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1년 10월 27일 ~ 2021년 11월 2일
이토록 환상적인 발굴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혜린
사람의 얼굴은 삶의 결을 드러낸다고 한다. 본래 나이보다 어려보이든 제 나이로 보이든 상관없이 인생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는 입술이 도톰하다거나 얇다거나 입술선이 뚜렷하다거나 흐릿하다거나 코가 오뚝하거나 이마가 넓거나 속눈썹이 예쁘거나 눈썹이 진하다든가 하는 것들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핏줄이 비쳐 보일 만큼 얇고 하얀 피부의 소유자라고 해서 그 사람의 삶 또한 말갛고 투명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의 기준에 의해 외모적인 결격을 판단함이 아니라 얼굴에 녹아나는 삶의 표정을 찬찬히 읽어보는 시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은 인격이 쌓아온 시간의 기록과도 같아서 단순히 미추를 재단하려는 요량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인상을 대할 때면 찬찬히 읽는 시도 즉 존중과 이해의 작업이 필요한 셈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온 흔적이 남는 곳이 얼굴이라면 자연의 시간을 증명하는 곳은 지층과 수층, 화층 그리고 나이테이다. 김민지의 작업은 우직하고 차분하게 쌓인 이 시간들에 대해 주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쌓이고 겹쳐지고 꺾이고 균열이 생기고 변화를 맞다가도 유지가 되는 자연의 층에는 오랜 이야기들이 간직되기 마련이다. 제각기 다른 층들은 저마다 겪어낸 환경에 맞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바람과 물과 태양과 사람이 스친 자리에는 그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기에 작가는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자연의 층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하나의 층이 쌓이고 변모하는 데에만 해도 짧게는 몇 백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형성된 한 겹 층의 안쪽에는 또 다시 무수히 많은 시간의 흔적들이 궤를 같이 하며 쌓여 있다. 시간의 축적이라는 질서를 공유하면서 무한으로 순환하고 변모할 이 오랜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층으로 쌓인 시간의 결을 되짚어 나가야 한다. 작가는 바로 이 되짚어 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자연의 층은 외부적으로 자연의 순리라는 하나의 질서를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불규칙하고도 이리저리 뒤섞여 있으며 이질적인 형상을 띠기도 한다. 불변적 질서 안에서 나름의 조화와 균형을 갖추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해 나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작가는 사람의 얼굴에서 삶을 헤아리듯 존중과 이해의 의미를 담아 찬찬히 읽는 마음으로 조각하는 작업을 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선과 색 면들은 조화와 균형을 지키면서도 리듬과 율동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기능함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고 묘한 희열과 쾌감을 동반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선과 색과 면들은 전체와 함께 어우러질 때 진가가 드러나지만 단독적인 이미지로 떼어놓고 볼 때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렬한 인상이자 환상적인 이미지의 포착이 되기도 한다. 층에는 생명과 시간의 선택이 박제되어 있듯이 전체에서 세부로 읽어나가는 시도를 통해서 화석화된 순간들을 발굴하게 되는 것이다. 화석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정지된 것은 아니다. 환상적인 이미지가 주는 생동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미지를 완결된 의미로 규정짓게 만들지 않는다. 멈추어 굳어 버린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생성하면서 살아 있는 오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김민지의 작업에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열려 있는 고고학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발굴에 대한 소명을 통해 가장 멀고도 아래인 시간을 건져냄으로써 역사와 기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파헤치고 노출시켜 건져내고 다듬고 매만지는 모든 과정들은 곧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삶의 깊숙한 내면까지 반추하는 행위를 통해 완벽한 균형만이 미가 아니며 규칙의 균열이 자아내는 미를 발견함이 우리로 하여금 경외심과 애틋함을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토록 놀랍고 환상적인 발견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여 몸의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의 얼굴에 하나의 결로 조각되어 끊임없이 구전되는 신화 혹은 전설 때로는 환상문학으로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참여작가: 김민지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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