥의 영역은 무엇이라 불리는가? 잘 돌아가는 내부의 자율적인 영역,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들은 그 바깥으로 밀려나고 배제된다. 작가 김동섭의 작업은 바깥이라 간주된 대상을 다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태도로 작품을 만든다. 그는 이번 개인전 《원이 빗겨간 자리》에서 재개발 지역의 식물,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식물들이 자라는 터에 대한 관심사를 작품에 반영하여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어떻게 보면 (이미 형식적으로도 실현된) 기능성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로 단순히 끝날 수도 있다. 그가 전시장에서 소개하는 작업은 문이나 벽처럼 생겼고(〈300-100〉와 〈회전문〉, 두 작업 모두 2019년에 제작), 식물을 위한 기능성을 고민한 결과로 나온 작업들(〈Flexible Container〉(2020) 등)이다.
그렇다면 그가 식물을 대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기능은 어떤 방식으로 추구될까. 흔히 일컬어지는 ‘미술과 기능의 병합’이라는 말에 머물지 않고, 그가 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필요 요건에 다른 옵션을 추가한다기보다 간과된 필요 요건 자체를 만드는 데에 있다. 이에 작가는 증식의 방법과 태도로 접근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증식은 식물이라는 개체의 속성을 묘사하는 말이자 동시에 그의 작업에 제작방식에 반영된 태도이다. 〈300-100〉에서 상하좌우로 붙일 수 있게 만든 최소 단위는 하나로는 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지만, 개수를 늘려 구축함으로써 작가는 공간을 증식하여 궁극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실질적인 환경을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이, 특히 〈300-100〉는 건축가 쿠로카와 키쇼(Kurokawa Kisho)의 〈나카긴 캡슐 타워〉(1972)와 그를 포함한 이른바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이라 포괄적으로 일컬어지는 이론 및 사상과 건축의 결합된 형식과 다르다. 그들이 인간의 터를 찾는 데 끌어들인 ‘자연(의 순환성)’이나 캡슐이나 모듈 형태의 건축 공간과 달리, 김동섭은 거처로 인지되지 않는 대상들을 부각시켜 이들의 영토를 넓혀가고자 실용성을 작품에 끌어온다.
그에게 재개발 지역과 거기서 자라나는 식물들은 세계의 안정적인 순환성에서 배제된 대상들이다. 모르는 사이에 세계에서 추방당한 이 개체들을 위해서 원은 개념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비틀어진다. 원의 바깥으로 내 버려진 개체들은, 작품을 통해서 원의 내부로 침범한다. 이는 일찍이 고든 마타-클랙(Gordon Matta-Clark)이 자투리 공간을 프로젝트로 구매하고 실현한 〈Reality Properties: Fake Estates〉(1973)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도시공간에서 사람들이 쓰지 않고 남겨진 부수러기 같은 공간을 구매하여 자료로 정리했다. 잘 쓸 수 있고 기능하는 공간(마타-클랙에게는 화이트 큐브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즉 ‘잘 돌아가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배제된 공간까지 끌어와 안정적인 모양을 형식적으로도 그리고 개념적으로도 내부에서 파열한다. 비록 마타-클랙의 결과물이 형식적인 원을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잘 돌아가는 공간’에 대한 접근은 원과 세계의 안정적인 속성에 도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 제목과 전시장의 작업을 보면 원이 강조되어 있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앞서 말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원의 순환성을 개념적으로 변질시키는 데 원의 형식적인 사유가 동반되는 점이 그렇다. 작품에서 원이나 구를 반으로 쪼개거나, 〈원이 빗겨간 자리〉(2019)처럼 그 외부로 남은 곡면까지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세계라는 단어가 내포한 자율적이고 안정된 ‘원’을 거부하여 경계면 또한 땅이라는 더 넓은 면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짚어 준다.
경계면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원에서 배제된 것들이 (오리엔탈리즘의 맥락과도 긴밀한 ‘이상하고 괴상함’ 자체를 소비하는 태도로 인한) ‘특수성’이나 ‘소수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원이 내포한 안정성을 개념적으로 비트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인간의 거주지를 아예 하늘에서 찾으려는 공중도시의 이상과 대치되어, 결국 땅과 (그야말로) ‘연결된’ 문제이다. 세계가 안정성을 획득한다면 거기서 배제된 것들은 아예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긴밀히 맞닿아 있는 존재들이고 재개발 지역의 식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원은 사실 ‘바깥’과 땅으로 이어져 있는, 근본적으로 떼려고 해 봤자 뗄 수 없는 수평적인 관계 위에 놓여 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원이라는 순환성에 찌그러진 타원을 가지고 와 이에 더 바람직한 순환성을 보려는지도 모른다. 바퀴가 달린 〈원이 빗겨간 자리〉는 ‘어디서나’ 식물을 가꿀 수 있는 땅보다는, 이들을 배제한 원의 내부를 향하여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의 내부에 영토를 늘려 원을 변질시킨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기능 혹은 실용성은 작품 자체에 머물지 않고 경계면을 침범하는 땅을 만드는 데에 있다. 이질성으로 남거나 세계에 포섭 당하는 것과 달리, 그는 분리된 경계면에서 안정적인 순환고리를 비틀려고 한다. 원은 원이 빗겨간 자리와 서로 맞닿아 있다.
출처: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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